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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금요칼럼

‘팔천여귀’를 잡아내자.

by anarchopists 2019. 10. 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8/10/19 05:06 ]에 발행한 글입니다.

‘팔천여귀’를 잡아내자.

함석헌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러분은 지금 정치에 의해 장님,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 우리는 희망을 말하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현실에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을 모르고서 그리는 희망은 하나의 꿈밖에 되는 게 없다....현실에 눈을 뜨고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함석헌저작집》 제9권, 254쪽)

함석헌의 이 말의 뜻을 중국의 고사를 빌려 현실에 되살려 본다. 중국 고사(古事)에 팔천여귀(八千女鬼)라는 말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팔천여귀는 고위직에 있으면서 나라를 망치는 잡귀(雜鬼)들을 말한다.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제갈량(諸葛亮, 181~234)이 쓴 것으로 알려진 《후출사표》(後出師表, 제갈량이 쓴 글이 아니라는 설도 있음)가 있다. 그 문장의 맨 마지막 문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신은 정성을 다해 온몸 바쳐 나라를 위하다 보니 온몸의 진기가 고갈되고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죽은 뒤에야 나라를 위한 일을 그만 두게 되리라 봅니다. 나랏일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이로옴과 해로움의 판단에 대해서는 신이라 할지라도 미리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臣鞠躬盡瘁, 死而後已, 至於成敗利鈍, 非臣之明所能逆覩也”. 《古文觀止》, 臺北 三民書局印行, 1981, 341쪽)

위 글 중에 “국궁진췌(鞠躬盡瘁)”란 말이 나온다. 제갈 량이 군사로 있던 시절 잠시 휴가 중에 쓴 《마전과》(馬前課, 마전신과馬前神課라고도 한다)라는 글에서 나오는 말이다. 곧 전쟁이 일어났을 때 출병을 하기 전에 말을 세워놓고 점(課, 예언)을 쳤다는 뜻이다. 《마전과》는 일종의 제갈량이 몸담고 있던 당시 중국의 촉(蜀)나라에 대한 14가지 예언서를 말한다. 첫 예언에 “무력회천, 국궁진췌, 음거양불, 팔천여귀(無力回天鞠躬盡瘁陰居陽拂八千女鬼)라는 말이 있다. 곧 제갈량이 예언하는 말이다.


제갈량은 죽고 싶어도 힘이 없어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無力回天) 그리고 신(제갈량)은 신하된 도리로 몸을 굽혀 나랏일을 하다보니, 기운이 쇠잔해지고 병이 들었습니다.(鞠躬盡瘁) 그런데 음지(뒤)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나랏일을 훼방 놓는 자(陰居陽拂) 때문에(환관=黃皓을 뜻한다.) 위(魏)나라한테 우리 촉(蜀)이 멸망케 되리라(八千女鬼)봅니다. 곧 촉이 망하게 되면 환관 때문이라는 예언이다. “팔천여귀(八千女鬼)”를 모음글자로 만들어 보면, 위(魏)나라가 된다. 따라서 팔천여귀는 나라를 망치게 하거나 팔아먹는 좀벌레 같은 놈들을 일컫는다. 여기서 글쓴이가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환관 황호(黃皓)라는 놈이다. 촉은 결국 환관 황호의 농락으로 위나라(장수 등애鄧艾)에게 망한다.(262) 위나라 장수 등애는 촉을 점령한 후, 촉의 간신들을 죽인다. 이때 황호는 등애의 측근에게 뇌물을 주고 목숨을 유지하지만 끝내, 당시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마의(司馬懿)의 아들 사마소(司馬昭)에 의해 사지가 찢겨 나가는 죽임을 당한다(陵遲處斬) (陳壽, 《三國志》 권1 〈魏志〉 권28, 鄧艾條, 《四庫全書薈要》, 吉林人民出版社, 1997, 516쪽)

