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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말씀과 명상

대학교육 필요한가, 인생낭비다.

by anarchopists 2019. 11.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1/22 06:54]에 발행한 글입니다.


대학교육이 필요한가, 인생 낭비다

[함석헌 말씀]
“옛날에는 학문이 인생관을 넣어주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 교육은 사람 만들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학교는 참 의미의 학교가 아니라, 공장이다. 학생은 제품이다. 졸업이란 규격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여기서는 인생관도 없고 인격도 없다. 인격과 반대되는 물질이, 뜻과 반대되는 행복이 전부다”, “학문은 어디서 시작이 됐느냐? 문예부흥에서 시작되었다. 문예부흥은 교권주의에 반항하여 인간의 자유를 찾는 운동이다. 인간이 자기발견을 한 시대이다.”(《
함석헌저작집》 13, 우리민족의 이상, 42쪽)

[오늘의 성찰]
위 말씀은 함석헌이 1961년 〈국토건설본부〉 요원에게 한 연설내용 중 일부이다. 국토건설본부는 4.19시민혁명(1960)으로 성립된 민주당 장면정부가 4.19체제를 성립하면서 “미취업 대학생과 인력을 구제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곧 4.19시민혁명 이후 형성되는 청년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만든 일자리창출 목적이었다. 건설본부에 투입될 요원들에게 사전교육을 시켜 국토건설현장에 투입하였다. 이때 본부 교육요원(젊은이들)들에게 함석헌이 새로운 나라건설을 위한 마음가짐으로 하라고 한 강연이었다.

한편, 국토건설본부는 박정희 일당들이 일으킨 5.16군사반란으로 그 성격이 변질된다. 곧 청년실업자의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박정희의 군사반란 반대세력(박정희는 이를 불량배로 불렀다. 마치 일제가 민족해방운동을 하는 독립군을 불량선인으로 불렀던 것처럼)과 군미필자를 강제징집하는 목적으로 악용하여 국토건설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본 이야기를 해보자. 위 함석헌의 말을 오늘날의 교육현실에 대입해 보자. 1960년대 말씀이 오늘에 와서 딱 들어맞는 예언이 아니였던가. 오늘의 교육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교육이 필요 없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그래 맞다. 이제 제도교육 특히 대학교육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자본주의사회가 된 지 쾌 오래다. 특히 박정희가 이 나라에 유가자본주의를 강제하면서 이 나라 자본주의는 거의 반병신이 된 채 굴러가고 있다. 그것은 유가자본주의를 강제 안착시키기 위한 경제사회정책들 때문이다. 박정희는 자신의 경제정책의 가시적 성장효과를 끌어내기 위하여 실업자(자본주의 敵) 양산을 막는 정책을 썼다. 곧 1) 군인수를 늘리는 것(자주국방 논리를 내세워 현 68만명까지 늘렸다. 대한민국 적정 병력수는 40만이면 된다), 2) 학생수를 늘리는 것(매년 학생수를 늘리면서 끝내 2011년에는 374만 명에 이름)3) 산아제한(애 하나 낳아 잘 기르자)을 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학생수의 증원은 실업자 생산을 방지하는 데 이용된다. 그래서 김영삼은 경제활성책을 부양책 대신에 대학교수와 대학정원 자율화정책을 써서 대학정원을 늘리고 대학설립조건을 완화하여 대학수를 늘려서 실업자를 대학으로 흡수시켰다.(이른바 5.31교육개혁안, 대학정원 자율화 조치) 그 결과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수요공급의 역조현상으로 대학은 제 기능을 상실하고 직업학교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것은 대부분 대학들이 스스로 그것을 입증한다. 그들 대학의 홍보물을 보면 “취업이 잘 되는 대학”, 작년 취업 100%“가 주된 문구로 나와 있다. 곧 학생들을 자기네 대학으로 유혹하기 위함이다. 말을 바꾸면 대학이 이제는 공부나 인격도야가 아닌 취업학원이 되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고3 담임에게 온갖 선물공세를 통하여 입학생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학은 직업전선에 나가기 전의 실업자 은신처가 되어 버린 셈이다.

이제 대학은 상아탑으로서 최고의 학부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잘못된 구조와 제도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해서는 취업이 안 된다. 대학졸업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대학은 학문연구가 아니고 취업이 목적이다. 그래서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닦은 수양 및 전공과목을 필수로 하지 않고 취업에 유리한, 곧 학점이 잘 나오는 학과와 과목, 그리고 교수를 골라 강의를 듣는다. 그러다 보니 대학 측에서는 상대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원래 대학의 학생평가는 절대평가가 옳다. 이쯤 되면 대학교육의 필요성은 없어진 셈이다.

대학교육이 엉망이 되었는데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있을까.
함석헌 말대로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지 사람을 만드는 곳이지 취업을 준비하는 공장이 아니다. 자본가의 노예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는 곳이 아니다. 그런 탓인지, 오늘날 대학을 나온 고등교육자가 2011년 OECD 교육지표(2011.9.13.)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중앙일보 9.14일자) 그럼에도 고등교육 줄업자가 이렇게 높은 대도 한국사회가 ‘대중적 보수화’로 가고 있다. 이것은 대학교육이 엉망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고등교육 졸업자가 양산됨에도 국민의 사회적 인식수준이 자꾸 보수화한다는 것은 대학교육의 불필요성을 말해준다. 대학교육의 불필요성은 동시에 대학진학을 목표로 교육을 담당하는 고등학교의 존재가치도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대학교육으로까지 굳이 연장할 필요는 없다. 대학교육이 아니고도 실용적 직업교육시설로 대체하면 된다. 고등학교 까지는 보편교육을 실시하고 고등학교를 나오면 곧바로 학위와 관계없는 각종 직업학교를 만들어 여기서 직업교육을 받고 취업전선에 나가게 하면 된다. 인격도 갖추지 못하고 참과 거짓의 사회인식조차 못하는 대학교 졸업자라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늙은이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최근에 2년제 대학을 4년제 대학으로 승격시켜주는 것도 실업률을 줄여보자는 정치인들의 야비한 속셈이 깔려있다. 기본적 사회모순에 대한 개혁을 안 하고 그저 임기응변식 자본주의 경제연장책만 쓰다가는 결국 패망의 나라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들끼리 나눠 먹기식 정책은 이제 그만 두라. 인력낭비요 시간낭비다.

앞에서 조금 이야기 하였지만, 자본주의 경제운영상 어쩔 수 없이 국민 한 사람이 고등학교까지는 다녀야 한다고 한다면 고등학교를 최고학부로 하고, 대학은 필요에 의하여 다니고 싶은 사람만 다니게 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대학교육의 필요성은 굳이 없다는 말이다. 대학은 그야말로 상아탑의 기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최근에 대학이 하도 많다 보니 대학교수가 남발이다. 특히 대부분이 다 그렇지만 예체계 분야는 교수의 자질이 엉망이라는 평가다. 교수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최고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선생의 자질은 따지지 않고 전문기술만을 따진다. 그러다 보니, 인품과 인격이 모자란 선생들이 대학교수로 들어가 지식오염, 교수인플레션 현상만 만들어냈다. 이것은 곧 우리 사회를 타락시키고 지식인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대학당국과 정치관계자는 명심하기 바란다. 이렇게 말해도 저들은 코방귀만 꾸겠지만.(2013.1.22.,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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