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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함석헌은 말한다- 상식이 안 통하는 나라

by anarchopists 2019. 10. 2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12/27 07:03]에 발행한 글입니다.


함석헌은 말한다
- 상식이 안 통하는 나라-


의인(義人)이 부끄러워하는 시대다. 의인의 책망을 들을 수 있고, 의인이 의(義)를 위하여 죽어주기를 아끼지 않는 시대는 오히려 다행스런 시대다. 의인이 죽기를 부끄러워하는 시대는 참 불행한 시대다....(지금은 의인이) 죽을 시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미칠 수박에 없다. 속이 썩는 시대는 무르익은 과일같이, 속에 병균을 잠복시켜 가지고 있는 문둥이 미인같이. 그 겉모양은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은 썩은 속의 표시밖에 되는 것이 없다. 무서운 병이 나타고 있다.”(《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2009, 282쪽)

이 글은 함석헌이 1930년대, 조선 성종시대를 역사적으로 평가를 하면서 쓴 비평이다. 지금이 꼭 그런 시대 같다. 오늘의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보다 못하다고 평한다면 글쓴이를 매도하고 욕을 할까. 함석헌은 조선 성종시대 있었던 사실을 가지고 의인이 부끄러워하는 시대라고 평했다. 그것은 성종이 자기 시대에 창피한 일(기생을 가지고 두 관료가 서로 제 것이라고 다튼 부끄러운 사실)이 있었다고 역사에 기록되면 그게 자신에게 오점이 될까봐 올바른 판결을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자기 평가를 나쁘게 할까봐 정의로운 판결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정의를 외면하는 시대를 의인이 죽기를 부끄러워하는 시대라고 평했다.

지금 이 나라는 정의와 상식을 외면하는 참 부끄러운 시대를 만들고 있다. 부끄러워 죽을 의인(義人)도 없지만 상식(常識)조차 통하지 않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 상식이라는 것은 다수의 보수세력은 통하고 소수의 진보세력은 안 통하는 게 아니다. 진보가 통하는 데 보수가 안 통하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보수나 진보의 이념과는 상관이 없이 통하는 게 상식이다.

북이나 남이나 단군의 자손이요, 한민족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남과 북이 핏줄이 같은 한 민족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같은 민족이 정치와 이념논리에 의하여 강제된 영토분단과 국가운영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상식적으로 아는 사실이다. 그 중 남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나라이고, 북은 공산주의 나라라는 것도 상식으로 아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가진 평등한 공화국 사회이고, 공산주의는 다양성이 없는 정당 결성과 표현의 자유가 없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공화국 사회라는 것도 상식으로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공산사회의 일원주의(一元主義)와 달리 다원주의(多元主義)가 생활과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다 아는 상식이다. 이 다원주의가 존중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종교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공산사회에서는 불가능 일이다. 그리고 다양한 인종들이 들어와 행복한 다원가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유도 민주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상식이다.

민주주의 제도 속에 존재하는 문화의 다원주의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와 달리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반대의 자유, 생각의 자유가 있다. 그래서 창조적 문화 창작활동이 가능하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은 민주주의가 갖는 상식이다.

그런데 유독 정치권에서만이 다양성의 상식을 부정하고 있다. 정당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민주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여러 목소리를 내는 정당들을 만들어 의회에서 여러 의견을 대변해 주는 것은 나라발전에도 좋고, 건전한 국정운영에도 좋다. 이게 상식이다. 그런데 군대식으로 같은 대대(大隊) 안에서 숫자만 다른 1중대(中隊), 2중대, 3중대의 성격을 갖는 정단만 있어야 한다면 민주주의 상식에 크게 어긋난다. 민주주의의 생명인 다양성을 부정하고 배재하는 정치권의 논리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제(國体)를 만든 것은 정치권력이다. 자신들이 민주주의 국체를 만들어놓고 다양한 정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헌법 제3조)고 되어 있다. 즉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의 북방한계선 압록강까지를 말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따라 민족통일과 영토통일을 지향하는 자세를 갖는 것은 보수나 진보냐를 막론하고 당연한 논리이다.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정치권력이 평화운동과 통일운동을 하는 나라사람들에게 '이념안경'을 들이대고 종북세력으로 몰고 있다면 이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또 평화적 통일운동을 하고자 하는데 헌법정신과 모순(矛盾)관계를 가지고 있는 장애물이 발견된다, 바로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률이다. 따라서 평화적 통일운동을 위하여 헌법과 법률이 서로 모순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를 이념논리로 몰고 가서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을 하는 나라사람들을 종북세력이라고 매도하고 잡아가둔다면 이것은 상식이 없는 권력남용이다. 통일을 하지 말자는 정치권력의 속셈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이다.

올해 한국의 학자들이 이 나라의 올해 모습을 사자성어로 ‘지녹위마’(指鹿爲馬)라고 표현하였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상식이 안 통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부끄럽다. 의인이 있어도 우리 사회를 위하여 죽기를 부끄러워하는 그런 상식이 안 통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겉모양은 아름다우나 속이 썩어 들어가는 문둥이 미인과 다를 바가 없다.(2014. 12. 26. 새벽 취래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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