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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서평, 독후감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by anarchopists 2019. 12.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21 07:09]에 발행한 글입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콜롬비아 출신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이다. 상당히 독특한 소설이다. 한 사람의 죽음, 예고된 죽음, 당사자 말고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살인의 의도...... 소설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

“그들이 그를 죽이기로 한 날, 산띠아고 나사르는 주교가 타고 오는 배를 맞이하기 위해 새벽 5시 30분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외지에서 온 부잣집 아들인 바야드로 산 로만은 콜롬비아의 한 마을에서 앙헬라 삐까리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청혼을 한다.

앙헬라 삐까리오는 내키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강권으로 결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온 마을이 다 떠내려갈 정도의 떠들썩한 피로연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바야드로 산 로만은 앙헬라 삐까리오를 친정으로 쫓아보낸다.이유는 ' 결혼 전에 이미 순결을 잃었다 '는 것.

쌍둥이 오빠인 뻬드로 삐까리오와 빠블로 삐까리오는 앙헬라 삐까리오를 추중하고, 그녀의 입에서 그 동네의 부자인 산띠라고 나사르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쌍둥이 오빠는 칼을 들고 산띠아고 나사르를 죽이러 나선다. 동생의 명예를 되찾겠다면서.

그런데 칼을 들고 나선 쌍둥이 오빠는 만나는 사람마다 산띠아고 나사르를 죽이겠노라고 떠들고 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앙헬라의 두 오빠가 산띠아고 나사르를 죽이겠다고 돌아다니는 것을 안다. 이들이 죽음을 예고하고 다니는 것은 “이 가엾은 청년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무시무시한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었을 것이다.

“제발 우리를 잡아서 감옥에 잠시 가둬다오, 그러면 우리는 할 일을 다 한 것이고, 사람을 죽일 필요도 없을 것 아닌가?”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명예를 찾기 위한 두 쌍둥이 형제의 행동을 지지하던지, 아니면 무시하던지 하면서 이 형제가 산띠아고 나사르를 죽이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흐름 속에 형성된 집단적 책임의 문제를 부각을 시키고자 한다.

마을 전체가 살인의 책임을 지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은 죽고, 그 사람을 죽인 가족은 마을을 도망치듯이 떠났다. 그런데 앙헬라를 쫒아낸 바야드로 산 로만은? “수많은 사람이 희생자는 단 한사람이라 생각했다. 그 희생자는 바로 바야드로 산 로만이었다. 다들 그 비극의 다른 주인공들은 삶이 각자에게 지정해 준 몫을 품위 있게,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위대하게 완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쫓겨난 앙헬라 삐까리오는? 한 사회를 휘감고 있는 순결이데올로기의 희생자이지만 그녀는 수동적인 희생자로 머물지 않았다. 자기가 원치 않아서 결혼을 해야 했던 바야드로 산 로만, 자신을 쫓아냈던 바야드로 산 로만을 자신이 사랑했었다는 것을 깨닫고 17년 동안 그 남자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은 없지만 반송은 되지 않기에 받아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17년 뒤에 바야드로 산 로만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품었던 사랑을 그가 그녀에게 품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는 깜작 놀라고 말았다” 고결하고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게 하는 그녀

이 소설은 실제 있었던 사실에 기반 해서 쓰여졌다고 한다. 아랍의 명예살인이든, 우리나라의 순결을 잃으면 자결을 요구하는 조선시대의 모습이든. 여성에게 가해지는 구조적인 폭력인 ‘ 순결이데올로기’의 문제, 그리고 살인에 대한 집단적인 책임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의 문제, 과연 누가 희생자인가의 문제... 150쪽의 짧은 소설이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2011. 8.18.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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