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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이만열교수 칼럼

[일요시론] 진실과 국익-천암함 사건을 대하는 '함석헌식' 연상

by anarchopists 2020. 1.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07/11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진실과 국익 - 천안함 사건을 대하는 ‘함석헌 식’ 연상(聯想)

내 집이 ‘참여연대’ 근처에 있기 때문에 최근 여러 가지 사건을 목격하게 되었다. 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에 천안함 사건과 관련,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보고에 대한 의문점을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제시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들이 참여연대를 비애국시하면서 도를 넘어선 비판과 비난을 퍼부었다. 한 때는 ‘애국심’이 지나쳐 자살폭탄이라도 할 듯한 기세도 보였다. 이같은 사태가 일어나자 식자들 중에서는 참여연대가 한 시민단체로서 ‘민군합동보고서’에 나타난 의문점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일 뿐아니라 유엔에 그런 내용을 발송하여 그 사건을 과학적으로 밝히라고 촉구한 것도 시민단체의 일상적인 업무에서 일탈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나라 국무총리는 참여연대의 그런 자세를 비애국적인 행동으로 규정했다. 많은 언론들도 여기에 동조하듯 시민단체의 속성과 책임에 대한 고려는 없이 ‘비국민적’ ‘반애국적’으로 매도하고 나섰다. 언론의 이같은 행동은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동시에 던져 주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가 존재할 수 없는 전체주의 국가에서처럼 시민단체에 대한 이런 태도가 과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인지 크게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여연대 앞에서는 볼상 사나운 모습을 한 여러 군상들이 보였다. 애국에 목말라하면서 심심하면 등장하는 ‘군복’들은 물론이고, 여차직하면 자살특공대로도 변모할 듯한 ‘가스통 할배들’의 모습도 보였다.

참여연대에 가해지는 혹독한 매질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참여연대가 제기한 질문들을 이해 하면서 그렇게 돌을 던지려고 하는가 하는 의문도 갖게 되었다. 참여연대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자 전문가들과 함께 여러 차례 희합을 갖고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했다. 참여연대가 정리한 사건개요는, 한미연합군이 북한 유사시를 대비하여 대량학살무기 제거팀을 참여시킨 가운데 ‘독수리연습’이라는 군사훈련을 하던 중 2010년 3월 26일 21시 15분~22분 사이에 백령도 서남해쪽 1마일 지점의 얕은 바다에서 1,300톤급의 초계함 천안함이 두 동강 난 채로 침몰했으며 이 때 함장 포함 58명은 생존했으나 나머지 46명은 죽거나 실종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보고서는 ‘천안함 침몰에 대한 기본입장’을 밝힌 후, ‘민군조사단이 공개한 최종조사결과에 대한 약평’, ‘이명박 대통령이 결정한 후속조치들의 문제점’ 및 ‘권고사항’을 언급하고 그 다음에 ‘천안함 침몰 조사결과에 대한 8가지 의문점’을 발표했다. 여기서도 먼저 ‘천안함 관련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 개요’를 다시 소개하고 ‘어뢰에 의한 공격임을 입증하는 증거 불충분’ 6개(1~6)항과 ‘북한 잠수정의 침투에 의한 공격임을 입증하는 증거 부족’ 두 개(7, 8)항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는데 여기서는 그 제목만 원문대로 나열하겠다
.

1. 어뢰 폭발로 인한 물기둥은 과연 있었나? 2. 생존자나 사망자에게서 어뢰폭발에 상응하는 상처가 발견되지 않는다. 3. 천안함 사건 초기 TOD 영상 진짜 없나? 4. 절단면과 선체 바닥, 선체내부에서 폭발의 흔적으로 볼만한 심각한 손상이 없다. 5. 가스터빈실 인양 왜 은폐했나? 가스터빈실 조사결과 왜 누락했나? 6. 화약 아닌 알루미늄 산화물이 과연 폭발의 흔적인가? 7. 연어급(YONO types) 잠수정의 실체는 뭔가? 수 일간 추적하지 못한 것은 납득할만한가? 8. 어뢰발사 감지 못했나?

