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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4대강 개발은 건설회사 출신의 사기극인가?

by anarchopists 2019. 12.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2/2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김영호교수의 일요시평]


그 곱던 곰나루 모래밭 다 어디가고
-너희들 마음밭이나 갈아엎어라-

얼마 전 나는 충남지역에서 두 번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요금도 만만치 않고 안전에도 문제가 있어서 택시는 내게 마지막 교통수단이지만 불가피하게 타야할 경우가 발생하는데, 한 가지 덤이 있다면 운전기사의 여론 브리핑이다.

시정의 여론을 자기 식으로 정리해서 속사포처럼 쏟아 낸다
. 일반 여론과 기사 자신의 정치관이 반영되어있는 셈이다. 누구나처럼 나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찬반 의견을 표시하고 내 소신과 사회철학을 보탠다. 나도 사회발전을 위한 작은 기여를 택시의 장에서도 발휘하고 싶은 것이다. (3년 전 대선 직전 서울시내에서 택시를 탔을 때 어떤 후보에게 기울어져있는 운전사에게 그 후보의 도덕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여 입장을 바꾸도록 설득시킨 경험이 있다. 그 기사는 아마 지금은 선택을 바꾼 것을 후회하지 않고 천만다행이었음을 느끼리라고 믿는다.)

전국의 수만 명 운전사가 건강한 정치관, 사회관을 지니고 전파한다면 정치도 바로잡고 올바른 후보자의 선출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 아닌가. 특히 신문, 방송 등 기존의 언론 매체가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없는 현실에서 건강한 여론 형성을 위하여 택시매체는 아주 중요하다. 택시 여론이 반드시 건강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정보란 것도 기존 매체에 일단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왜곡된 부분이 많다. 건전한 소신과 철학을 가진 승객이 그 여론에 좌우되지는 않는다. 그때그때 여론은 바람직한 수준과 내용이 아니고 극히 현실적이고 일시적인 것일 수 있다. 여론에 반영된 국민의식 수준에 맞는 지도자와 대표(의원)들이 선출되기 마련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 (그리고 의원의) 수준은 바로 국민수준이다. 이 제도는 의식수준이 올라가더라도 임기동안 감내해야 하는 (잘못된) 제도이다.

(개헌을 한다면 변화하는 국민의식을 신속하게 반영하는 제도로의 개혁이라야 한다. 또한 한 사람보다는 집단과 정당이 책임지는 구조여야한다.) 택시 여론은 승객의 수준면에서, 하류층과 상류층을 뺀, 대강 중산층 이상인 만큼 정치변화를 좌우할만한 대표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도 두 기사가 국정의 핵심을 속 시원하게 쏟아내서 요금이 아깝지 않았다. 첫 승차는 약간 장거리(유성-공주) 국가적인 현안들이었고 둘째 번은 단거리(공주)여서 지역 현안문제였지만 역시 국가적 차원의 문제였다.

첫 차의 젊은 기사는 대통령 취임 후 엄청나게 불어난 국가채무와 뛰어오른 기름 값 등 살인적인 물가고, 앞을 달리고 있는 한 여성 후보자의 문제점과 그 대안(여성) 등 전문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진단이었다.

두 번째 택시의 나이 든 기사는 백마강의 모래와 물고기가 주제였다. 곧 4대강 공사문제다. 강을 파헤쳐놓으니 그 많던 큰 물고기들이 살 터전을 잃어버렸는데, 더 큰 문제는 그 많던 유난히 고운 모래를 돈들고 (한 트럭에 50만원) 퍼다가 돈 받고 (한 트럭에 30만원) 팔아먹는 짓이다. 건설회사가 이중 장사를 해먹는 셈이다. 이제 알았다. 4대강 사업이라는 것이 건설회사 돈벌이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을. 역시 건설회사 출신 지도자의 사기극이었구나!

공주를 지날 때 마다 눈에 반짝이던 금강의 드넓은 모래사구는 더 이상 안 보이고 흉물스런 거대한 기중기들만 움직이고 있었다. (부여 백마강은 또 어떨까.)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찬란한 금모래 빛”은 사라지고 백제 민중의 정한이 서린 곰나루는 없다. 일본으로 도피해간 왕손과 유민들이 백제부흥을 위하여 싸우러왔다가 좌절한 역사터였다. 이제 공주에 오는 즐거움, 관광거리 하나가 없어졌다. 다른 강도 마찬가지다. 구례 쪽 섬진강도 뒤집히고 있다. 바다같은 섬진강 하구 하동 쪽 큰 사구까지 건드릴까 무섭다. 타고르와 함석헌이 읊던 ‘영원의 바닷가’ 모래밭들(동해안, 서해안)도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강줄기 모래밭도 사라지는 운명인가.

