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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함석헌은 말한다-통합진보당 해체 유감

by anarchopists 2019. 10. 2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12/20 06:46]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은 말한다
-통합진보당 해체 유감-


2014년 12월 19일 오전 10시,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대한민국 정치정당의 하나인 통합진보당의 해체를 선고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마디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명령을 결정한다는 것은 21세기 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재소속 재판관들에게 대한민국이 왜 노벨문학상이 없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것은 분단(국가안보)을 핑계로 한 사상의 통제에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권력들은 건국 이래 권력유지 내지 집권 연장을 위하여 분단조국의 현실을 악용(惡用)해 왔지, 민족분단을 진정 통일해 보려는 의지를 가져본 적이 있는가.

통일이 되면, 친일적·친미적 수구권력이 더 이상 장기집권이 어려워질까 봐 분단현실을 깨소금처럼 이용만 하려고 했지, 민족의 영광과 조국의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는 반공을 국시로 정적(政敵)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거나 감옥으로 보내 오랜 세월 사회와 차단함으로써 유능한 인재성을 말살시키고 말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권력유지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합법을 가장하여 사법살인을 저질렀지 않았는가. 사법살인의 첫 번째 인물이 조봉암이 아니던가. 조봉암은 사실상 좌익세력이 아님에도 빨갱이, 간첩으로 조작하여 재판이라는 사법수단을 악용하여 죽이지 않았던가. 바로 이승만의 권력지상주의라는 독재권력 유지 때문이 아니던가. 그 후에도 정치적 논리에 의하여 감옥에서 억울함 죽음을 당하거나 영어(囹圄)의 몸이 된 자들이 수두룩하게 계속되지 않았던가.

독재자들의 권력지상주의 사고는 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늘 희생양을 찾는다. 그게 대한민국에서는 분단현실을 악용한 반공이데올로기다. 그래서 희생을 당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내면의 정신세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권력유지를 위해 계속 집권하기 위해 자유주의자, 평화주의자, 통일운동가들을 죽여야 했다. 그 명분은 늘 공산주의자, 국가변란음모자, 간첩(빨갱이) 종북세력 등의 국가안보의 위협이라는 허울이다. 그리고 고문을 가하여 사건을 조작해 낸다. “공산주의가 국가를 전복하려고 했다는 명목으로 사건을 조작한 것이 박정희 때의 인혁당사건이고 전두환 때 아람회와 오송회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독재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게 이들 권력지상주의자들의 논리다.

이 나라의 권력지상주의자들에게는 나라사람들을 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인 민주(民主)의 주민(主民, the people: 주체적인 권리자)으로 보지 않고 아닌 국가지상주의(nationalism)의 국민(國民, the nation: 노예적인 예속자) 정도으로만 본다. 곧 국민은 국가의 노예적 존재라는 말이고 중인(衆人)은 나라의 주체적 존재라는 의미이다.

국민(國民)이라는 말은 고대중국과 서양의 로마가 모두 피지배층인 백성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가 자본주의 생산약식의 출현(17~18세기)과 함께 근대국가와 민족주의가 출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절대왕정 하의 국민국가가 출현하면서 부르조아(자유시민, 상인계급)만을 국민으로 설정하게 된다. 따라서 이 당시 국민은 정치적 권리를 갖는 문화적 주체로서 국민이 아니었다. 그후 프랑스 시민혁명(1789)을 거치면서 문화적 주체로서 정치적 권리를 갖는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문화적 주체적로서 국민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었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피지배층의 개념을 갖는 백성의 개념이 상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일본제국주의(이하, 일제)의 악질적이고 야만적인 침략과 함께 식민지조선으로 추락하고 일제의 통치를 당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야만적 만주침략(1931. 9.18)과 함께 중국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식민지조선을 이용한다. 이어 세계침략의 야욕을 가진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1941. 12.7) 전쟁의 인적 물적 자원을 조달하기 위해 식민지조선에 황국신민화정책을 쓴다. 여기서 국민학교라는 말이 나온다. 즉 식민지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만들고자 한 의도이다.

이때 국민학교라는 말은 황국신민을 만드는 학교라는 의미의 황국(皇國)의 국(國)과 신민(臣民)의 민(民)을 따서 만든 말이다. 국민학교를 거쳐 나오는 사람들은 국민 곧 황국신민이 되는 셈이다. 이에서 꽈리처럼 연결되어 나온 명칭들이 국어(國語)요, 국사(國史)요, 국기(國旗)요, 국회(國會)다. 그런데 해방조국에서 헌법을 만들면서 아무 생각 없이 황국신민의 개념으로써 노예적 존재라는 뜻의 ‘국민’이라는 용어를 버젓이 썼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을 잡은 권력자들은 아직도 국민을 문화적 주체, 정치적 주권자로 안 보고, 피지배층, 곧 노예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자기 권력에 대항하는 노예적 존재(국민)들은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는 독재적 발상을 하는 이유가 여기서 생겨났다. 오늘의 통합민주당 해체는 이승만이 조봉암을 사법살인하고 박정희가 인혁당을 사법학살하고, 전두환이 아람회와 오송회를 사법매장한 꼬낙서리와 무엇이 다른가. 오늘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체 선고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에 대한 사법살인이요 사법탄압이다. 5적후예들의 도깨비 세상을 만드는 짓거리다.

오늘의 사태는, 이승만이 반공논리로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거부한 이래, 박정희와 전두환의 반공을 국시로 하고 빨갱이몰이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소용돌이치는 물속에 처박아버린 같은 꼴이 되었다.

오늘의 사태는, 김대중 이후,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정의로운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민주주의를 이명박, 박근혜가 국가안보라는 헛된 명분을 내몰아 종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다시 가두고만 꼴이 되고 말았다.

민주주의가 종북의 올무에 걸려넘어지면서 이제 이 나라는 국가에 예속되는 국민만 살아남고 자유와 정의를 생각하는 인민(민중)은 사법탄압 속에 울부짖는 강아지꼴이 되고 말았다.

이 나라가 진정 민주주의 나라인가. 표현의 자유가 있는가, 결사의 자유가 있는가. 언론의 자유가 있는가. 집회의 자유가 있는가. 선거의 자유가 있는가. 정당결성의 자유가 있는가.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다양성에 있다. 종교다원주의, 사상다원주의, 인종다원주의, 문화다원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말고는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당다원주의를 억압하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는 죽은 민주주의가 된다. 5적의 후예들이 부활했다. 새정치연합도 이제 까불면 죽게 생겼다. 찍소리 말고 연말 잘 보내기 바라는 심정이다. 아아 광명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오련가(2014. 12.19 밤, 취래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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