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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토요 시사

김정일과 후진타오는 왜 만났을까

by anarchopists 2020. 1. 11.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9/04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후진타오가 북한 후계자 낙점을 위해
베이징에서 창춘까지 이동했다?
- 북·중 정상회담, 대형 경제협력 프로젝트 합의한 듯 -

어설픈 주장들
지미 카터의 방북에 맞춰 김정일 위원장이 전격 방중한 것을 두고 많은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미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된 방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외교의 기본을 무시하는 분석이다. 아무리 북중 관계가 긴밀하다고 하더라도 김정일 위원장과 후진타오 주석간의 정상회담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임은 자명하다. 최소한 1~2주일 전부터 북중 양국이 준비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 김정은’을 중국 지도부에 인사시키려는 목적으로 방중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더 나아가 중국지도부로부터 ‘김정은 후계자 낙점’을 받기 위한 행보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도 아니다. 이미 북중 관계를 경제적 종속으로 바라보고 있고, 정치적 종속을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같은 분석 역시 말도 안 된다. 만약 중국의 지도부에게 ‘김정은 후계자 낙점’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발걸음은 베이징을 향했어야 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후진타오를 만난 곳은 베이징에서 한참 떨어진 창춘이었다. ‘대국의 지도자’ 후진타오가 ‘소국의 후계자 승인’을 위해 베이징에서 창춘이라는 먼 거리를 이동해서 ‘소국의 지도자’를 만난다? 어느 과거 어느 역사에서 그같은 사례가 있었는가.

그 같은 분석이 틀린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중국은 북미 사이의 대타협을 원하고 있다. 북미 사이의 대타협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로 이어지길 바란다. 최근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핵문제에 대해 북한 지도부와 ‘의견 일치’를 본 중국의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 특별대표가 바로 한중미러 순방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 지도부의 입장에서 지미 카터의 방북은 중국의 바램이 현실화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김정일-지미 카터의 면담이 성사되고 거기서 향후 북미 직접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일부 분석가들의 주장대로 북한의 후계자를 중국 지도부가 낙점할 정도로 중국이 북한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면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하루 이틀 연기해서라도 지미카터와 김정일 회동을 성사시켰을 것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일정상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북중 정상회담은 27일 열렸고, 김정일 위원장은 26일 중국으로 향했다. 최소한 하루 정도는 김정일 위원장의 행보를 늦출 수 있는 시간적 여지가 있었다. 북중 종속 관계의 시각에서는 이 부분마저 설명할 수 없다.

김정일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의 진짜 의미
따라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 김정일 위원장은 지미 카터를 만나지 않고 애초의 방중 일정을 고수했을까. 앞서 지적했던 대로 김정일 위원장이 지미 카터를 만나려고 했다면 만날 수 있었다. 26일 일정을 뒤로 미루고 지미 카터를 만난 후 27일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동안 미국의 고위 인사가 방문했을 때 북한 최고 지도자의 면담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94년 김일성 당시 주석이 지미 카터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북미 사이의 핵협상이 타결되었고 일촉 즉발의 전쟁위기가 해소되었다. 남북 정상회담도 합의되었다.

2000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방북했고,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미사일 문제에 대해 거의 타결을 보았다. 남과 북은 6월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가 급진전되던 상황이었다.

2009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했고,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북미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 이후 보즈워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특사가 방북함으로써 북미 직접대화가 진행되었다. 남북 관계 역시 개선되어 개성공단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북한은 특사조문단을 보냈으며 청와대를 예방하여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타진했다.

북한 최고 지도부의 미국 고위 인사를 만났을 때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북미 사이의 경색국면이 풀리고 관계 개선의 단초가 마련되었다. 둘째, 악화되어 있던 남북관계가 개선되거나 이미 관계 개선 중에 있었다.

즉 북한 최고 지도부는 북미·남북 관계가 호전될 수 있는 조건에서 미국의 고위 인사를 면담했던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에 방북한 지미 카터를 면담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보여진다. 북한 지도부는 지미 카터를 만난다고 해서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모두 혹은 어느 하나는 개선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즉 북한 지도부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변화했다고 판단하지 않았던 것이며, 남북 관계 역시 개선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은 애초 방중 계획을 하루 연기할 어떤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지미 카터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만을 만나고 돌아왔던 것이다.

이제 중국 지도부의 입장이 되어 보자. 왜 후진타오 주석은 베이징에서 창춘이라는 그 먼곳까지 이동해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까. 중국의 국익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북중 관계가 혈맹이기 때문에? 필자가 보기엔 후진타오가 단지 그 이유만으로 그 먼거리를 이동할 만큼 북중 관계가 혈맹은 아니다. 혈맹이라는 것은 외교적, 정치적 표현일 뿐이고 지극히 전략적 협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과 중국이 협력을 했을 때 최고의 국익이 실현된다는 북중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후진타오 주석은 어떤 이익을 기대하고 그 먼 거리를 이동해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까.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루트가 그 단초를 제공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26일 지린(길림)성 지린시를 거쳐 27일 창춘(장춘)에 도착해 거기서 후진타오 주석을 만났다. 그리고 투먼(도문)을 거쳐 귀국했다.

