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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석경징 교수 칼럼

큰 도둑 털기 국민운동

by anarchopists 2019. 12.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4/09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윗도둑 털기 운동

건물 밖에 달린 가스관을 타고 10층 건물을 오르는데 10분도 안 걸리는 재주 좋은 사람들이 열린 창문으로 빈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어 갔는데, 정작 도둑맞은 사람들은 어느 한 사람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경찰을 안 믿나, 도둑맞은 줄을 모르나? 가져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면 경찰보다 도둑을 더 믿나?

정말 도둑맞은 줄 모르면, 그럴 수 있다.
마침 없애려던 물건을 가져갔어도 그럴 수 있다.
가난한 도둑에게 가진 것을 풀어주려던 사람이었대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거나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잃은 물건이 제 물건이 아닌 경우라면, 혹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남의 물건이 그 집에 왜 와 있었을까? 남의 물건을 맡은 것이었다면, 잃었을 때 찾아서 원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잃어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물건은, 맡아 놓은 남의 물건이 아니다. 그 물건의 원 주인이 그 물건이 그 집에 있는 줄 모르는 그런 물건일 것이다. 즉 훔쳐 온 남의 물건일 경우에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건물타기 도둑은 10층을 올라가 그만 다른 도둑의 집을 턴 것이다. 이렇게 밖에는 설명할 길이 (거의) 없다.

남의 물건이나 돈이 다른 사람 집에 와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동안 제집에 남의 물건이나 돈이 와 있던 것을 세상에다 대고 큰 소리로 인정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자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제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회사”를 “사회”라고 잘못 말한 건가도 생각되었다. 제 회사에 있던 재산을 제 집에 갖다 놓았다가 도로 제 회사로 되돌려 놓는 것은, 그 절차가 장부상으로 좀 복잡한 것인지는 몰라도, 큰 손해를 무릅쓰고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제 집에서 제 회사로”니까 여전히 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가 아니라 “사회에”라니! 게다가 “환원”이라니! 환원이란 원래 있던 자리로 도로 갖다 놓는 것이니, 제 것이라고 해오던, 전 재산 또는 엄청난 크기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말에는 오로지 크게 놀랄 수밖에 없다. 두 가지가 놀랍다. 하나는 그 많은 남의 재산을 어떻게 하다가 자기가 갖게 되었는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많은 제산을, 그것이 제 것이었건 혹 남의 것이었건 간에, 사회라는 데다가 내놓는다니! 보통 사람 같으면 남에게 무엇인가를 내놓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스스로, 선선히 하겠다니 그냥 놀라울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엄청난 선인(착할 선짜, 사람 인짜)들 아닌가!

그렇게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그리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사회에 환원을 한다는데 그 사회란 뭔가? 환원을 한다니까 그 사회란 것이 그 재산의 원 주인이었나 본데, 그 사회란 무엇이며, 누구인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나도 이 사회의 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은 환원되는 그 재산 가운데서 제 앞으로 돌아오는 것을 받고도 말을 안 하는 것인지는 모르나, 나는 지금까지 환원되는 재산에 관해서는 신문 같은데서 크게 보도되는 것이나 알았지, 단 십 원이라도 내 손에 받아본 적이 없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인가.

사회에 환원한다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 모두에게 환원한다는 것은 아니란 말이었나? 그건 그렇다 하고,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서, 도둑이 들 정도로 사는 것을 보면, 이 도둑은 썩 잘 사는 도둑임이 틀림없다. 그러니까 작은 도둑이 10층을 올라가서 큰 도둑의 집을 턴 것이다 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거의 없다.

높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큰 도둑일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이번 일로 들어났다. 지위로는 총리급이나, 장관급으로 행세하던 이들도 끼어 있다니, 어떤 총리, 어떤 장관이 도둑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도 이번 일로 들어났다.

“아하, 우리 사회가 이렇게 생겨먹었구나”하는 느낌이 안 들 수가 거의 없다. 도둑은 크고 작고 간에 붙잡아서 벌해야 할 텐데, 경찰력은 모자라고, 시민들이 신고도 열심히 안 하니, 이 기회에 청운의 꿈을 지니고 (말이 좀 이상한 것 같겠지만, 10층에 사는 썩 잘 사는 도둑 정도는 꿈꿀 터이니) 나서는 신출내기 도둑이나, 서툴고 가난한 도둑을 데려다가, 전문가(이 방면의 전문가도 경찰에 쌔고 쌨을 테니까)에게 맡겨, 몰입훈련 끝에, 전문가들의 정보를 풀어주면서, 법이 다스리지 않는 큰 도둑들의 집을 털도록 하면, 경비를 덜 드려서 사회를 정화하는 효과를 크게 볼 것이다.

