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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사상

함석헌의 퀘이커적 삶- 평화를 위한 삶

by anarchopists 2019. 12.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5/0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학회 2011년 춘계학술발표 발제문-김영태 교수]


信天雄 함석헌의 윤리사상 검토

1. 들어가는 말
2. 함석헌의 윤리관
가. 사회분석
나 새윤리관 확립의 필요성
다. 새윤리의 목표
라. 새윤리 사상- 민의 사상
3. 윤리- 종교의 삶
가. 진보하는 종교적 삶
나, 퀘이커적 삶-평화를 위한 삶

3-나. 퀘이커적 삶: 평화를 위한 삶
퀘이커교는 영국과 미국 중심의 기독교 종파이지만 그것이 한국에까지 전해졌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우세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여타의 군소교파가 착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함석헌이 퀘이커교를 만나 그것을 깊이 이해하고 몸소 실천하였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함석헌 자신은 퀘이커교에 대하여 흥미를 갖게 된 것이 1947년부터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 일본에 있을 적에 퀘이커와 접촉한 사실이 있다. 그는 이 사실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 때부터 퀘이커를 다 알게 됐지요. 그 때 나는 우찌무라와 니도베와 함께 퀘이커 모임에 갔었는데 우찌무라는 무교회주의자가 되었고 니도베는 퀘이커가 되었어요. 함석헌, “퀘이커와 평화사상
”,『함석헌 전집』3, 서울: 한길사, 1983, p. 168.

어떻든 함석헌은 1947년부터 퀘이커에 대해 관심을 갖고, 1960년부터 퀘이커 모임에 참석하다가, 1962년 미국에 건너가 퀘이커교의 성인(成人) 교육 기관인 필라델피아의 펜들 힐(Pendle Hill)에서 7개월 동안 명상과 퀘이커에 대한 연구를 하는 등 퀘이커와 밀접한 관련을 가져오던 중 제 4차 세계 퀘이커대회가 개최된 1967년에는 정식으로 회원이 되었다. 회원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함석헌에게 비친 퀘이커의 매력은 브린튼이 지적한 세 가지, 즉 보편성, 단순성, 평화주의였을 것이다. 브린튼의 말을 직접 음미해보자.

퀘이커교가 마음을 끄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어느 정도 종교적 도덕적 진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 보편성 때문이요, 또 그 평화주의 때문입니다. Howard H. Brinton, Friends for 300 Years ; 함석헌 역, “퀘이커 300년”,『함석헌 전집』15, 서울: 한길사, 1986, p. 94. 한국판 서문.


김경재도 브린튼과 흡사한 서술을 하고 있다.

"함석헌이 퀘이커에 들어가게 된 까닭은 퀘이커 사상은 모든 인간 속에 하느님의 거룩한 빛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능성을 강조하는 점, 그리고 모든 허례허식과 신학적인 추상론을 배제하는 신앙과 삶의 단순성과 간결성, 평등, 박애사상과 평화사상 등이 그가 일생 추구해 왔던 신앙의 유형과 체질에 가장 알맞았기 때문이었다. 김경재, “함석헌의 종교사상과 역사관”,『씨알들의 믿음과 삶』, 서울: 나눔사, 1990, pp. 80~81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함석헌은 퀘이커로부터 어떤 사상을 영향 받았을까? 함석헌은 펜들 힐에 머물면서 브린튼의 『퀘이커 300년』(Friends for 300 Years, 1964)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 중의 가장 큰 것을 공동체에 관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날까지 대체로 자유주의 속에서 살았으니만큼 개인주의적인 생각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리석고 교만하게도 세상이 다 없어져도 나 혼자만으로도 기독교는 있을 수 있다 했습니다. 못할 말이었습니다. 이제 전체를 떠난 개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천재, 영웅, 이상, 로맨티시즘, 개인, 예언자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잘났어도, 아무리 못났어도 개인의 뒤에는 늘 전체가 있어서 그 하나하나의 행동과 사상을 규정하고 있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나만 아니라 넓게 말하면 오늘날 되어 있는 종교가 다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퀘이커들이 말하는 단체적 신비주의는 깊이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 Howard H. Brinton, Friends for 300 Years ; 함석헌 역, “퀘이커 300년,”『함석헌 전집』15, 서울: 한길사, 1986, p. 357, 역자의 말


