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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토요 시사\박석률의 토요시사

복지정책은 관료층 전원교체부터

by anarchopists 2019. 11. 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1/26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보수·진보 막론,
복지동맹 필요하다면 관료층 쇄신이 절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새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노령연금 20만원으로 인상 같은 안들이다.(사실 의미가 없지만) 또한 노인들이 일자리를 원하는 이유가 그 2/3는 생계 필요에 의해서이다. 이런데도 이 나라에는 고위관료 한 사람의 분별없는 공금횡령이 폭로되고 그 권위주의적 작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재산 9억을 가진 고위관료였던 자가 동료들 중에서는 가장 가난했으며, 청빈했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국민 앞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어 분노의 화살이 하늘 끝을 찌를 정도이다.

옛말에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하면서 고대로부터 왕조시대 내내 민부(民富)를 키워야 하고 조정(朝廷)은 이를 이끌어야 한다고 항시 치정(治政)의 목표를 강조해왔다. 평민들에게 항산이 있도록 하면서 사각지대에 빠져드는 궁민(窮民)들이 없도록 하는 데에 국왕은 세심한 배려를 하면서 관료들을 독려하여 곳간 문을 열고 곡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하고, 과부가 어린 자식 하나 데리고 굶어 죽었다는 소리가 나온다면 부덕(不德)의 소치로 알았다. 그래서 늘 새로운 왕조가 열리면 지배체제의 관료들을 위한 수취체제를 정비하였다.

관료들에게 녹을 나눠주는 방식이 달라져야 할 이유는 바뀐 시대가 새로운 항산정책을 수립하도록 들고 일어난 평민들의 요구를 채워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대적 관료제도는 상비군 제도와 함께 등장한 지 3세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서구의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근대적 관료제도는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기구로서 상비군과 함께 한축을 이루는 것이지만, 그들이 지급받는 녹봉=보수는 항산을 하는 다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 최상층을 차지할 정도로 보장할 근거는 없었다.

이 나라에 관료들의 급여는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거의 박봉에 가까웠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는 헌법가치를 수호해야 할 자가 일신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 넘치는 월 1천 수 백 만 원에 이르는 최상층의 수입을 얻으면서 여러 명목의 수당을 편취하고 재산을 증식시키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리만큼 세금을 갈취하고 편취하는 일에 양심의 불감증이 만연된 사회가 돼버렸다.

바닥에 처한 60세대의 한쪽에서는 이 한 겨울 기초수급권자로서 국가가 부조해주는 돈이 15만원에 불과해 겨울철 화장실의 수도꼭지를 얼지 않게 할 전기료를 감당치 못한다는 기가 막힌 애기가 현실이라고 한다. 거리에 나서면 주위에 난방을 하지 못해 얼어 죽는 단독 세대 궁민이 주위에 없는지 신고해달라는 펼침막이 유난스럽게 펄럭이고 있다. 이 겨울 이전에는 그런 펼침막이 지자체마다 그렇게 내걸리지는 않았다.

바닥에서는 아예 굶주림, 고독사 자살을 없애야 한다는 3무를 달성하자는 것이 지자체의 목표라고 들고 나올 정도이다. 서울시는 지하 셋방조차 얻을 수입이 없어 궁민으로 전락해 여인숙의 단칸방을 전전하며 학교 다닐 청소년을 데리고 여관방 문을 걸어 잠가야 할 정도로 딱한 사정이라면서 수십 명의 가구에게 300만원씩을 부조했다고 한다. 주거 위기에 빠진 이들이 당장 밀린 방세를 내고 나면 또 막막하다고 한다.

이런 궁민들에게 국민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행복추구권을 우리 사회가 보장하고 있는지 우리들이 관료 기구를 감시하고 감독할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성이 절실하다. 새 정치는 집권층 주변의 정치세력의 대표자들과 그 반대편의 야당 세력의 대표자들의 면면이 바뀌는 그런 수준에서 달성되지 않는다.

