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3/13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子曰學而時習之(자왈학이시습지)하니 不亦說乎(불역열호)아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하니 不亦樂乎(불역락호)아
人不知而不慍(인부지이불온)하니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
국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제 때에(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화나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풀이:
학(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배움을 일컫는 것인데, 여기서 학의 목적어인 예(禮)가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본래의 뜻을 살려 “예를 배우고서 때를 정하여”라고 해석한다. 시(時)는 ‘때를 놓치지 말고’ 혹은 ‘때를 맞추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습(習)은 연습․실습하다, 실습하고 숙달하다는 뜻이다. 열(說)은 ‘기쁘다’(悅)와 한뜻이다. 유(有)는 ‘어떤’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더불어 아무 의미가 없이 부드러운 음률을 만들기 위한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붕(朋)은 살아가는 방식이 같은 동행자나 도반, 일면식은 없지만 저 멀리서 나의 길을 알아서 찾아와 동감하고 비평해 주는 사람, 혹은 구체적으로 제자들을 말한다. 자(自)는 ‘-로부터’, 혹은 ‘-하는 것에서부터’의 의미이다. 방(方)은 ‘방금’, ‘이제’, ‘바야흐로’의 뜻을 나타내는 시간적 개념으로 씌어서 ‘멀리서도 바야흐로 오니’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인부지(人不知)는 자신의 강술이나 주장하는 바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慍)은 노기(화기)를 품는 것을 가리킨다. 군자(君子)는 덕을 갖춘 훌륭한 사람, 인격을 갖춘 훌륭한 사람, 학문하는 사람, 순수한 사람이다.
학이편은 논어의 서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제1장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군자의 예(禮)이다. 학문 혹은 배움의 목적은 예를 갖추는 일이다. 오늘날 입시경쟁이나 스펙을 쌓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사회에서 보면 학문의 근본적인 목적인 예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부는 자신의 출세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예를 갖추기 위한 목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군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학문하는 그 자체로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오로지 군자는 앎의 목적이 자기 자신에게 있고, 수양에 있는 것이지 공부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세상이 알아주기를 원함으로
써 욕심내고 노기(怒氣)를 띠는 것은 군자답지 못한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대해 공자는 그저 자신의 공부와 뜻에 동조하고 비판해 주는 도반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면서 우리를 깨우치고 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설령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기를 품을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학문하는 그 본래성에 충실하고 나의 주변에 학문(배움)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 발전을 도모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리라.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논어 (3)학이편(學而篇) 제1장
子曰學而時習之(자왈학이시습지)하니 不亦說乎(불역열호)아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하니 不亦樂乎(불역락호)아
人不知而不慍(인부지이불온)하니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아.
국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제 때에(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화나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풀이:
학(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배움을 일컫는 것인데, 여기서 학의 목적어인 예(禮)가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 본래의 뜻을 살려 “예를 배우고서 때를 정하여”라고 해석한다. 시(時)는 ‘때를 놓치지 말고’ 혹은 ‘때를 맞추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습(習)은 연습․실습하다, 실습하고 숙달하다는 뜻이다. 열(說)은 ‘기쁘다’(悅)와 한뜻이다. 유(有)는 ‘어떤’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더불어 아무 의미가 없이 부드러운 음률을 만들기 위한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붕(朋)은 살아가는 방식이 같은 동행자나 도반, 일면식은 없지만 저 멀리서 나의 길을 알아서 찾아와 동감하고 비평해 주는 사람, 혹은 구체적으로 제자들을 말한다. 자(自)는 ‘-로부터’, 혹은 ‘-하는 것에서부터’의 의미이다. 방(方)은 ‘방금’, ‘이제’, ‘바야흐로’의 뜻을 나타내는 시간적 개념으로 씌어서 ‘멀리서도 바야흐로 오니’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인부지(人不知)는 자신의 강술이나 주장하는 바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慍)은 노기(화기)를 품는 것을 가리킨다. 군자(君子)는 덕을 갖춘 훌륭한 사람, 인격을 갖춘 훌륭한 사람, 학문하는 사람, 순수한 사람이다.
학이편은 논어의 서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제1장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군자의 예(禮)이다. 학문 혹은 배움의 목적은 예를 갖추는 일이다. 오늘날 입시경쟁이나 스펙을 쌓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사회에서 보면 학문의 근본적인 목적인 예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부는 자신의 출세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지, 예를 갖추기 위한 목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군자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학문하는 그 자체로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오로지 군자는 앎의 목적이 자기 자신에게 있고, 수양에 있는 것이지 공부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세상이 알아주기를 원함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대해 공자는 그저 자신의 공부와 뜻에 동조하고 비판해 주는 도반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면서 우리를 깨우치고 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설령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기를 품을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학문하는 그 본래성에 충실하고 나의 주변에 학문(배움)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 발전을 도모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리라.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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