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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씨알의 눈으로 세상읽기- 다시, 언론이 문제다.

by anarchopists 2020. 2.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1/04 08: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다시, 언론이 문제다

언론이 곧 종교다.
이 시점 한국사회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 없는 것 한 가지가 바로 언론이다.〈함석헌을 말한다〉를 시작하면서 (김삼웅 선생과 더불어) 나는 함석헌이 어떤 분야보다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을 말했다. 그가 “불매동맹”을 외치고, 오늘날 “언론이 곧 종교”라는 말까지 했다는 것을 상기할 것이다. (그렇다고 본래의 종교가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고 그 종교는 종교대로 건재해서 언론과 한 통속으로 국민의 의식과 생활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두 가지 ‘종교’의 시달림을 받고 사는 셈이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그런 경고가 아직도 통할까 싶었지만 기우였다는 게 금방 들어났다. 통, 불통이 문제가 아니고, 진실은 진실이라는 게 분명하다. 그것은 이 정부와 여당이 재벌과 거대신문에게 공영 지상파방송까지 장악할 수 있게 하는 개정언론법의 국회상정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이 땅의 주민들이 눈과 귀는 잘못된 언론에, 마음은 잘못된 종교에, 머리는 잘못된 교육에 빼앗기고 나서 ‘나’라는 주체에는 무엇이 남는가. ‘나’의 (그리고 그 집합인 ‘나라’의) 주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 시대 한국의 언론, 종교, 교육은,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공정한 회계사라면,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더 수행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단 말이다.

3대혁명이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거대)언론이 없으면 참 언론이 살아나고, (조직/거대)종교가 없으면 사람들이 더 종교적이 될 것이고, 오늘의 학교제도가 없으면 결과적으로 참교육이 살아날 것이다. 그런 것들이 어떤 식으로 다시 있게 되더라도 가장 덜 조직적이고 사람을 가장 덜 옭아매는 학교와 교육 그리고 신앙방식이 새로 생겨날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지금은 모두가 조직의 울타리에 갇힌 가축의 꼴이다.

대통령이 편향된 종교이념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청소년들이 인생의 성장기를 입시지옥에서 보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족벌언론은 이 두 수구세력 그리고 재벌을 업고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 (‘보수언론’이란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기득권 보존 밖에 ‘보수’할 가치를 못 갖는 수구적 족벌/종파집단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 고통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하여 3대 혁명이 절대 필요하다. 그 긴급성을 대다수가 의식 못할 만큼 우민화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의식했다면 오늘의 정치판이 되게 만들었을 것인가.

이제 판을 새로 짜야한다. 교육, 종교, 언론은 새 판짜기, 총체적 사회혁명의 주요 도구들이다. 세 분야는 각각 지덕체, 정신과 영성, 시회정보를 담당한다. 이 세 가지가 달라질 때 우리를 칭칭 옭아매고 있는 이 부끄러운 정치의 수준과 행태도 달라질 것이다. 세 가지 가운데 먼저 언론이 환골탈퇴 해야만 변화가 빨리 촉진될 것이다. 교육과 종교는 자각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언론은 매일 단위로 의식을 일깨울 수 있다. 단기적 차원에서는 그야말로 언론이 종교이며 교육기관이다.

중요한 것은 세 기관은 가장 공공한 기능을 담당한 사회기관인데 모두 한 가지로 시장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언론시장을 보자. 신문매체는 9개의 중앙일간지가 있지만 두, 세 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족벌(2), 재벌(2), 종파(2)에 예속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세 가지 족벌매체(조중동)가 신문구독자의 70%를 넘나드는 구독률을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하다.

두, 세 개의 정론지가 합세해도 셋 중 어느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이들이 오도된 정보에서 결과한 여론을 주도하고 민주주의를 역이용하고 있다. 더구나 지방지가 주류가 되는 서구선진국들과는 달리 중앙지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신문중의 신문으로 평가받는 『뉴욕 타임즈』도 구독자가 100만 내외인데, 한국의 세 중앙지는 그보다 두 배 이상을 배포하고 있다. 인구비례로 보면 15만부 정도면 족한데 그보다 10배 이상 과점하고 있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권력남용이요 자원남용이다.

위의 공공한 임무를 방기한 언론은, 철학적 차원에서, 독자의 현상인식 나아가 진리인식에 큰 장애물이 된다. 현상과 현실을 떠나 진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왜곡된 언론은 사회발전과 문명의 진화는 물론 진리의 깨침이나 종교적 구원도 가로막는 주범이 된다. 그래서 언론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 많은 철학자, 종교인들은 다 어디 갔나. 현실에 눈감는 묵언이 미덕이라던가.

천박한 드라마 프로로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다.
다른 신문들과 방송들이라고 맡겨진 사회적 사명을 다 하고 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우리사회의 고질인 세 가지 현안문제를 거대담론으로 끈질기게 제기하고 국민을 계도하는 철학과 마스터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가. 없다면 이제라도 빨리 짜야 할 것이다. 짜기가 힘들다면 많은 특파원들을 활용해서 서구 선진국들(특히 북 유럽 국가들, 캐나다, 호주)을 부지런히 벤치마킹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시행착오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다른 나라에도 없는 경제신문들, 스포츠 신문들, 각종 잡지들, 주간지들도 대부분이 광고지나 저질 오락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놀랍게도 이들이 대부분 세 수구신문들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거기다가 방송에까지 마수를 뻗히겠다고? 이들이 이미 케이블 방송에 진출, 복수 채널을 소유하여 저질 프로를 내보내고 있는데 지상파 방송까지 장악한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어찌 되겠는가. 어차피 인터넷 매체에 자리를 내줘야하는 판에 최후의 발악인가.

지상파 방송들도 이미 천박한 오락과 천편일률의 드라마 프로로 시청률 경쟁을 하면서 광고시장이 되었다. 국민을 무지몽매한 소비자로 만드는 주범이다. 지켜야할 문화는 어디 있나. 보존하고 가꿔야할 아름다운 우리글 놔두고 방송은 물론 거리, 영화관 까지 영어로 범람하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있는 대로 지켜가도 모자랄 우리문화를 잠식하고 있다. 보수파라고 참칭하는 수구파가 사대주의를 받들면서 전통 문화와 가치를 놔두고 무엇을 ‘보수’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판에 수구신문들과 탐욕의 상징이 되어있는 재벌들에게 지상파 셋 중 겨우 하나 남아있는 공영방송(MBC)까지 내줄 작정을 한 이들은 애국자인가 매국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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