참여연대는 또 ‘천안함 침몰 조사과정의 6가지 문제점’도 지적했다. 거기에는 ‘군의 정보통제와 선별 정보공개의 문제점’ 3개(1~3)항과 ‘민군합동조사단의 문제점’ 3개(4~6)항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1. 군, 천안함 관련 기초자료 비공개와 정보 통제. 2. 천안함 절단 침수 관련 TOD 동영상 은폐와 말 바꾸기. 3. 의혹 제기 시민들에 대한 정치적 법적 수단을 이용한 제재. 4. ‘민간’은 사실상 배제된 민군합동조사단. 5.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인 조사위원회 조사활동 제한. 6. 알려지지 않은 해외조사단의 역할.


참여연대가 제기한 이런 문제들은 참여연대에 비판적인 이들도 자기의 문제의식으로 수용하여 제기해 볼 수 있는 문제다. 애국의 화신으로 등장한 ‘군복’들과 ‘가스통 할배’들도 참여연대를 성토하기 전에 그 문제제기를 고맙게 생각하고 정부를 향해 이런 의문점들에 대한 답을 속시원히 해 달라고 요구해야만 한다. ‘이적행위’라는 딱지를 붙여 참여연대를 ‘박살’내겠다고 하기 전에 이런 의문점들을 속시원히 공개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먼저 항의하고 때로는 성토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연대의 의문 제기가 별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 동안 줄곧 여론으로 환기되어 온 것들이며 특별히 참여연대만의 어떤 전문가적 안목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정말 애국하는 시민이라면 참여연대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에 이런 문제점도 있구나,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를 제기해 주어서 고맙다 하는 자세를 가지고, 민군합동조사단 발표의 수용에 여유를 두는 것도 필요했다고 본다. 당국의 해명을 들어본 후에 가스통을 지고 참여연대에 돌진한다 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해외전문가까지 포함된 민군합동조사단도 이런 질문들에 대해, 초유(初有)의 현상이라 설명하기 힘들다는 어정쩡한 해명 대신 성실하게 답변하는 자세를 가져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사건과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증거 불충분’과 ‘증거 부족’ 및 ‘조사과정의 문제점’ 등을 제시한 방식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에 항의하는 ‘애국적 인사’들도 참여연대가 제시한 내용에 대한 불만보다는 유엔에 그런 내용을 보내 ‘나라망신을 시키느냐’는, 그런 절차상의 문제에 불만이 더 컸던 것으로 이해한다. 이런 문제제기는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유엔에 서둘러 제시한 데 대해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는 것과도 일맥 상통한다.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유엔에 제소하기 전에 국내에서 국민을 상대로 충분히 납득시키는 등의 여과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참여연대도 유엔에 의견을 제시하기 전에 국민적인 혹은 시민운동 차원의 동의와 설득의 과정을 충분히 밟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렇게 했다면 정부가 서둘렀기 때문에 빠진 ‘수렁’에 민간도 되풀이한 것 같다는 지적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동조사단의 발표는, 솔직히 말해서, 필자에게도 곤혹스러웠다. 정부는 열린 자세로, 한 점 의혹 없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증과 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한다고 했고, 그 결과 북한이 저질렀다고 단정했다. 그럼에도 필자에게는 쉽게 납득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그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조사한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필자를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앞에서 참여연대가 열거한, ‘증거불충분’과 ‘증거부족’ 및 ‘조사과정의 문제점’ 등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합동조사단이 과학적 실험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대목이라든지, 과학적 설명을 요청하는 대목에서 ‘초유(初有)의 현상’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데서 특히 필자에게는 납득되지 않는다. 차라리 ‘과학적’이라는 말을 빼버리든지, 아니면 과학의 힘으로 납득되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본다.

