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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서평, 독후감

G. Agamben, 박문정 옮김, 얼굴 없는 인간, 효형출판, 2021

by anarchopists 2021. 8. 11.

서평: G. Agamben, 박문정 옮김, 얼굴 없는 인간, 효형출판, 2021.

 

“진실을 찾을 권리, 진실을 말할 권리, 저항만이 여전히 인간일 수 있습니다!”

 

유럽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감벤을 두고 팬데믹을 과소평가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성찰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나의 생명이 누구와 연관되어 있고, 어떤 존재자로부터 비롯되었는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감벤은 생명정치를 이용해 인간의 절대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정부, 의료, (헌)법 등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지금의 팬데믹을 예외상태로 규정하고 민중을 통제, 관리, 억압하는 시스템과 권력자들에 대한 일침이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더 멀어지고 삶은 모호해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을 단순히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 “감염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삶은 없습니다. 의료권력자에게, 디지털 기술에게 권력을 넘겨준 삶이 진정 자유로운 삶일까요? 국가가 바이오 보안이라는 명분하에 기술-보건적 독재주의로 나아간다면 저항해야 합니다. 게다가 잠재적 바이러스 전파자로 인간이 서로 경계하고 거리두기를 지속한다면 우리들의 이웃은 폐지되고 말 것입니다. ‘상실’이라는 표현보다 이웃의 사물성과 관계의 완전한 단절을 뜻하는 ‘폐지’가 훨씬 절망스럽게 느껴집니다. 다만 디지털 메시지만 오가는 이웃, 디지털 전파로 접촉하는 이웃만 존재할 따름입니다.

이동의 자유 박탈, 통금 시간의 강화는 점점 더 엷어진 군중으로 만들 것이고, 과도한 개인주의, 개별적 자유는 오히려 억압당할 것입니다. 이때 교회가 침묵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지금의 교종도 프란치스코입니다)는 나병환자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약한 이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정체성 식별 QR코드, 인적사항 기재 등은 나치즘과 가은 전체주의를 방불케 합니다. 바이러스 학자들은 자신들도 바이러스의 실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인간의 삶의 형태를 운운합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2년간 코로나 19로 인한 죽어간 사망자보다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숫자가 더 많습니다. 보건 공포, 의학 숭배, 의료 종교에 지배를 받고 현실에서 언어가 강탈당하고 거짓이 삶의 방식이 되고 있습니다.

아감벤에 의하면 바이러스는 세계-내-존재입니다. 하지만 마스크는 인간의 세계에 대한 개방성을 저해합니다. 두려움의 상징인 마스크는 합리적인 증거와 주장도 거부합니다. 바이러스도 또 우리도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얼굴의 정치성’을 포기합니다. 정치를 오로지 숫자와 수치로만 파악합니다. 생의 감정적 표현의 장소인 얼굴은 이제 타자에게 개방하지 못합니다. “얼굴은 가장 인간적인 장소다”라는 아감벤의 외침을 무색하게 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호흡,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 보건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구원은 나 혼자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수가 불타는 집의 언어가 필요합니다. 철학과 시를 통해서 저항, 존재, 낯섦, 환대, 이웃, 진리를 배워나가야 합니다. 아니 더불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해야 합니다. 얼굴을 서로 마주 보고 의사소통하면서 열정, 근접성을 통해서 우리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얼굴 정치를 통해서 사회적 통제를 하는 국가주의와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에 저항해야 합니다.

얼굴을 통해서, 몸(sarx)을 통해서 접촉할 때 감정 접촉, 감수성 접촉이 발생합니다. 몸과 마음이 상호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접촉과 타자 경험을 잃게 된다면 궁극에는 몸의 상실, 몸-나의 상실, 세계-몸의 상실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서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얼굴은 정치(학)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폐허 속에서 ‘소박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을 수 있다는, 아니 인간은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다(humus는 묻다, 매장하다는 뜻)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강한 연결고리와 끊임없는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세계-내-상황에서 초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근대인들이 삶에서 죽음의 영역을 제거할수록 생의 의미는 희미해져만 간다.” 아감벤의 존재론적 혜안이 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평자에게는 삶의 지혜요 철학적 통찰력과 신념을 더 강화시켜준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에게도 그런 공통감이 생기길 기대합니다.

 

김대식_대학에서 철학적 사유와 종교학적 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있으면서 평평한 존재론에 토대를 둔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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