지금 역사와 낭만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 국토보존의 문제다. 무엇이 그리 화급했는가. 돈이었겠지. 그 놈의 돈 돈. 함석헌이 일찍이 읊었던 바였다.

"빙빙 도는 돈의 걸음 부살보다 더 빠르니 / 돈으로 된 세상이 돈 따라 돌아간다 / 그 안에 담겨있는 것 아니 돌 것 있으랴... 돈으로 된 세상에 돈만 쥐면 주인 될 까 / 오늘 내일 도는 주인 섬기는 종 누구던가. / 서로들 종살이하니 주인 따로 없더라... 세상사람 정신없음 맴돌이질 때문이니 / 인간 병 고치려면 돈 돌리기 그만두라 / 돈 없이 사는 세상이 참 인생의 이상향”(「돈」)

이제 ‘도덕’은 저리가고 ‘돈덕’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됐다. 돈 없어도 살 수 있는 새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상은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아직도 돈이 필요한 사회라면 그 획득과정이 공정한 룰과 게임에 의해야 하고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결과적으로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해야하고 그 속에서만 가진 자를 포함한 모두의 행복이 담보될 수 있다.

정책수행 과정에서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차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정해진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정당성과 정통성을 벗어난 것일뿐더러 집행력, 효율성, 결과 면에서 뒤지기 마련이다. 왜 공산독재를 비판하고 박정희를 비판하는가. 명실상부한 민주(인민)공화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박정희라고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아직도 많다.) 그 여파로 오늘날도 그 후유증을 겪고 있다. 입법부, 사법부가 감시와 견제를 못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4대강 공사도 한 사람이나 소수의 판단으로 행정적 절차를 무시하고 과학적, 공학적, 생물학적 사실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집행된 몰상식한 사업이다. 국가전체가 발전하려면 한 사람이나 소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될수록 제한되어야 한다. 아이디어는 소수가 내더라도 엄격한 검증과 실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람보다 조직(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발전한다.

구제역이 창궐하고 기차가 탈선하고 국가 시스템이 삐걱거린다. 이것을 정부라고 할 수 있을까. 남북관계, 복지정책, 교육정책, 대중외교 등에서 보듯 지금 정부조직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경우처럼 아무리 대통령 한 사람이 똑똑하더라도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자기 머리만 믿고 시스템에 의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똑똑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대대로 상속하는 대기업체나 사립학원도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은 뻔하다. 북한도 일인지배에서 집단지도체제를 거쳐 명실상부한 인민주권체제로 이행하는 것이 파멸을 막고 연착륙 하는 길일 것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지배하는 중동 국가들은 이제 임계점에 다다랐는지 모두 변혁을 겪고 있다. 사실상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우리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른가 묻고 싶다.

4대강 사업의 목적이 모래라면 왜 모래를 몽고의 사막에서라도 수입하면 안 되는 것인가. 안 된다면 그것은 건설업자를 꿩 먹고 알 먹게 더 배불릴 수 없는 일이어서일까. 모래만 아니고 다목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많은 의문과 추측이 남는다. 우리는 참 복잡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읖노니



그 고운 곰나루 모래밭 다 어디 가고
누가 우리 마음밭 황량하게 만들었나
아서라 그대들 마음밭이나 갈고 있을 일이지
천년 쌓인 모래둔덕 가져다가 돈 모래성 쌓지 마라
누가 알겠는가 이 땅의 강물들이 모두 모여
언젠가 모래성 속 별장들 다 덮칠 줄을

(2011.2.26, 김영호)


김영호 선생님은
인문학의 몇 분야를 방황하면서 가로질러 수학, 연구(스톡홀름대, 하버드대 펠로우), 강사(연세대 숭실대), 교수(인하대, 현재 명예교수)로 일했다. 전공은 종교철학(원효사상)으로, 그의 세계관의 큰 틀(패러다임)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를 통해 민족분단. 사회 및 지역 갈등, 종교간 갈등 등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상적 준거는 함석헌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 동안, 해외 민주화운동의 도구인 민중신문』(캐나다) 창간(1079)에 관여,『씨알의 소리』편집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사상연구원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함석헌평화포럼 공동대표와 함석헌학회 학회장직을 맡고 있다.(2015년 12월 현재)
/함석헌평화포럼

본문 내용 중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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