거기에 더하여 북한 소행에 의해 국방상 허점이 드러난 것이 틀림없다면, 책임 져야 할 사람이 왜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인지, 상식선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나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 사건이 북한 소행과의 관련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게 지나친 생각일까. 참여연대도 제기한 것이지만, 합동조사단 발표와 다른 말을 했다고 해서 그걸 “정치적 법적 수단을 이용하여 제재”를 가하는 것도 과학의 세계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가능할 뿐이다. 그렇다면 합조단 발표가 과학적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어느 때보다도 이 정권 등장 이후 사회적 잇슈와 관련, 특이한 현상이 보인다. 우선 귀를 막는 데에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너희는 지껄여라,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니네들이 지껄이는 것은 국리민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우리를 방해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비판과 반대의 소리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곳에 소통이 있을 수 없다. 미네르바 사건이 그랬고,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박원선과 도올, 참여연대에 대한 자세가 그랬으며, 최근의 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경찰을 동원하고 검찰로 하여금 겁박토록 하고 때로는 정보 기관도 활용한다. 그래서 공권력을 집행해야 할 기관이 ‘충견’이란 소리까지 감수해야 할 판이다. 처음에 ‘열린’ 자세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세는 어느덧 이 정권의 귀를 막는 관성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과학적으로 밝힌다고 하면서 조사 시한을 무리하게 잡은 것은 덫이 되었다. 민군합동조사발표 당시 아직 실험이 완료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구나 그랬다. 5월 20일을 잡은 것은 아마도 국민으로부터 두 달여 동안 사건 규명을 위해 무얼 했느냐 하는 힐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것은 결정적인 물적 증거가 발표일 닷새 전에 발견되었다는데, 어째서 결정적인 증거 획득 이전에 발표 날자가 정해졌으며, 사고 원인이 이미 규명된 것처럼 언론에 흘려졌는가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혹시 사고원인이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기 전에 이미 예단된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이것은 합동조사반의 조사가 과연 과학적이었는가에 대한 신뢰성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리고 발표 닷새 전에 어부에 의해 건져 올려졌다는 그 결정적인 물증이 닷새만에 분석 조사를 완료했다는 것도 과학의 이름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인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더구나 합동조사 발표당시 아직 실험을 완료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실험도 끝나지 않은 사건이 과학의 이름으로 발표될 수도 있는가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아직 실험을 완료하지 않은 채 이뤄진 발표가 혹시 처음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하겠다는 개방적 자세를 닫아버린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 뒤 정부가 보인 몇 가지 자세 때문이다. 합동조사단의 발표와는 다른 주장이 나올 때에는 폐쇄적인 입장을 취했고 심지어는 고소사태까지 있었다. 몇 번의 말 바꾸기에는 거리낌이 없었지만, 자료를 더 공개하라는 요구는 군사기밀을 내세워 때때로 공개를 거부했다. 심지어는 TOD 공개에 국방장관이 관여했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이뤄진 조사나 발표의 신뢰성에 상당한 의문을 던지게 했다.

부실한 내용을 서둘러 발표했다면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의도가 지방선거를 위해 북풍효과를 감안한 것이었다면 정부(正負)간 효과가 나타났으니까 더 까탈하지 않겠다. 아쉬웠던 것은 발표 시기가 정치적인 고려에서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발표 내용은 신중했어야 했다고 본다. 더구나 과학적인 실험을 끝내야 할 사항들이 있었다면 단정적인 결론은 유보했어야 했다. 속단한 듯한 결론을 내면 진퇴양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정치적인 기회를 선점할 욕심에 진실성에 부실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필자는 천안함 늪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때 발표를 ‘중간발표’ 정도로 해도 좋았다고 본다. 아니면 지금까지의 조사는 여기까지 왔다고 하고 그 추이를 관찰하는 것도 지혜스러웠을 것이다. 결정타를 유보한 채 현재진행형의 짬을 두는 한편 외교력을 발휘할 여유를 가졌어야만 했다. 한 방에 모든 것을 밀어붙이기 전에 문제가 꼬였을 적에 빠져나올 출구도 마련했어야 했다. 성급한 결론을 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혹시라도 이 정권의 소통부재 경색현상이 조급성을 부채질한 것은 아니었을까.

천안함 사건과 관련, 정부의 조급성이 가져온 폐해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심리전을 재개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기개는 상대방의 ‘조준타격론’과 ‘서울불바다론’이 나온 후 오비이락격으로 머쓱하게 들어가버렸고, 합조단 발표 후에 곧 행할 것 같았던 서해 한미연합훈련도 호언과는 달리 미국측이 발을 뺐다. 안보리에 가져가기만 한다면 금방이라도 북한 제재가 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 동안 들인 외교적 비용에 비해 나타난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차라리 그렇게 양언하면서 안보리에 가져가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었다.