국민을 위해 봉사할 의무를 지닌 관료기구의 위, 아래 모두가 쇄신되지 않으면 근대 국가 기구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헌법기구의 어떤 자리에 직업으로서 관료라는 직분을 수행하는데 기본자질이 미달한 자들은 사회발전의 암적 존재에 불과할 터인데도 오랫동안 양생되어 최고위직에 오를 정도까지 이 사회의 시민 감시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집권층의 수족 노릇이나 하면서 보신(保身)을 위주로 무사안일의 특권층 행세가 가능한 관료층이 또아리를 틀고 온 것이 노출된 마당에서 전면적인 관료기구 쇄신이 절실하다. 최저 생계비 미만으로 살아가는 궁민이 1,000만 명이 넘었다는 통계자료는 벌써 20여 년 전에도 나왔었다. 현금의 시점에서는 1천 수백만 명이 아직 최저생계비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처지이다.

그런데 최하위 지방공무원의 공채시험 응시에 백대 일이 넘는 경쟁률이 보통이라는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대학을 나온 청년층의 선호도 1위의 직종으로 공무원이 등장한 게 오래전부터이다. 항산을 담당해야 할 국민들은 오래 전부터 최저생계비 미만으로 살아가는 자가 취업 가능인구의 절반을 점할 정도로 전락해 버렸고 이 때문에 항산도 하지 않으면서 철 밥통을 차지한 것은 국민의 심부름꾼이어야 할 관료들이 돼버린 것이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궁민을 최악의 상태로부터 빠져 나올 수 익도록 하는 데 사회발전의 목표를 설정하고 복지를 운운해야 할 것이다. 0.1%의 독과점 세력이 생산의 90%이상을 좌지 우지(左之右之)하는 산업구조를 확대 재생산시켜온 것이 바로 집권층의 수족 노릇을 해온 관료들이었고 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던 것이다.

궁민에게 국민으로서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해야할 헌법가치를 지켜낼 사명감이 없는 관료기구 전반에 걸쳐 쇄신과 점검이 절실하지만 어떤 집권세력도 그에 편승하고 그를 온존시켰기 때문에 실패한 정권이 돼 버렸다. 노무현 정권 끝나고 관료들에 포위되어 개혁을 못했다고 말한 그 정권 핵심층의 실토는 오히려 준비부족한 채 정권을 맡았음을 고백한 실레이다.

정치적 선전구호에 불과한 펼침막 정치로서는 어느 정권이던 출법초기에 나름 목표로 내건 쇄신책이라는 게 유야무야 돼버린 역사를 직시한다면, 이에 대결해 나갈 현명한 방책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해야 할 것이다. 궁민을 건져내는 것이 중산층을 건져 내는데 초점을 맞추자는 정치선전보다는 훨씬 근원적인 처방을 제시하는 요체라고 보며,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구호 정도로서는 궁민을 건져내지 못한다는 것을 정치세력들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복지를 실현할 보수, 진보의 동맹? 그것은 궁민을 건져내는 것에 중심을 둔다면 나머지 계층의 수준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는 잘사는 부유층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고위 관료들이 저해세력이 되지 않도록 쇄신책을 가다듬는 것이 선결요소이다.(2013.1.24. 박석률)

박석률 선생님은

▲ 박석률님
박석률 선생님은 74년 민청학련사건에 관련되어 옥살이를 했다. 석방 이후에는 한국진보연대를 통한 민주화운동,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공동대표 등을 통한 민족통일운동을 계속해 오다가 지금은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사월혁명회, 평화와 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에서 민족, 민주, 통일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생명평화경제만민포럼" 대표이다. 저서로는 한반도의 당면 과제인 북핵문제와 관련해 펴낸 <자주와 평화, 개혁으로 일어서는 땅>(백산서당, 2003)과 <자주와 평화 누가 위협하는가> (풀무 2002), <씨알의 희망과 분노>(공저, 동연, 2012)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구굴에서 퍼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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