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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서평, 독후감

나혜숙, 함석헌의 《바가바드 기타》역주서 연구, 소명출판, 2021.

by anarchopists 2021. 7. 13.

리뷰: 나혜숙, 함석헌의 《바가바드 기타》역주서 연구, 소명출판, 2021.

 

“마음을 높은 데 두십시오”

 

“번역은 반역이다? 번역은 변혁이다!”

“번역은 반역이다”(Traduttore traditore)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언어를 나의 언어로 바꾸는 어려움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그 난해함을 표현하는 말놀이라 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갖는 연구자로서의 문제의식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가적 시선으로 볼 때 함석헌의 인도 경전 풀이가 녹록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엄밀한 분석 작업과 학자로서의 진시함 앞에 서면 함석헌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함석헌의《바가바드 기타》에 대한 해석과 역주가 매우 독창적이고 풍요롭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상식의 무례함을 상쇄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어나 단어 혹은 개념에 마음이 머물러 고착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함석헌의 다양한 해석학적 식견은 이 책의 저자가 지닌 학문적 소양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비판과 비난은 쉬우나 독자들이나 연구자들이 그러한 입장에 대해 피곤함을 느끼지 않도록 언어를 구사하고 분석하는 것도 탁월한 능력입니다. 저자의 따뜻한 배려가 돋보이는 훌륭한 연구서입니다. 저자를 알지 못하더라도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인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함석헌의 역주 방식, 번역어의 선택과 원문의 원어적 의미를 비교‧고찰하는 저자의 절차적 방법론은 함석헌의 해석과 원문의 의미의 결차(차이)를 선명하게 파악하도록 해줍니다.

한국 전쟁이라는 난리통에 한 헌책방에서 발견한《바가바드 기타》는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를 뒤흔드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동양고전과 신학, 그리고 철학과 역사에 해밝았던 그의 해석학적 언어가 다채롭게 펼쳐져 나온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철학과 종교적 사유에 지‧행‧신(知‧行‧信)의 일치와 변증법적 전개는《바가바드 기타》에서 얻어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저자가 그 구조적 혜안을 바로 요가에서 찾고 있다고 하는 것은 탁견입니다. 지식의 요가(znana yoga), 행위의 요가(karma yoga), 믿음의 요가(bhakti yoga)라는 틀거리는 인도철학과 종교에서 중요한 수행방법입니다. 그것은 말마디가 품고 있는 것처럼 삶(사람)의 길, 살아가는 방법이요 삶의 굴레로부터 온전한 해탈과 해방의 구도적 참 자유의 길입니다. 인간이 알아야 할 참 지식, 인간이 해야 할 참 행위, 인간이 믿어야 할 참 믿음. 이것은 삶의 요체요 참 기틀입니다.

 

다석 유영모와 인도철학의 영향

함석헌의 해석학 혹은 주석학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흔히 유영모와 함석헌의 관계나 거리에 대해서 서로 배타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함석헌은 먼저 간디의 주석본이나 라다크리슈난 등의 주석본을 참조하면서 폭넓은 해석을 시도합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탈’이라는 새로운 언어는 ‘밭을 아는 자’(ksetrajna) 혹은 ‘밭알이’이라는 말, 곧 ‘본성’이나 ‘성질’을 뜻하는 말에서 왔습니다. 이는 인도철학의 atman을 번역한 말입니다. 한자어 대신에 순수우리말 씨짓, 얼씬것의 속ᄋᆞᆯ 등을 사용한 것도 얼핏 보면 다석 유영모의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불교, 도가, 기독교 용어로 번역한 경우도 눈에 띱니다. 브라흐만을 절대자, 하나님을 번역한다거나 속ᄋᆞᆯ을 우주의 근본원리나 정신인 푸루샤(purusa)을 그리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함석헌이 말한 것처럼 작가가 의도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는 논조가 짙게 깔린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따라서 저자가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바가바드 기타》뿐만 아니라 함석헌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철저한 ‘함석헌 비평본’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문제는 함석헌의 종교다원주의 문제입니다. 철학자 김영호는 이 시각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반면에, 박홍규 같은 학자는 함석헌을 종교다원주의자로 해석하는 관점을 거부합니다. 이는 인도의 복합적 신관(범신론, 범재신론, 초월론, 내재론 등)에 대한 함석헌의 다양한 번역이라고 봐야지 단순히 왜곡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인도식 사고에서도 배움이 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종교에 대한 열린 자세를 견지합니다. 함석헌은 감각을 극복하기 위해서 마음을 높이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요가에 방점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자아를 정화하고 내 안에 있는 신을 실현하며 열성을 다해 기도하는 것은 명상으로 이어집니다. 명상은 비움을 위한 수행적 방법입니다.

함석헌이 말년에 쓴《바가바드 기타》 역주서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그의 실천적 수행의 지침은 ‘마음을 높은 데 두십시오’라는 것입니다. 이참에 저자에 의해서 밝혀진 함석헌의 역주에 대한 연구가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저자의 연구가 더 진전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함석헌 연구자들도 깊은 이론적 연구와 수행적 실천을 겸하여야겠다는 옹골찬 마음을 가져야 하리라 봅니다. 이를 지원, 지지하는 함석헌 계승자들의 힘도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다시 한 번 더 저자의 꼼꼼한 연구와 노고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김대식_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함석헌평화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평한 존재론에 입각한 인간의 절대자유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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