한미공조를 보라는 듯이 외치던 이 정권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심리전 재개나 유엔안보리 문제 및 한미군사훈련 등에서 미국측이 소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호언하던 때와는 달리 일언반구의 해명조차 없다. 46명 아들들의 희생이 북한의 소행에 의한 것으로 단정해 놓고 정부는 왜 가만있느냐고 국민이 힐난하는 것 같아서 대책이라고 내 놓은 것이 바로 그런 큰 소리들이었는가. 그렇게 양언한 군사외교적 조치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왜 그렇다고 국민에게 무언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데 이 정부는 어제 한 말을 잊어버렸는가. 아니면 국민을 기롱하는 것인가. 사실 그런 조급성 호언들이 한반도 평화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한 것, 그래서 조용하게 된 것이 국민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되지만, 국가 지도자와 정부의 호언이 실없는 허언으로 그쳤을 적에 입어야 할 국민적 상처와 모멸감은 어땠는지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다. 정부는 그런 국민적 정서까지 사려깊게 감안하여 대외관계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바쁠수록 둘러가라’는 옛말이 아니더라도, 실천 못할 호언으로 일시적인 기분풀이를 하기보다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위무하는 데에 진정성을 쏟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호언장담으로 국가위신을 떨어뜨린 데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이미 갖가지 억측이 나왔지만 대통령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 자세는 당시 한미합동훈련중이었다는 점과 사고 지점이 백령도에서 가까워 수심이 깊지 않다는 것 등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그런 자세는, 조사하지 않고서도 그 소행이 누구의 것인가를 지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특정세력에게는 불만이었겠지만, 국가적 위난을 맞아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 할 위치가 바로 대통령의 자리라는 점에 비춰본다면 믿음직했다. 대통령의 그같은 자세는 곧 사건의 원인규명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겠다는 의지로 연결되었다. 과학의 이름으로 그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한다면 적어도 조사나 원인규명과정에서 정치적인 고려는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과학의 이름으로 말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과학이 말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사실규명에서 정치적인 고려나 애국심(국익)을 근거로 한 판단을 가급적 자제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정치적인 판단이나 애국심(국익)은 자칫 과학적인 판단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유추해 보면 정부가 천안함 사건의 원인규명에서 의도했던 것은 먼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진실’ 규명이었다. 그 진실이 정치적인 고려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애국심에 입각한 비과학성까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혀질 수 있었다. 국민에게는 애국심으로 호소할 수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애국심으로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반공사상과 애국심보다 과학이 말하는 진실이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를 견인하는 데에 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 그렇다면 참여연대가 제기한 것은 국익 우선이었을까 아니면 국제적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진실 규명이었을까,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진실과 애국(국익)이 양립(상반)할 수도 있고 합치될 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과 국익이 합치되면 그것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많은 경우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진실이 아닌데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진실한 것인 양 우길 것인가, 이 경우는 국익이 진실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진실을 살리기 위해 국익을 양보해야 할 것인가. 그럴 때 진실 편에 서게 되면 그것은 국익과 상반되는 것으로 될 것인가, 이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문제의식으로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진실과 애국이 서로 상반되는 위치에 있게 되면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성숙한 인간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한 때 거짓을 통해 국익에 도움을 주었다 하더라도 영원히 국익으로 남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비록 거짓이라도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감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늘날도 없지 않다. 이렇게 가치가 양립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또 가령 진실과 국익이 양립할 때,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당장의 국익에 손상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진실을 말함으로써 당장의 국익에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느 쪽이 진정한 애국이 될 것인가. 친구나 이웃간에도 마찬가지다. 또 세계 보편적인 가치와 민족적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우의 수는 이렇게 얼마든지 나올 수가 있다. 그럴 때 한 가지 원리로 모든 경우의 수에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거짓이든 진실이든 말하지 않음으로써 어려운 처지를 모면하는 이들도 있다. 이걸 지혜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지구촌 시대, 하루 생활권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진실과 국익, 보편적 가치와 민족적 특수성의 양분된 삶 속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다. 고마운 것은 식민지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거짓을 버리고 진실의 편에 서야한다고 주장한 선현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산 안창호와 간디가 그랬다. 도산은 한민족의 큰 병폐가 거짓에 있다고 보고, <거짓은 나의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고 하여 거짓경계하기를 촉구했다. 거기에 민족구원의 삶이 있다고 보았다. 간디는 더 나아가 <거짓은 나라를 위하는 경우에라도 말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식민지 하의 고통속에서도 국익 대신 정직과 진실을 선호한 이들이기에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고 있다. 프랭클린은 젊은이들에게 아예 정직과 신뢰(신용)를 자본으로 삼으라고 훈계했다. 이들 선현들은 국가적 이익 앞에서라도 거짓을 말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 말을 바꾸면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는 곳에서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과 위장된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거짓을 말한다든가,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익도 뒷날 역사 앞에서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가 진실을 밝히기에 난신적자들은 이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드레퓨스 사건이 그랬다. 19세기말~20세기 초 프랑스의 반독일적인 맹목적 애국심이 부패한 군부의 무능과 결탁, 유태인 장교 드레퓨스 대위를 인종차별에 의해 독일군의 스파이로 몰아 희생시켰다. 그러나 에밀 졸라 등의 지성인들에 의해 이 사건의 진상이 폭로되고 드레퓨스는 종신유배지에서 돌아왔다. 미국이 미서(美西)전쟁의 구실로 삼은 메인호 사건은 그렇다 하더라도, 베트남 전쟁 개입의 명분으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이나 이락 전쟁 참여를 정당화한 대량학살무기은닉 선전 등은 결국 거짓으로 판명났다. 미국의 국격이 급속히 떨어지게 된 것은 이 두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진실 아닌 것을 가지고 국익을 위한다고 우긴 역사적 사건들은 프랑스와 미국을 한 때나마 더 큰 위기로 몰아갔다.