팔천여귀에 관한 다른 이야기를 더 하나 해보자. 중국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 명 태조)에 관한 이야기다. 주원장이 구운 떡을 먹다가 그의 책사(策士) 유백온(劉伯溫, 촉의 제갈량, 한의 장량張良과 함께 중국 고대 3책사策士로 불림)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주원장은 그의 지혜를 시험해보고자 했다. 그리하여 먹고 있던 구운 둥근 떡(중국 떡은 둥글다)을 그릇 안에 감추고는 유백온에게 물어보았다. “선생의 생각과 수리(數理)로 보기에 이 그릇 안에 무슨 물건이 있는 것 같습니까”(先生深明數理,可知碗中是何物件?) 유백온은 손을 짚어 따져본 후 대답했다. “반은 해 같기도 하고 반은 달 같기도 한데, 금룡(金龍)에게 깨물려 한 조각이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半似日兮半似月, 曾被金龍咬一缺, 〈燒餅歌〉, 《中國預言七種》, 清溪散人編,1915, 上海中華書局)라 했다.

이에 놀란 주원장이 유백온에게 명나라의 미래에 대하여 허심탄회한 가르침을 청했고, 유백온은 옳은 일이라 생각하여 사양하지 않고 거침없이 명나라의 미래를 이야기하였다. 황제가 묻고 유백온이 답하는 방식으로 쓴 칠자결(七字訣 한 문장이 7자로 된 문답 글)이었는데, 그 속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왕이 물었다. “사직을 지키는데 누구를 임용하면 좋겠는가”(誰人任用保社稷) 이에 유백온이 대답을 하였다. “팔천여귀가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힐 것입니다”(八千女鬼乱朝綱) 곧 유백온은 제갈량의 《후출사표》에서 간신(황호)이 나라를 망쳤다는 인용구로 대답을 하였다. 결국 명(明)나라는 주유교(朱由校, 시호 희종憙宗)가 왕을 하고 있을 때, 환관 위충현(魏忠賢: 이진충李盡忠)과 유모 객씨(客氏: 奉聖夫人)에게 휘들려 많은 신하들을 죽게 만든다. 이를 중국역사에서 위충현이 일으킨 ‘동림당사건(東林黨事件)’이라 한다(1624) 동림당사건으로, 명은 멸망의 길을 재촉하고 끝내 여진(女眞, 뒤에 만주족)이 이끄는 후금(後金, 뒤에 청淸)에게 멸망하게 된다.(1645)
이렇듯 ‘팔천여귀’는 촉을 멸망시킨 위(魏)를 뜻하지만 그 이면의 뜻은 나라발전을 좀먹고 나라 사람들을 해치는 ‘간신’(奸臣)을 뜻한다. 곧 ‘위’는 간신의 지위가 높다(魏)는 말이다. 예로부터 나라를 팔아 제 자신의 부귀영화를 꾀하던 놈들은 다 높은 자리에 있었다. 제1차 한일협약(1905) 때, 을사오적(乙巳五賊: 권중현, 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이지용)이 그랬고, 한일신협약(1907) 때 정미칠적(丁未七賊: 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 이재곤, 임선준)이 그랬다.

지금 이 나라에 있는 해(日)에 속하지도 않고 달(月)에 속하지도 않은 팔천(八天)의 귀신(女鬼)은 누구인가? 이 나라에 여자도, 남자도 아닌 황호나 위충현 같이 간신처럼 사는 놈은 누구인가, 세상이 골백번 바뀌면서 진화하고 있건만, 세상 바뀐 줄도 모르고 아직도 친일친미(親日親美)를 자랑하며 이 나라를 자발적 식민지로 만드는 놈들은 누구인가? 검은 머리로 고위직에 있으면서 부귀영달만 노리며, 평화와 통일을 아랑곳하지 않는 놈은 누구인가. 옛글을 빌어 오늘날의 정치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누가 팔천여귀인가. 함석헌선생의 힘찬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크게 뜨고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2018. 10.15, 안국진)

* 안국진은 부산에서 월간 “바다낚시” & “SEA LURE” 발간하는 발행인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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