함석헌은 동양의 신비주의와 서양의 신비주의(퀘이커 신비주의)의 명상법이 개인이냐 단체냐에 따라 상이하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퀘이커들은 하느님의 임재를 느끼기 위해 명상을 한다고 그러지요. 그들의 명상은 동양 것과 다릅니다. 개인적인 명상이 아니고 단체적인 명상이니까 2~3명에서부터 수백명에 이르기까지 단체로 명상할 때 하느님이 임재하신다는 것인데, 현대적으로 볼 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지요. 개인주의가 아니니까. 동양의 명상은 옆 사람이 참석을 해도 나는 내 참선이고 저 사람은 저 사람 참선이기 때문에 모래알처럼 되는 것이지요. 함석헌, “퀘이커와 평화사상”,『함석헌 전집』3, 서울: 한길사, 1983, p. 162.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함석헌이 공감했던 것은 단체적 신비주의 뿐만 아니라 윤리적 신비주의(ethical mysticism)였다. 윤리적 신비주의란 신비체험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수직적인 관계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인 수평적인 윤리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현시되는 신비주의를 말한다.

함석헌이 윤리적 신비주의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실œ실œ옮기려고 노력한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지만 그것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지대같지는 않다. 그러나 퀘이커교가 어디까지나 신비주의라는 것을 강조했으며, 그 신비주의는 타신비주의와는 다르게 상식주의가 가미된 것이라는 것을 다음짼대같이 환기하였다.

퀘이커는 신비주의와 상식주의를 둘 다 경험해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에 있어서 종교에서 문제되는 것의 하나는 신비주의입니다. 퀘이커 발생초기에 있어서는 신비주의가 상당히 강했다면 강했던 듯합니다. 함석헌, “예배모임의 뜻”, 함석헌 외(外),『현대의 선(禪)과 퀘이커 신앙』, 서울: 삼민사, 1985, p. 61.

함석헌은 퀘이커교의 신비주의적 성격에 매료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평화사상에 공감하여 그것에 적극 가담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비주의가 이론적인 것이라면 평화사상은 실천적인 문제로서 함석헌은 이 양자를 불가분리의 관계로 설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전쟁을 묵인하는 데 반해 퀘이커는 그것을 적극반대하고, 심지어 적국이라 할지라도 그 적국이 어려움에 직면할 경우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넋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따라서 함석헌이 평화를 위해 몸소 헌신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함석헌은 한국인의 심성을 계몽하기 위해 많은 글을 썼고 강연을 했으며 민주화를 위해 독재 군부에 맞서 싸웠다. 예컨대 함석헌의 씨알사상(민중사상)은 이미 퀘이커교에서 가르쳐 온 “모든 사람 속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것”(that of God in every man)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충분히 갖게 한다.

안병무는 함석헌의 평화사상을 네 가지로 특징짓고 있다. 첫째, 그의 평화 의식의 출발은 전체의식에 있으며; 둘째, 그의 평화사상은 종교적 신념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셋째, 한국의 평화는 곧 세계 평화에 직결된다고 보아서 평화사상의 한국적 이해를 도모하며; 넷째, 평화운동의 주역은 유약하고 무능하며 이름 없이 음지에서 고난받는 민중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안병무, “함석헌의 평화사상”, 『과학기술혁명과 한국사회 갈등』, 서울: 한길사, 1991, p. 5.

퀘이커 사상이 함석헌에게 매력으로 비치는 것 한 가지를 더 부연한다면 아마 그들의 관용성 내지는 다원주의적 사고방식일 것이다. 다음의 내용은 함석헌이 바라본 퀘이커 교도들에 대한 시각의 일면이다.

