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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금요칼럼

생활정치, 성찰과 약간의 전망

by anarchopists 2020. 1. 23.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2/12 06:55]에 발행한 글입니다.

생활정치, 성찰과 약간의 전망

지난 해에 이어 새해에도 ‘생활정치’의 의제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생활정치로 새 시대를’ ‘생활 밀착형 정치’로 희망과 대안을, 비슷한 맥락의 얘기들이다. 선거를 전후해서 ‘생활정치’라는 말이 오르내린지도 벌써 오래 전이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그 실체성을 실감하지 못한 채 되풀이 되고 있다. 저마다의 구체적인 삶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크게 보아, 생활 현장인 마을, 동네, 지역이나 직장, 노동현장 또는 실업의 현장에서 계층별로, 지역별로 제기되기도 하고 전 지역, 모든 현장에 관련되어 있을 때 전국적인 문제로 제기되기도 한다.

그런데 해를 거듭해도 획기적으로 개선되거나 해결 되지 못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오면서, 대의제의 한계나 국민주권의 행사방식에 이르기까지 논의 범위는 커지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일자리, 의식주, 교육, 건강-에 관련되는 문제점의 해결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생활정치, 구체적인 삶과 직결되는 정치에 앞장서겠다는 다짐들이 쏟아져 나오는 선거 전후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가? 우위에 처해 있는 위치에서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키우고 지켜내는데 주안점을 둔다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정에 놓여 있는 사회적 취약층, 상대적 빈곤선 이하의 계층이 사각지대에 계속 남아 있어줘야 한다는 전제가 그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상당수 노동현장에서 비정규직화를 전제로 유지되는 고용조건에의 타협적 방치, 일할 수 없거나 일하지 못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별적 사회보장책 유지, 공급과잉인데도 계속 늘려가는 주택(뉴타운)건설 등 수없이 많은 사회문제들이 희생자를 전제로 한 나눠먹기식 밥그릇-이익 챙기기에 관련되어 있으므로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생활밀착형 정치’가 자기 지역만의 밥그릇 챙기기-결국 전체 다른 지역 사람들의 희생이나 사각지대로의 방치를 전제로 한 구호가 아닌 지를 성찰해야 한다. 서울에서 인구 수 이만 수천 명의 동네에 수백억짜리 동사무소-문화센터를 짓는 사이 절대빈곤층의 적어도 20%에 넘는 사람들이 이웃에서 밥을 굶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아파트 소유자로 보면 5년이 좀 지나는 사이 아파트가격이 두 배가 되면 자산가격이 두 배로 증가해서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격차가 두 배로 벌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전보다 절반 적은 평수로 임대할 수밖에 없어 상대적 격차는 4배 차로 벌어진다. 소득 수준 하위 10%의 소득은 수 십만원에도 못 미친다. 도시 노동자 소득 수준 상위 10%의 소득은 천여만이나 된다. 같은 도시 노동자의 하위 10%의 소득은 1백만원이 채 안 된다. 생활정치에의 밀착을 들고 나와서 지역에 경전철을 끌어오고 개발 예산을 끌어오겠다고 해서 이것을 대다수 대중들 한사람 한 사람 생활이 좋아지는 의미의 생활정치라고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래서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노무현 정권의 소장 개혁파들이 탈이념을 내세운다고 생활밀착정치를 외친 경우는 2008년 총선에서 거의 다 낙선했다. 탈이념이 해결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되는 절대 취약계층 다수를 위한다는 이념 지향은 상실해서는 안 되는 기본권 보장의 이념이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지역이든 전국이든 다수에게 돌아가는 일자리 늘리기도 생색내기식의 부실한 구호만이 되풀이 되고 있다.

전체 생산액의 88%는 중소기업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지역에서든, 전국 차원에서든 중소기업의 고용조건을 개선하고 저임금을 보전해주는 재정정책, 연구개발비 투자의 획기적 지원은 아예 해 본 적이 없다. 일자리가 필요한 실업자와 무급자 등이 수백만이 넘는데 4 년동안 1백만개 일자리 만들기 같은 것 등은 ‘절대 다수’에 속하는 한사람 한 사람의 생활에 국가와 공공단체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보장이라는 이념이 중시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제1야당의 중산층, 서민을 위한다는 탈이념, 생활정치의 정책(뉴플랜)이 기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들 지켜내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 않나하는 것은 전체가 골고루 살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한 전략 비전의 고민조차 부족해 보이기에 더욱 우려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 야당들이 진보든 중도 보수이든 색깔의 차이를 넘어 선거 시 ‘연합정치’를 해야 한다고들 일부에서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선거를 위한 연합을 해서 ‘연합정치’로 지자체를 운영한다고 할지라도 세력있는 유력자들의 나눠먹기식 밥그릇 챙겨주는 수준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도 강하다.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들 속의 풀뿌리 단위와의 연합을 할 만한 기본 이념 위에서 비전들을 세우지 안했고 2010년의 사정도 크게 달리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고 늦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대중들이 스스로 자각해서 알기 시작했을 때는 결코 늦은 것이 아니라는 역사적 법칙을 다시 상기해 낼 것도 없다. 생활정치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도 풀뿌리 공동체 운동에 기반하고 연대해서 그 기초가 이루어진 것을 벤치마킹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생활이 제일이다, 생활정치가 기본이다 라고 내세우려면, 사회적 배제와 포섭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대중이 골고루 사회적 주인으로서 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견지하고 지향해야한다.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전국의 차원에서도 대중 한 사람 한 사람 전체가 골고루 잘 사는 사회적 주인으로 설 수 있도록 하는 데 생활정치의 요체가 있다.  선거 때만 꺼내지 말고 지금부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계기로 출발한다는 각오를 세워야 한다.
(박석률/평화경제미래포럼 대표)   * 이글은  지난 1월 25일 평화경제미래포럼에서 보내온 글임

박석률 선생님은

▲ 박석률님
박석률 선생님은 74년 민청학련사건에 관련되어 옥살이를 했다. 석방 이후에는 한국진보연대를 통한 민주화운동,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공동대표 등을 통한 민족통일운동을 계속해 오다가 지금은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사월혁명회, 평화와 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에서 민족, 민주, 통일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생명평화경제만민포럼" 대표이다. 저서로는 한반도의 당면 과제인 북핵문제와 관련해 펴낸 <자주와 평화, 개혁으로 일어서는 땅>(백산서당, 2003)과 <자주와 평화 누가 위협하는가> (풀무 2002), <씨알의 희망과 분노>(공저, 동연, 2012)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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