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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이재봉 교수 칼럼

위싱턴에서 온 편지

by anarchopists 2019. 10. 2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6/01/07 20:14]에 발행한 글입니다.

* 다음 글은 위싱턴에 가 있는 원광대 이재봉 교수님이 보내온 편지 내용입니다

제목: 워싱턴에서의 시위와 상상
오늘 1월 6일 워싱턴의 일본대사관과 한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협의’ 규탄 시위에 다녀왔습니다. 작년 11-12월 서울의 ‘민중 총궐기’ 대회엔 머릿수 하나 보태기 위해 갔고, 오늘은 동포들이 데모를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려고 갔지요. 목적이 어떻든 한국과 미국의 수도에서 시위에 참여해봤으니 국제적 시위꾼이 된 셈이랄까요?

평일 낮 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주미 일본대사관 앞에 40여명이 모였습니다. 70대 어르신들부터 10대 학생들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정의로운 해결 미주 행동>이라는 단체 이름으로 “굴욕적 야합의 산물 ‘12.28 위안부 문제 한일 협의’를 거부한다”는 성명을 낭독했습니다. 몇 가지 구호를 한국어와 영어로 번갈아 외쳤습니다. 노래도 불렀습니다. 여고생을 포함한 몇 사람이 몇 분씩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시위대 대표가 경찰과 경비원의 안내로 대사관 안에 들어가 항의서한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근처 한국대사관 앞까지 행진했습니다. 대사관들이 밀집해있는 동네에서 확성기와 북까지 동원해 떠들썩하게 시위하는 바람에 혹시 ‘소요죄’로 체포될까봐 쫄았지만 경찰차 두어 대는 오히려 시위대를 지켜주더군요.

시위는 1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수천 명 내지 수만 명이 모이는 서울의 시위에 비하면 참 싱거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허전한 게 있었습니다. 백악관이나 국무부청사 앞까지 행진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한일 간의 졸속적인 야합이 미국의 압력 없이 이루어졌겠어요? 1964-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에서 나온 구호 가운데 하나가 “양키 입 닥쳐”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의 조종과 압력에 따라 한일협상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위안부 협의’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군사협정을 거쳐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마침 오늘 아주 좋은 빌미가 생겼습니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입니다.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해왔으니까요.

시위대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오바마-아베-박근혜가 겉으로는 북한의 수폭실험을 비난해도 속으로는 웃지 않을까. 한일 군사협정이나 한미일 군사동맹을 반대하면 여지없이 ‘종북’으로 몰릴 테고,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망 (싸드) 도입 반대 운동도 물 건너 가겠군. 이렇게 남북 간에 그리고 북미 간에 ‘적대적 공존’이나 ‘적대적 공생’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의 복지예산은 더 줄고 무기구입 비용은 더 크게 늘테고 ㅠㅠ.”

이재봉 선생님은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이후 동국대를 거쳐 미국 하와이대학교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원광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행정언론학부 정치외교학전공 평화학 교수로 있으면서 같은 대학 《평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그 외 사회활동으로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남북평화재단에도 관련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문학예술에 나타난 반미주의》(박사학위논문), 《북핵과 한반도평화》(2004),《함석헌의 비폭력사상과 한반도의 비폭력통일》 (2011)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은 가능한가》(공저, 2001), 《벼랑끝 협상 : 북한의 외교전쟁》(공역, 2003), 《두 눈으로 보는 북한》(2008)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1월 6일, 워싱턴에서 재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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