천안함 사건, 수장된 젊은이 46명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고 목이 메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캐는 것은 성역으로 되어 민군합동조사단이라는 정부 지정 기관 외에는 접근이 불가하다. 군부는 자료를 독점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공개하여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소극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증거불충분’과 ‘증거부족’ 및 ‘조사과정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주장은 마치 이적행위처럼 치부되고 있다. 그렇다고 국회가 진실을 밝히려고 성의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기껏 정략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서 국민에게 실망을 줄 뿐이다. 이럴 때 국제사회에서 더 깊은 신뢰를 갖도록 하자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만에 하나’ 기왕의 합조단 발표가 뒤엎어진다면 국가 체통은 말이 아닐 것이다.

역시 ‘만에 하나’ 국가체통이 떨어졌다면 더 떨어지지 않고 회복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지금이라도 그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자료를 공개하고 자유롭고 활발한 논의를 통해서 원점에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황우석 사건에서 배운 바 있다. 국내의 양심적인 젊은 학자들이 황우석으로 말미암아 떨어진 국격을 회복하는 데에 크게 공헌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결단이지만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의 대결적인 자세를 누그러뜨리고 한반도 평화회복의 획기적인 계기도 만들 수 있다는 희망도 보여질 것이다. 진실만한 국익이 없고, 진실에 바탕하지 않은 평화란 있을 수 없다.(2010. 7.8, 이만열)

이만열 선생님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한국사 근대)를 받으셨다. 1980년대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된 해직교수 출신으로 자주적인 시각에서 한국사를 조망해온 진보적 성향의 원로사학자다. 대학강단에 계시면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숙명여대에서 정년퇴임하신 뒤(1970~2003)에는 국사편찬위원장(2003~2006)을 지냈으며, 요즘은 시민을 대상으로 역사강좌에 전념하고 계신다.

학술면에서도 큰 공적을 남기셨다. 개신교의 대표적인 잡지 중 하나인《복음과 상황》을 창간하였고 단재 학술상(1992), 독립기념관 학술상(2008), 용재 석좌교수상(2008)을 수상하셨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역사학의 이해》,《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 연구》, 《한국기독교와 역사의식》, 《한국기독교 수용사 연구》등이 있다. 최근에역사수상집으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2010)을 내셨다. 현재 <함석헌학회> 학회장을 맡고 계신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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