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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교육

[이치석 제2강] 학교는 괴물이다.

by anarchopists 2020. 1. 3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11 09:14]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서거 21주기, 간디62주기 추모기념학술마당 강연-이치석]


학교(공교육기관)는 괴물이다.

(함석헌)은 심지어 학교를 ‘괴물’로 묘사합니다.

“지금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있는 것은 학교뿐이다.……학생이 입학을 할 때도 학교를 골라 간 것이지 스승을 택해 간 것이 아니다. 그럼 이것은 학교라는 한 조직체, 한 제도, 한 괴물이 있어 교사와 학생을 잡아먹고 만 것이다. 둘이 다 학교를 위해 희생이 된 것이다. 그럼 이것은 분명히 본말이 바뀐 것이다. 원래 말하면, 교육을 위해 학교가 있는 것이요, 학교를 위해 교사나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닌데, 지금은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을 조금도 이상한 것으로 알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으면서 교육의 효과를 기다리니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지금 학교는 일종의 신상(神像)이다.”

여기서 말하는 학교란 공교육 기관입니다. 원래 공교육이란 명칭과 학교제도는 프랑스대혁명 때 출생하는데, 그것은 역사적으로 지난 100여 년 간 우리 학교체제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국민교육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함석헌의 지적처럼 우리가 ‘남의 살림’을 하는 바람에 그것이 ‘남’의 것인지도 모르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는 인간 살림의 알파와 오메가를 교육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남’을 ‘나’로 착각하도록 주입하고, 우리의 ‘나’를 또 하나의 적대감으로 분열시킨 것이 지난 날 우리 공교육의 풍경입니다. 함석헌은 그것을 혁명하자는 혁명가였습니다. 그에게 교육자는 혁명가이기도 합니다.

“교육자가 역사의 뒷 열에 서서는 아니 된다. 앞장을 서야지.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정신적 개척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져야만 바른 교육을 할 수 있다. 권력을 쥔 정치없자 같은 것은 눈 아래로 보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교육자의 모습은 딴판이었습니다.

“몰락의 철상(鐵像) 뒤에 서는 사제(司祭)들이다. 어떤 계급의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 뒤에 서서 허다한 젊은 생명을 거기 바치게 하고, 그 타죽은 데서 흘러나오는 기름으로 살이 뚱뚱 찌는 흡혈층의 행렬에 마지막을 서는 자들이다.”

그가 이렇게 학교와 교육을 비판한 것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직후였습니다. 그때 그 학교가 새로운 학교로 거듭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석헌의 지적은 시간을 초월한 현실을 말해줍니다. 즉 어머니의 혼을 찾는 ‘생각하는 백성’이 독재정권 밑에서 악전고투하다가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한 것이 ‘씨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씨알’의 윤리관은 흔히 학교 도덕시간에 습득될 수 있는 그런 윤리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속에서 전체성에 의해서만 체험되는 인간성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그는 ‘씨알’을 생명이요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인간의 백가지 문제는 언제나 “전체와 개체와의 문제”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의 어지러움을 그 “전체를 잃은 것, 전체의 산 통일이 깨지는데서 온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개인의 정말 발달은 전체가 개체 안에 있고, 개체가 전체 안에 있는 사회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국가주의를 배격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금 국가가 전체를 가장하고 속이는 그 우상숭배주의 때문에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영적 에너지는 얼마나 쓸데없이 소모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인간혁명”,『전집』2권)

문제는 그 반인간적인 행위를 앞장서서 한 실체가 공교육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공교육의 목적은 국민교육에 둡니다. 그것은 18세기 말에 민중해방의 길에서 국민의 생산과 복제를 요구하는 국민국가의 도구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국가가주의 교육 때문에 19세기에 인간의 진보는 20세기에 인류의 재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함석헌이 우주의 윤리화와 인격화라는 인간문화를 시대의 엉겅퀴 질레 밭으로 덮어버린 것입니다. 토인비의 말대로, 국민국가는 전쟁수행기관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 학교교육은 10년간의 기본공통과정을 국민교육이라고 말합니다.

함석헌은 지금부터 50년 전에 국가주의 시대의 국민교육을 청산해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공교육혁명가였습니다. 물론 그는 공교육혁명이란 말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러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에는 공교육이란 말 자체가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갈리레오도 과학혁명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고, 루터도 종교혁명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문제가 아니라 혁명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오늘날 썩고 있는 공교육의 낡은 체제가 대혁명 시절에는 도리어 낡은 교육체제에 대한 교육혁명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 출생한 공교육은 정치적인 시민혁명의 선물(膳物)이 아니라, 거꾸로 시민혁명이야말로 교육혁명의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즉 시민혁명이 발생하기 전에 프랑스 사회는 약 40년간 내셔날(national) 교육에 대한 논의를 끊임없이 진행시켰는데, 그 시민적 합의를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시민혁명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교육혁명은 하루아침에 총칼로 권력을 잡는 그 따위 혁명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치석, 내일 계속됩니다.)


이치석 선생님은
함석헌의 역사관
* 이치석 선생님은, 프랑스 아미앙대학교 역사학 박사과정(D.E.A)수료하였으며, 함석헌의 "씨알교육"을 우리나라에 보급하려 애써오셨다. 현재"씨알의 소리"편집위원으로 계신다

* 저서로는『씨알 함석헌평전』『전쟁과 학교』가 있고, 공저로는『황국신민화교육과 초등학교제』외 다수가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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