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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민족\함석헌, 통일

정치인들의 파렴치한 통일의지

by anarchopists 2019. 12. 1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23 06:55]에 발행한 글입니다.


정치인들의 파렴치한 통일의지

함석헌은 우리 민족의 분단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분열의 책임은 뉘게 있나? 정치가에 있다.....그들의 근본 잘못이 무엇인가? 나라를 잊고 정권 얻기에만 급급했던 일이다. 그들은 정치만 치우쳐 중히 여기는 그릇된 생각에 민족의 통일을 희생하면서까지 정부세우기를 서둘렀다....그것은 하나의 사사권력단체이다. 남북이 마찬가지다. (함석헌, <民族統一의 길>, 씨알의 소리 1971년 9월호 18쪽 우단~19쪽 좌단)

라고 함으로써 함석헌은 통일정부를 외면한 남북의 두 권력을 私事로운 權力集團으로 평가하고 이 두 권력집단을 그리스도교 《구약성서》의 ‘솔로몬재판’이야기에서 나오는 ‘가짜어미’에 비유하였다.

여기서 잠시 솔로몬의 이야기를 해보자, 하루는 솔로몬왕 앞에 두 창녀가 죽은(死) 아이와 산(生) 아이를 각각 앉고 나와 산 아이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듣고 있던 솔로몬은 옆의 신하에게 일렀다. “(칼을 가져다) 그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그러나 한 여자가 기겁을 하여 “임금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마십시오.”하였다. 그러자 솔로몬은 산 아이를 죽이지 말라 하고 그 산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한 여인(진짜어미)에게 주도록 하였다.(《열왕기 상3: 16~28)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 속에서 산 아이(민족)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진짜어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아기를 살리려는 ‘진짜어미’는 정치권력가나 자본권력가가 아니다. 남과 북의 악독한 정치 밑에 흩어져 고난을 받고 있는 씨알이다. 그래서 ‘씨알만이 그 마음(아기를 살리려는=진정으로 통일을 하려는)을 발동시킬 수 있다”( 함석헌,  앞의 글, 18쪽 우단)라고 하였다.

이렇듯 함석헌은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의 통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라의 허리를 잘리고도 아직도 우리가 살았거니, 돈을 모을 수 있고 세력도 잡을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거니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망상”이다.(<民族統一의 길>, 1971)

“두 동강이 난 나라를 어서 빨리 하나로 묶고 남북이 하나로 어우러져 회개와 눈물로 이 강산을 적시고 감사와 희망의 노래로 산천초목을 들뜨게” 하자(함석헌, <가시나무가지의 외침>, 1979),라고 조국의 통일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함석헌은 이 나라 정치인들의 파렴치한 통일의지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남북협상을 그렇게 큰마음으로 할진대 왜 일찍이 김구(金九)선생을 왜 용공주의라 몰아치며 죽여 버렸나”, “가족찾기운동을 그렇게 인도주의 정신으로 벌여야 할 줄 알았을진대 왜 학생들이 남북의 젊은이들이 만나 아리랑이라도 서로 같이 불러보자고 했을 때, 좌익이라고 무자비하게 몰아치고 못하게 했던가? 평화통일이 그렇게 대세에 합한 옳은 일인 줄 알았을진대 왜 평화소리만 해도 이북공산당편이라고 입도 못 열게 했던가? ”, “반공을 국시(國是)로 내세우는 것은 무식한 소리라고 할 때는 들은 척도 않고 묵살하더니 요새 와서는 국시를 왜 변경했는가?”, “인격의 기초를 닦는 초등ㆍ중등의 교육을 반공일색으로 해서는 병신인간을 만들고, 나라의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죄악이다.”, “(국민이 통일운동을 할라치면) 갖은 수단으로 억제하려든다. 그 억제하려는 속뜻은. 국민의 힘으로 통일되면 자기네의 특권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인가)”
(함석헌, 앞의 글, 11쪽 좌단)라고 힐난함으로써 이 나라 지배층의 이제껏 통일관계 교육 및 정책을 비난하는 한편 오늘의 정치인들이 통일을 외면 한 채 자신들의 썩어문드러질 권력독점과 자본이익 챙기기를 망상이라고 책망하였다.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주지 않겠다고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정치인을 함석헌은 어땋게 꼬집었을까.( 2011. 8.23,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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