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1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황장엽(黃長燁, 1923년생)이 지난 10일(북한노동당 창건일)에 죽었다. 그는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체사상 이론가였다. 그래서 "주체사상의 대부, 김정일의 개인교사"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이렇듯 장엽은 북에서 최고위급 지배층에 속했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대한민국의 김영삼 때, 제 조국을 배반하고 탈북하여(1997) 대한민국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정치망명이라는 허울을 쓰고 대한민국의 권력에 기생하여 온갖 물질적ㆍ정치적 대우를 받으며 배불리 산 사람이다. 게다가 제 분수도 모르고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상임고문(2008)과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북의 김정일 정권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그런 그에게 대한민국은 억지 훈장(최고)을 수여하고 국립묘지 현충원에까지 안장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한반도의 비극과 공허함을 본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배반자가 환영받는 사회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한 민족은 한 땅덩어리에서 세계 이념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과 북으로 갈렸다. 그래서 한쪽은, 지금은 그 이념적 관념이 약화되고 있는 사회주의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또 다른 한쪽은 이념적 세력이 강화되고 있는, 곧 모순의 양산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 자본주의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 이념을 달리하는 지배구조를 가진 두 국가들은 같은 형제들이면서도 서로 죽일 듯이 으르렁대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체제논쟁만 일삼고 있다. 한반도의 허무가 따로 없다. 한쪽은 이념의 강화와 함께 물질적 곤란에 직면해 있고, 한쪽은 타락되고 부패한 물질적 풍요에 흥청망청되고 있다. 한쪽은 체제유지를 위해 주체이념으로 인민을 사상으로 무장시키고, 다른 한쪽은 빵과 써커스로 정신적 공허를 만들어 통치에 순응시키는 국민으로 만들고 있다. 쌍방이 국가주의의 대조적인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모두 국가는 있되, 국민(여기서는 모두 민중, 인민으로 쓴다.)은 없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고대 민중을 억압하고 구속하고 속박하는 군주국가가 따로 없다. 오늘의 한반도가 딱히 그 짝이다.
세계는 국가주의에서 공동체주의와 소개인주의로 가고 있다. 국가보다 민중의 크기가 더 크고, 인민이라는 전체보다 개인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과 함께 어떠한 권력(정치, 자본 등)으로부터도 타자화(他者化)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아직도 한반도는 이미 퇴보된 이념에 매달려 국가의 가치를 인민의 가치보다 크게 작용시키고 있다. 그러니 남과 북에 사는 인민들은 개인의 가치를 찾아가기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즉 권력에 의해 모두 타자화된 인간군상들이다. 타자화는 곧 각종 권력에 의해 개인의 가치를 상실한 불투명한 존재, 또는 노예화된 인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북은 정치권력에 의해 노예화된 인간이, 남은 자본권력에 의해 노예화된 인간들이 존재한다.자기가치와 바른 정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국가주의에 세뇌(타자화)된 인간군상들에 의해 별종취급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남과 북에서 모두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는 바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장엽은 지배계급을 위한 주체사상(국가주의)을 만들어 전체 인민을 타자화시킨 잘못된 자이다. 그래놓고 자기도 전체적 지배체제 속에서 숨이 막혔는지 그 속에서 도피하였다. 곧, 자신이 만든 체제와 조국을 배반하고 도망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국가주의에 의하여 자신을 노예화하고 자기조국과 자신이 만든 체제를 비난하면서 한 세월을 보냈다. 불쌍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불쌍한 사람은 남한에도 많이 있다. 김대중(1924년생, 전 대통령)을 비난했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김대중은 북을 방문하여 분단된 땅덩어리를 하나로 잇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자 노력했던 분이다.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2000) 그러자 '자발적 노예화'된 인간군상들이 김대중을 "빨갱이 대통령"으로 몰아세우고 '부관참시'(剖棺斬屍; 죽은 사람의 시체를 꺼내어 토막을 내어버리는 일, 봉건시대는 최고의 모욕과 극형에 속하였다)까지 하겠다고 별 쇼를 다 벌인 적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권력의 노예로 만드는 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극단적 국가주의를 만들고, 남북통일의 장애물로 군림해 왔던 자를 찬양(훈장수여)하고 최고의 명예(국립묘지 안장)까지 수여하는 일에 발을 동동 굴리며 좋아하고 있다. 게다가, 언론권력들은 황을 "의사(義士), 열사(烈士)"로 표현하고 있다. 참으로 권력의 자발적 노예들이 따로 없다.
