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아웃의 블로그에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아들을 낳았다는 기사가 영국 신문에 기사로 났다는 이야기가 써 있다.[AP=연합뉴스, 20.4.29] 기사의 대충 내용을 보면, 그는 육십대이고 아들을 낳은 여인은 20대로 보리스와는 23살 차이가 난다. 그리고 존슨은 부인이 있어 이혼 소송 중인데 아직 미결이다. 이 문제를 영국 언론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다루면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덧붙였다는 내용이다.
만약 이 문제가 한국땅에서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야단이 났을 것은 뻔한 일이다. 보리스를 한국의 정총리라고 가정을 해보자. 야권은 이를 政爭으로 몰고 갈 것이고 그래서 여당은 곤혹을 치르면서 문재인은 이를 어쩌할꼬 전전긍긍하게 될 게 뻔하다. 시민들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엄청난 댓글 돌팔매질을 하면서 정총리의 탄핵/해임/자진 사퇴 등 주문에 온갖 욕설과 함께 글을 올려 나라 안의 시끄로움은 말 할 것도 없고 정부와 여당은 초죽음이 되리라.
그런데 영국은 보리스 총리의 혼외정사와 아들의 탄생을 축하한다고 했다. 그리고 언론도, 시민도 정치권도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조용하다. 바로 西歐문화와 儒家문화의 차이다. 서구는 개인윤리적 가치중심의 개인주의적 문화를 전통으로 가지고 있고, 유가문화는 집단윤리적 가치중심의 집단주의적 문화를 전통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리스총리의 사생아는 개인의 문제이고 또 새생명의 탄생이 더 기쁘다는 영국인의 생각이다.
인간의 윤리는 인간이 만들었다. 그것도 사회공동체의 모든 사람의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소수의 엘리트관료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따라서 인간사회에 존재하는 윤리(전통적 윤리를 포함하여)는 모순일 수도 있다. 얼마든지 바꾸어질 수 있는 인위적이다. 따라서 인간의 천부적인 영성과 인위적 윤리는 엄청난 차이를 갖는다. 천부적 영성은 인간의 기본요양이자, 양심을 말한다. 양심은 곧 자유다. 자유는 상대방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만 그 빛을 발휘한다. 윤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모두를 통제하지만, 영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고 개인을 통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보리스총리가 혼외정사로 아들을 낳은 것은 개인의 교양문제이지, 사회윤리 문제가 아니다. 말을 전이시켜 본다면, 함석헌의 여성문제도 개인의 영성문제이지, 사회윤리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함석헌평화연구소 황보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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