중국은 동북진흥계획을 정력적으로 추진해왔고, 두만강 창지투(창춘-지린-투먼) 선도구 개발계획은 동북진흥계획의 핵심사업이다. 창지투 개발은 북한의 나진-선봉지구와 결합했을 때 성공적으로 추진된다. 즉 동해로의 중국 진출은 북한의 나진-선봉지구와 결합했을 때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후진타오가 베이징에서 창춘이라는 그렇게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이유가 설명된다. 후진타오 주석에게는 ‘창지투 개발’과 ‘나진-선봉 지구’를 연결하는 대역사를 합의할 수 있는 전략적인 국익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도 설명된다. 지난 5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결정하지 못했던 중국 동북3성과의 대규모 경제협력 논의에 마침표를 찍기 위한 ‘전격 방중’이었던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7일 후진타오와의 정상회담 이후 열린 만찬에서 “(북한과) 산과 강이 잇닿아 있는 중국(동북 3성)에서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에 힘 있는 고무와 커다란 격려가 된다”고 강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0일 전했다. ‘창지투 개발’과 ‘나진-선본 지구’의 연계 협력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북중 경제 협력의 또 다른 모델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중국의 동북3성과 북한의 압록강에서부터 두만강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지역에서 전개되는 대형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후진타오에게 보내는 ‘선물’도 잊지 않았다. 중국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긴밀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6자 회담을 재개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견지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고 한반도 정세의 긴장을 원치 않으며, 우리는 한반도의 긴장국면을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후진타오 주석 역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장성명을 발표한 이후 한반도 정세 새로운 동향이 나타났다“면서 ”중국은 한반도 정세 완화와 외부환경 개선을 위한 북한의 적극적인 노력을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답했다.

한반도 핵문제에 대해 북중 양 정상이 전략적으로 견해 일치를 본 것이다. 바로 그 시각 우다웨이를 만난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6자회담 재개라는 중국의 요청을 거부했다. 우다웨이는 씁쓸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일본을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시기가 절묘했던 것은 ‘보너스’가 될 것이다. 지미 카터가 방북했던 바로 그 시각에 중국을 방문하고 지미 카터가 평양에 머무르는 바로 그 시각에 북중 정상회담에서 북중 간의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그램이 합의되었던 것이다. 지미 카터는 말할 것도 없고, 오바마 행정부는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꼴이 된 것이다.

사라진 정책 수단, 적대정책 고수와 새판짜기의 갈림길에 놓일 오바마
이명박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오바마 정부 역시 2개의 정책 수단에 대한 확신을 갖고 대북 적대 정책을 고수해왔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설로 대표되는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이 그 하나이다.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화하고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응 기조를 한미 간에 합의한 이유이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대북 압박 참여라는 희망이었다. 비록 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두둔’하지만 결국 중국 역시 북한 압박에 동참할 것이라는 희망 혹은 전망이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지린-창춘-투먼이라는 긴 일정을 소화할 정도로 건강한 상태이며 북한의 정권 역시 탄탄하다는 것이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을 통해 확인되었다. 중국이 정치경제적으로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음이 이번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과시되었다.

오바마 대북정책의 기저에 깔려 있던 2개의 전제가 동시에 무너진 것이다. 오바마가 대북적대정책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한미동맹’에 근거하는 수 밖에 없다. ‘한미동맹’이 대북적대정책의 유일한 수단으로 남은 것이다.

한미 동맹을 정책 수단화하려는 오바마의 의도는 분명하다. 천안함 정국에서 탈출구를 찾는 것보다 한미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요청이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반대 급부로 오바마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의 미2사단 이전 비용 전용, 이란 제재 동참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미 FTA 재협상 역시 카드로 등장하고 있다.

아직 한미 동맹을 통해 단물을 뽑을 수 있다는 판단이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판단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21세기 전략적 경쟁관계에 놓여있는 중국과 핵·미사일로 미국의 패권정책에 상처를 내고 있는 북한의 전략적 협력이 강화되는 상황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동맹 지속을 통해 뽑아 내는 단물보다 북중과의 경쟁과 갈등으로 인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더 쓰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은 변화할 것이다.

한편 최근 북중 관계의 강화는 오바마 행정부 내 온건파들이 다시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대북 압박을 통해 미국이 무엇을 얻었는가’하는 질문에 속시원한 답변을 강경파들이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미 서해군사훈련이 예정되어 있는 9월부터 미국 중간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11월 사이의 국면은 어쩌면 현재의 위험천만한 상황이 지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 중간선거 이후 상황은 급변할 가능성이 높다. ‘천하에 둘도 없는 호전적 정부’였던 부시 행정부 역시 2006년 중간 선거 이후 정책을 바꾸지 않았던가.(2010. 8, 장창준)

장창준 선생님은
젊은 일꾼으로 통일문제연구자이다. 2001~2006년 동안, 남북공동실천연대 부설 한국민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에서 통일외교 분야를 담당하는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대복관계 전문가로서 활발한 연구실적을 내놓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위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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