이제 역사의 시간은 정의의 시간으로 가고 있다. 국가를 지탱해 주던 이념들은 퇴색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주의도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국가주의가 힘을 잃은 만큼 상대적으로 인간도, 자연도 권력에 의한 타자화(불투명한 존재)에서 해방(주체적 존재로 됨)되어 가고 있다. 즉 국가와 사회보다 인간과 자연의 가치가 돋보이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민중들이 낡은 우상인 '이념과 국가주의'에 매달려 스스로를 권력의 자발적 노예로 살고 있다면 이는 인간의 가치, 개인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오늘도 민중들의 무식을 개탄해 본다.(2010. 10.14, 취래원 농부)
김대중의 노벨평화상과
황장엽의 대한민국훈장
황장엽의 대한민국훈장
한 민족은 한 땅덩어리에서 세계 이념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과 북으로 갈렸다. 그래서 한쪽은, 지금은 그 이념적 관념이 약화되고 있는 사회주의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또 다른 한쪽은 이념적 세력이 강화되고 있는, 곧 모순의 양산을 밥 먹듯이 하고 있는 자본주의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 이념을 달리하는 지배구조를 가진 두 국가들은 같은 형제들이면서도 서로 죽일 듯이 으르렁대고 있다. 이들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체제논쟁만 일삼고 있다. 한반도의 허무가 따로 없다. 한쪽은 이념의 강화와 함께 물질적 곤란에 직면해 있고, 한쪽은 타락되고 부패한 물질적 풍요에 흥청망청되고 있다. 한쪽은 체제유지를 위해 주체이념으로 인민을 사상으로 무장시키고, 다른 한쪽은 빵과 써커스로 정신적 공허를 만들어 통치에 순응시키는 국민으로 만들고 있다. 쌍방이 국가주의의 대조적인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모두 국가는 있되, 국민(여기서는 모두 민중, 인민으로 쓴다.)은 없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고대 민중을 억압하고 구속하고 속박하는 군주국가가 따로 없다. 오늘의 한반도가 딱히 그 짝이다.
세계는 국가주의에서 공동체주의와 소개인주의로 가고 있다. 국가보다 민중의 크기가 더 크고, 인민이라는 전체보다 개인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과 함께 어떠한 권력(정치, 자본 등)으로부터도 타자화(他者化)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아직도 한반도는 이미 퇴보된 이념에 매달려 국가의 가치를 인민의 가치보다 크게 작용시키고 있다. 그러니 남과 북에 사는 인민들은 개인의 가치를 찾아가기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즉 권력에 의해 모두 타자화된 인간군상들이다. 타자화는 곧 각종 권력에 의해 개인의 가치를 상실한 불투명한 존재, 또는 노예화된 인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북은 정치권력에 의해 노예화된 인간이, 남은 자본권력에 의해 노예화된 인간들이 존재한다.자기가치와 바른 정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국가주의에 세뇌(타자화)된 인간군상들에 의해 별종취급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남과 북에서 모두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는 바른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장엽은 지배계급을 위한 주체사상(국가주의)을 만들어 전체 인민을 타자화시킨 잘못된 자이다. 그래놓고 자기도 전체적 지배체제 속에서 숨이 막혔는지 그 속에서 도피하였다. 곧, 자신이 만든 체제와 조국을 배반하고 도망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국가주의에 의하여 자신을 노예화하고 자기조국과 자신이 만든 체제를 비난하면서 한 세월을 보냈다. 불쌍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이제 역사의 시간은 정의의 시간으로 가고 있다. 국가를 지탱해 주던 이념들은 퇴색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주의도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국가주의가 힘을 잃은 만큼 상대적으로 인간도, 자연도 권력에 의한 타자화(불투명한 존재)에서 해방(주체적 존재로 됨)되어 가고 있다. 즉 국가와 사회보다 인간과 자연의 가치가 돋보이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민중들이 낡은 우상인 '이념과 국가주의'에 매달려 스스로를 권력의 자발적 노예로 살고 있다면 이는 인간의 가치, 개인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오늘도 민중들의 무식을 개탄해 본다.(2010. 10.14, 취래원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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