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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독자로부터 온 편지

요즘 세상, 죽었으면 좋겠다.

by anarchopists 2019. 10. 3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05/30 04:46]에 발행한 글입니다.

토닥 토닥...

낙숫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수(午睡)에 취해 비몽사몽. 점심으로 어머님 친구 서너 분과 수제비 떠 먹는 즐거움에 과식을 했었는지, 불뚝 솟아오른 배를 주체 못하고 씩씩 거리며 꾸벅거리다가 두 분 어르신의 바람 같은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난봄 ‘허릿병’이 도져서 지팡이 없이는 댓 걸음도 버거워하시는 평님 어르신이 평소 과묵하고 사려 깊은 양촌 할매를 부르셨다.

"성님, 저승이 있으께라우."

"암만. 저 시상에는 죽고 사는 것도 없고 몸뚱이 아픈 것도 없고, 밥을 안 묵어도 배고픈 줄 모르니께 세 끼니 채워 묵을라고 애쓰고 살 것도 없다드먼."

"성님, 글먼 워찌게 살어야 저승 가서 낯 부끄럽지 않을께라우."

"넘의 눈에 눈물 안 나게 혀야 해. 내 것이 아닌 것은 콩 한 조각도 욕심 내믄 안되야."

"성님, 나는 죽을 날 받아놓고 본께 걱정이 한 짐이랑께요. 젊었을 적에 순택이 아부지 한참 계집질에 미쳐서 밖으로만 싸돌아 댕길 적에 보성장 국밥집 각시를 찾아가서 모질게도 패악을 부렸었는디 닷새 전에도 그 각시한티 포악질 하는 꿈을 꿨당께요."

"배 곯는 자식넘들 팽개쳐놓고 미친 짓 허고 댕기는 꼴을 보다 못 해서 그런 것이제, 그것이 뭔 죄간디."

"그려도... 아즉도 그 각시가 땅바닥 치며 통곡하던 곁에서 따라 울던 너댓살 먹은 가시내 모습이 눈에 선 허네요."

"워쩌것능가. 없이 산 것도 죄락허믄 벌 받어야제. 그 시절에는 워낙 배 곯던 세월이라 일 년 내내 흙 범벅으로 해찰 한번 않해건만 굶는 날이 부지기수였제. 지금 시상 같으믄 뭣이 아쉬어 남의 것에 욕심 내것능가"

"요새 테레비에 나오는 높은 양반들은 하늘 무선줄 모르고 잘묵고 잘 댕깁디여"

평님 어르신은 못마땅한듯 혀를 차며 지르듯 한마디 던져놓고 내 눈치를 살피셨다.

"자네, 칠팔년 전에 태풍에 쓰러져서 이장이 베어 준 운봉성님집 뒤안에 살구나무 큰넘 생각나는가"

"그 집 살구가 이 근동에서 젤 맛났지라우."

"요맘때였는디... 첫 닭도 울기 전에 아무도 모르게 새벽이슬 밟고 가서 주워다 빈속에 학교 가는 아그들 두어 번 멕였는디 것도 걸리네. 운봉성님집 아그들도 먹을 것이 없어서 눈만 뜨믄 살구나무 밑에 가서 살았을 땐 디... "

처마에 매달린 빗줄기를 응시하고 있는 양촌 할매의 아득한 눈빛이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부숴져버릴 것 같아서 숨소조차 낼 수 없었다.

"성님은 참말로 어서 죽었으면 좋긋소. 지는 지은 죄가 많아서 긍가 지옥 갈까 뵈 걱정이랑께요."

"나는 어서 죽었으믄 쓰것네. 인자는 혼자 사는 것도 징그럽고, 이 몸땡이 건사 못 해서 자식놈들 신세 지는 것도 싫네. 사는 재미도 젊어 기력 있을 때 이야기제 죽을 날 받아놓은 아흔 줄에 뭔 낙이 있것능가."

두 분의 속 이야기 듣느라 잠은 멀리 달아나고 굵어진 빗줄기만 가슴을 훑고 지납니다. 토닥... 토닥...

나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로 기억되지는 않을까. (2014. 5.27, 고요)


* 고요님에 대한 이력은 후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광주에서 특별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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