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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토요 시사

[토요시사] 그레그, 천안함 발언 왜?

by anarchopists 2020. 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11 08:1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한미압박공조를 겨냥한 그레그 전 대사의 천안함 발언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의 ‘천안함 발언’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9월 1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 정부가 천안함 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명박 정부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주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던 그는, 9월 3일 <교통방송> 방송에서의 인터뷰에서는 “천안함 침몰은 사건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했다.

9월 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는 더욱 직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한국 정부는 러시아 조사단이 보고 싶어하는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고, 러시아 조사단이 제기한 의문에도 답변을 거부해 잠정결론을 내릴수 밖에 없었다”며 “한국 정부는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상세히 밝혀 모든 의문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측이 “한국에 조사단을 파견해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 조사단을 파견할 필요가 없다”며 중국측에 권고했고 중국측이 이에 따랐다는 내용까지 주장했다.

물론 그레그 전 대사의 입을 통해 드러난 것들은 사실 암암리에 회자되어 왔던 ‘사실’이다. 전직 주한미대사까지 지냈던, 한미 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능통한 미국 인사가 노골적으로 MB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에 ‘반기’를 드는 이같은 현상은 극히 이례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린다면 ‘이 정도면 막 가자’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그레그 천안함 발언, 왜?
왜 갑자기 그레그가 작심한 듯, 그것도 지미 카터가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않은 시점에 이 같은 발언을 언론을 통해 쏟아내는 것일까. 그레그 전 대사는 천안함 발언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의도에 대한 추적은 지미 카터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이 성사되지 않은 데서부터 찾아야 할 듯 하다. 게다가 그는 <교통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카터 전 대통령이 예정대로 올 경우 김 위원장을 못 만날 수 있으니 일정을 늦추라는 요청을 했다”며 “(그러나) 카터센터 쪽에서 그대로 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뉴욕 북한 대표부와 애틀란타의 카터센터 양쪽에서 확인한 것”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한미 간의 유화 공조에 앞장서 왔던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는 북한 고위 인사의 미국 방문을 추진해왔던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는 지미 카터 방북을 통해 북미 간의 핵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 과거와 같은 핵 협상이 재개되고 북미 간의 대화가 추진되기를 바라는 미국 내의 대표적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교통방송>과의 인터뷰 발언을 통해 지미 카터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김정일-지미 카터 면담 불발’ 이유를 김정일 위원장이 지미 카터를 의도적으로 만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 면담이 불가능한 시기에 방북 일정을 추진한 데 있다고 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 전개에 대단한 아쉬움 혹은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언을 종합해서 유추해 본다면 그레그 전 대사는 ‘김정일-지미 카터 면담 불발’의 원인을 미국의 적대정책 지속으로 보고 있으며, 미국의 적대정책 지속은 한미 간의 ‘천안함 공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한미 간의 ‘천안함 공조’가 지속되는 한 북미 교착 상태 해소는 불가능하다는 차원에서 한미 ‘천안함 공조’를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안함 관련한 발언을 내뱉고 있다는 잠정 결론이 가능하다.

이 같은 결론에 보다 설득력을 부여하는 상황 전개가 그 이전에도 있었다. 한미 간의 ‘천안함 공조’가 굳건했던 지난 5월 말 제2차 미중 경제 전략대화가 열렸다. 이 대화에서 미중 양국은 ‘한반도 안정 유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에 의견 일치를 이룬 바 있다. 회담에 참여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역내 평화와 안정에 대해 가장 걱정하는 나라는 중국일 것”이라며 “미·중 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실현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발언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은 천안함 국면이 진정된 이후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가 방북하여 북미 간의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방안을 미국측에 제의했다. 이 제의를 미 행정부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최소한 미국 내의 대화파를 중심으로 하여 평양에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를 보내는 문제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지난 5월부터 북한이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를 초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국측의 이 같은 제안은 북중 간에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한편 중앙일보와 통일뉴스 역시 미 행정부의 특사 움직임을 보도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7월 10일자 기사에서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미국 고위 재야인사의 방북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원칙적인 동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으며, 통일뉴스 역시 7월 14일자 기사에서 “미중 전략대화에서 천안함 사건의 마무리나 북미 관계 개선 등에 대한 큰 합의가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인다”며 “미중 전략대화 직후 미국이 뉴욕 채널을 통하지 않고 한 재미동포의 조언을 받아 유럽 채널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를 타진했다”고 전한 바 있다. 통일뉴스는 “북측도 이를 수용해 7월말, 8월초 경 오바마의 친서를 갖고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는 문제가 논의됐다”고 덧붙였다.

정책 놓고 치열한 싸움 벌이는 미국 정가
이제 대략적인 윤곽이 그려진다. 그레그 전 대사 등 미국내의 대화파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온 이후 오바마 특사를 평양에 보내는 등 천안함에서의 출구를 모색하고 있었으며 이를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북중 양 정부와 최소한 미국 내의 대북 대화파간의 직간접적인 교감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 내의 압박파들이 끝내 이같은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리처드슨 방북도 추진되지 못했고, 지미 카터 역시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 자격을 부여받지 못하고 즉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갖지 않고 방북하게 되었다. 북한 외교 담당 인사들은 지미 카터 방북 일정 연기를 요청하면서 ‘김정일-지미 카터 면담’을 성사시키려 했다. 그러나 결국 대북 대화파들의 출구 모색 찾기는 압박파들의 반대에 부딪쳐 끝내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즉 오바마 대통령은 압박파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된 것이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전환을 둘러싸고 미국 내의 대북 대화파와 압박파 사이에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레그 전 대사의 최근 연이은 ‘천안함 발언’은 바로 이 싸움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그레그 전 대사를 포함한 미국 내의 대화파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압박파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압박정책을 지속하는 원인을 ‘한미 천안함 공조’에 두고 있다. 따라서 미국 내의 ‘주도권 싸움’에서 대화파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미 천안함 공조’를 공격해야 하는 요구가 발생했으며, 바로 이같은 요구 때문에 그레그 전 대사의 ‘천안함 발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레그 발언이 정세상 갖는 의미
김정일 위원장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압박정책 유지의 큰 수단이 사라졌다. 즉 중국의 북한 견제 및 압박이라는 수단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가 압박정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미공조 구체적으로 말해 ‘한미 천안함 압박공조’만이 유일한 수단으로 남게 되었다.

그레그 전 대사의 최근 발언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유일한 수단인 한미공조마저 심각한 상처를 받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게 될지는 러시아의 천안함 보고서 공개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9월 4일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천안함 조사 결과가 러시아 최고 군사안보협의기구인 ‘국가안보회의’에 넘겨졌다고 한다.

러시아가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보도도 있다. 한국 정부에 전달될지, 또한 러시아 조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 공개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비록 그레그 전 대사의 발언이 터져나왔지만 그 발언 자체가 오바마 행정부의 압박정책을 바꾸고, 한미 천안함 공조를 파기하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압박파와 대화파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바마 행정부의 압박 정책 수단이 점차 사라지거나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한반도 정세는 불투명한 안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머지않은 시기에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확 트이는 환경이 나올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2010. 9.7, 장창준)

장창준 선생님은
젊은 일꾼으로 통일문제연구자이다. 2001~2006년 동안, 남북공동실천연대 부설 한국민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에서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복관계 전문가로서 활발한 연구실적을 내놓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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