그들은 아주 넓은 마음으로 누구나 용납한다. 퀘이커교 안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다. 기본 신앙의 극단적인 보수주의로부터 유니테리언, 불교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다 있다. Howard H. Brinton, Friends for 300 Years ; 함석헌 역, “퀘이커 300년”,『함석헌 전집』15, 서울: 한길사, 1986, p. 354, 역자의 말

퀘이커교가 정작 이런 것이라면 퀘이커교는 최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종교다원주의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배타주의나 포괄주의와 차별성을 갖게 되며, 어떤 특정 교의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열려 있는 점은 현대 철학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과정 철학(process philosophy)이나 과정 신학(process theology)의 선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의 역사를 3기로 보는 함석헌의 종교사관에 비추어 볼 때 퀘이커는 분명히 제3기에 속하는 현대적 종교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제1기는 맹목적 의지의 종교시대, 제2기는 감정의 종교시대, 제3기는 이지(理智)의 종교시대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함석헌은 퀘이커교를 최종적 현대 종교로 보고 거기에 만족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Pendle Hill의 명상”에 나타난 그의 고백은 퀘이커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내 임이 다섯입니다. 고유종교, 유교, 불교, 장로교, 또 무교회교,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내 영혼의 주인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 내가 같이 있는 퀘이커도 내 영혼의 주는 아닙니다. 함석헌, “펜들 힐의 명상”,『함석헌 전집』3, 서울: 한길사, 1983, p. 318.

함석헌이 ‘새 종교론’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퀘이커를 넘어섰거나 극복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소 막연하긴 하지만 그가 기대하는 ‘새 종교’의 세 가지 요건은 첫째, 하나 되는 종교; 둘째, 합리적인 종교; 셋째, 뚫려 비치는 종교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 비추어 함석헌의 종교사상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장로교에서 시작하여 무교회 신앙으로, 무교회 신앙에서 퀘이커 신앙으로 무한히 뻗어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함석헌에게는 정녕 퀘이커도 마지막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퀘이커에서 다른 그 무엇을 지향하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아무튼 함석헌에게서는 종교적 천재성이 엿보인다. 김경재는 종교 사상가로서의 함석헌의 위대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개신교 역사 100년 만에 함석헌이라는 정신의 최고봉에 도달한 종교사상가를 한국 근대사는 배출하였다. 그는 한국 개신교 100년이 낳은 최고의 종교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동양 종교사상을 한 몸 안에 융섭한 위대한 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하고 궁금해 할 온 세계 종교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연구해 볼 하나의 진주와 같다. 왜냐하면 함석헌이라는 한 큰 마음 안에서 동과 서가 만나고, 불교와 기독교가 만나고, 노장의 자연주의와 성서적 자연주의가 만나고, 종교적 신비주의와 합리적 과학주의가 만나고 있는데 단순한 병존이나 갈등이나 천박한 습합(習合)이 아니라 인류 미래 종교의 어떤 방향을 암시하는 실증적 범례를 만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재, “함석헌의 종교 사상”, 『씨의 소리』100호(1989. 4), p. 58.

이처럼 함석헌은 인간혼의 깊이와 인간 내면성의 영성결을 누구보다도 깊이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자는 아니라는 것이 김경재의 주장이다. 함석헌을 신비주의자가 아니라고 갑작스럽게 국면 전환을 하고 있는 김경재의 주장이 궁금하다.(2011. 4.30, 김영태, 내일 계속)

김영태 교수는
종교윤리 전공하였으며 종교분야 연구자임. 전남대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재직(1981~2010), 현재 함석헌학회 이사이며, 한국윤리학회 회장을 맡고 있음. 그 동안 한국종교문화학회 공동대표, 종교문화연구소장 등을 지내면서 윤리학 연구 및 종교간 대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음.

그의 저서로는 「John Hick의 종교철학」, 「퀘이커 신비주의에 관한 연구」, 「미국 실용주의의 종교관」, 「칸트의 도덕종교론에 대한 신학적 고찰」 등이 있음.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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