그런다면 여러 가지로 좋은 일만 있게 되는데,
첫째, 건물 타기라는 재주는 있으나 맘껏 부릴 기회를 못 가져서 몸이 근질근질한 재주꾼들에게, 지닌 재주를 부릴 기회를 주는 것.

둘째, 그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게 되어서 마치 “국민을 위한다.”는 무슨 공영기관의 직원이나 된 것 같은 자부심도 느끼게 되고, 앞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리라는 것,

셋째, 작은 도둑이 큰 도둑을 터니, 부의 재분배라는 복지사회의 기본 요건을 쉽게 달성한다는 것. 작은 도둑이 시작한 이 일은 “좀더 큰 도둑 털기 국민운동” 같은 것으로 발전하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작은 도둑에게 털린 큰 도둑은 저보다 더 큰 도둑을 조만간 털 것임으로--스스로 안 나서면, 사회정의를 일러가며 시민의식을 키우면서 건물 오르기 몰입교육을 전문가들이 실시하면 되고--결국 가장 높은 데서 가장 잘 사는 도둑을 터는 데 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

넷째, 이런 유니크한 사회정화 운동이 소리 소문 하나 없이 벌어지니까, 다른 나라에 까지 우리의 어수선한 도둑 다스리기 현상이 알려지지도 않으리라는 것. 왜냐하면, 아무도, 즉 훔친 사람이 말할 리 없고, 잃은 사람 또한 말 안 하니 겨우 알려지는 것은 건물타기교육에서 성적우수자를 고위직의 이름으로 표창할 때 들어나게 되는 정도 일 텐데, 그것은 건물타기란 진작 국제적인 경기종목에 들었어야하는 스포츠라고 하면서 오히려 더 요란스럽게 선전해도 될 것일 것.

그리고 다섯째, 무엇보다 잘된 점은 관련되는 어느 누구도 언짢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왜냐 하면, 윗도둑을 턴 아랫도둑들은 대 만족일 것이고, 맨 윗도둑만, 털어낼 그 윗도둑이 없음을 서러워하겠지만, 이것은 정상의 고독이라는, 영화 같은 데도 나오는 말로 달랠 수도 있을 것이고, 결국 우리 사회는 다른 방법으로는 그렇게나 이루기 힘든, 부의 재분배를 통한 복지사회로의 진입을 거의 완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뭣 좀 하는 사람이면, 으레 국민을 끌고 들어간다. 저이가 하는 짓이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거나, 국민과 함께 한다거나 그런다. 그렇게 내세우던 경제실력으로 경제를 살리는 일을 자기가 해야 할 때가 되니까 “이제 다 같이 경제 살리기 횃불을 들자”고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횃불은 촛불보다 돈도 더 든다. 촛불을 횃불로 바꾸는 것이 경제살리기의 방책이나 된다는 듯이 말한다. 제발 대통령은 대통령끼리 놀았으면 좋겠다. 없으면 혼자서 놀던지.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끼리, 신문기자는 신문기자끼리, 교수는 교수끼리나 놀고 제발 우리를 끌고 들어가지는 말았으면 한다. 작은 도둑으로 큰 도둑을 털게 하고, 교인은 교인끼리 천당이나 지옥이나 가자고 하게하고, 노동자는 노동자끼리 놀고, 제발 국민을 끌고 들어가지 말았으면 한다.

그러면 세상은 훨씬 더 조용하고 편안하고, 천당 지옥 그 어느 데보다도 살만한 곳이 될 지도 모른다. 도둑은 도둑끼리!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끼리! 그리고 국민은 국민끼리! (2011.4.09. 석경징)

석경징 선생님은
석경징(石璟澄) 선생님은 영문학을 전공한 언어학자전공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신다. 재직 중이실 때는 서울대 입시출제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현재 함석헌학회 자문위원이시다.

저서로는 <서술이론과 문학비평>(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역서로는 <현대 서술이론의 흐름)(솔, 1997)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한국에서의 인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숭실대학교논문, 1997)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은 인터넷 네이버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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