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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일요시론-깅영호] 대통령 이대로 놔둘 것인가.

by anarchopists 2020. 1.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3/07 06:22]에 발행한 글입니다.



[일요시론]

'대통령' 이대로 놔둘 것인가

지난 주 금요일(2.26)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에 가다가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평소에는 듣지 않는) 한국방송 라디오 뉴스(5시)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땡' 하고 나서 첫 소식이 대통령이 기껏 김연아 선수에게 축하 전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땡전 뉴스' 아닌 '땡이 뉴스'다. 아니, 이 시대가 어느 시댄가. 공안시대로 되돌아갔다는 말을 실감했다. 바로 두 세 시간 전에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우승을 했다는 사실이 먼저 보도되어야 되는 것이 당연한 순서 아닌가. 주역이 대통령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방송이 정부에 장악 되었다는 주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이 우승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인가. 스케이트라도 사 주고, 아이스 링크라도 만들어주었다는 것인가. 연아가 홀로 헤쳐나간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주었는가. 한 선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청소년 체육정책, 사회체육의 문제이다. 그 면에서 잘 했더라도 뉴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공영방송'이라고 하지만 여당과 대통령 띄우기 방송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무죄한 정연주 사장을 검찰, 감사원, 국세청 등 국가기관을 총동원하여 범죄자로 몰아 잡아넣었다. (무죄로 판결되었어도 명예실추, 실직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비정의 정치이다.) 이제는 와이티엔, 문화방송까지 완전 장악했다.


그 모든 중심에 대통령이 서 있다. 대통령은 마치 신처럼 무소부재한(ubiquitous) 존재가 되어있다. 여당 의원들은 말할 것 없고 온 국민이 한 사람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격이다. 우상(idol)이 따로 없다. 정보산업에서 말하는 '유비퀴터스'의 전형을 따로 찾을 필요가 없다. (세계에 유례없는 재벌과 더불어 그리고 재벌과 협조하면서) 이 사회를 완전 지배, 장악하고 있다. 옛날 군주보다 더 무소불위하고 전횡적이다. (마치 신 '이씨조선'에 살고 있는 착각에 빠진 듯, 공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을 높임말로 지칭하는 것이 상례화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한다.) 지배자는 민주사회에 배치되는 칭호다. 이 시대에 지배자나 통치자는 추방되어야 할 말이다. 어떤 학자는 '협력형 통치'를 제안하지만 모순을 안고 있는 말이다. 모든 것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leader)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 집단의 사회자나 대표로서 인민에게 공복(public servant)역할을 해야 할 뿐이다.

대통령제는 충분히 실험한 셈이다. 60년 동안이나 해보았다. 그 성적표는 초라하다. (박정희가 폭력으로 무너뜨린 내각책임제 대통령은 놔두고) 8명 가운데 제대로 직책을 충실히 수행한 사람은 기껏 한 둘에 불과하다. 이들조차 독선적이거나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 등 비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런 확률이라면 군주시대 세습군주의 성적과 큰 차이가 없다. (이조시대에도 세종과 정조 등 임금다운 군주가 몇은 나왔다.)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마치 김일성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인 모델이 두고두고 후세에 끼친 악영향은 일시적 공적을 지우고 만다. 경제발전을 시켜서 위대하다고? 위대하기로 말하면, 국민이 위대할 뿐이다. 누가 지도자라도 가만히 놔두면 인민이 다 성취한다. (이번 경제 난국의 일시적 극복도 국민스스로가 한 일이다.)

"영웅시대가 지나갔다"는 함석헌의 진단은 옳다. 이제는 개인보다 전체가 주인이 되는 시대다. 인물 중심의 제도는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대통령'은 일상 어휘에서 추방해야 한다. 낡은 말이 되어야 한다. 온 국민이 국민평균에도 못 미칠지 모르는 두뇌와 좁은 가슴에 목을 메야하는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개헌을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 대통령 자신도 던지고 있는 개헌 언급은 기껏해야 몇 년을 더 하느냐, 절대군력을 약간 분산 시키느냐에 있지 근본적인 개혁이 아니다. 지배세력에게 집권연장 등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려할 것이다. 이번에 못하면 최소한 8년을 감내해야 한다. 3년 후에 또 그 이후에도 친여적인 수구언론과 방송매체의 여론조작으로 제대로 된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아무런 보장이 없다. 나 홀로 시행착오만 반복할 수 없다. 그럴 여유도 없다. 모든 면에서 어제라도 까딱하면 급전직하로 추락할 수 있는 위기상황이다. 자기 교정과 자정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회가 되었다. 지역분할의 정치, 재벌이 판치는 경제, 족벌과 권력이 지배하는 언론, 대학입시 기술만 가르치는 교육, 거짓 신앙으로 신자를 마취시키는 조직종교,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 독립적인 선진국이 되는 데 필수요소가 되는 통일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이런 상태로 통일이 되더라도 문제일 것이다.)
대안은 선진국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특히 유럽 국가들, 그 중에도 북 유럽 나라들, 그리고 캐나다, 호주 같은 다민족 이민국가들 속에서 모델을 들여오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일이라고 믿는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은 내각책임제와 연방제이다. 그것이 지역통합과 남북의 통합을 이루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여론조사는 내각제 개헌이 10%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충분한 계몽이 필요하다. (이것도 어렵다면 대통령과 장관들-특히 교육부, 법무부, 문화공보부-을 초빙, 수입하면 어떨까.) 선진국 사례를 철저히 조사, 검토하고 대안을 제안하는 '정치제도 대안 찾기 국민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라도 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괴물을 이대로 놔둘 것인가. 국민에게 달려있다. 공이 국민들에게 넘겨졌다고 하기에는 너무 막연하고 불안하다. 그때까지 국민이 올바로 계몽될 것인가. 계몽해야할 언론이 계몽 대상이 된 현실에서, 언론처럼 국회도 믿을 수 없다. 그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그것부터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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