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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베이컨, 인간의 지식이 인간의 힘이다!

by anarchopists 2019. 11. 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7/10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베이컨, 인간의 지식이 인간의 힘이다!



  프란시스 베이컨(F. Bacon, 1561-1626)의 아버지 니콜라스 베이컨은 영국 왕실의 옥새관이였다. 베이컨은 아버지의 신분에 힘입어 법률 수업을 받았고 영국 대사를 수행하기도 하였고 파리에 체류하면서 많은 공부를 하였다. 그의 학문적 영역은 자연철학, 논리학, 정치학, 윤리학, 신학 등 다양한 관심 분야를 망라하였다. 그는 기술적 진보의 신봉자답게, “인간의 지식이 곧 인간의 힘이다... 자연은 오로지 복종함으로써만 복종시킬 수 있기 때문”(F. Bacon, 진석용 옮김, 신기관, 한길사, 2011, 39쪽)이라고 말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자연물을 결합하거나 해체하는 것일 뿐”(신기관, 40쪽)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과학적 이성을 통한 자연의 지배를 논했던 것이다. 이는 후대에 나쁜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된다. 이른바 자연을 착취하는 도구적 이성, 자연의 과학적 해체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사유의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발견한 것에 안주하거나 그를 이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않고 더욱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요컨대 그럴싸한 지레짐작이 아니라 명석판명한 지식을 얻고자 고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학문의 아들이라 할 것이니, 우리는 (그들이 원한다면) 기꺼이 그들의 친구가 되고자 한다.”(신기관, 37쪽) 전혀 의심할 수 없는 명석판명(明晳判明, clara et distincta; clear and distinct)한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만이 학문의 아들로 인정하겠다는 베이컨의 말은 근대 철학 이후 누누이 등장하는 말이다.


  인간은 항상 명석판명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고 어떤 정신의 우상, 의식의 우상에 빠진다. 베이컨은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우상을 네 가지로 나열하고 있다. 1) 인간 종족 자체에 뿌리박고 있는 ‘종족의 우상’(Idola Tribus), 2) 인간의 정신은 변덕, 동요, 우연적이다. 이런 것들이 자연의 빛을 차단하고 약화시킨다고 본 ‘동굴의 우상’(Idola Specus), 3) 잘못된 언어는 지성에 폭력을 가하고 혼란을 준다고 생각한 ‘시장의 우상’(Idola Fori), 마지막으로, 4) 철학의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 방법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생기게 된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시장의 우상’이 가장 고질적이다.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를 지향하기보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발생하는 질병이다. 따라서 우상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획된 실험을 통해 얻은 경험에서 중간 수준의 공리(사물의 형상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를 이끌어 내고 이 공리에서 다시 새로운 실험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신기관, 진석용, 한길사, 2011, 39-65쪽)


  베이컨은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적 진보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종교와 이성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을 드러냈
는데, 종교에서 모든 인간들이 서로 배려하는 사랑은 의무라고 생각했다. “종교는 인간 사회의 기반으로서 주요한 것이며, 그 자체가 통일이라는 참된 기반 속에 확고히 들어가 있을 때에는 훌륭한 것이 된다”(F. Bacon, 이종구 옮김, 수필집, 범한출판사, 1982, 38쪽)고 했다. 종교가 분열, 분리, 갈등이 아니라 사회를 통일시키는 인간 사회의 기반이 된다면 좋은 기능을 한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진리는 본디 자기를 판단하는 데 남의 기준에 의하지 않는 것으로... 이 진리는 인간성의 가장 높은 선(善)인 것이다”(수필집, 32쪽)고 하면서 진리에 따라 사는 삶은 어느 것에도 속박당하거나 예속됨이 없이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사는 것이야말로 선이 될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선하고 싶어 하고 그를 통해서 신이 부여해 준 참된 행복을 맛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선량의 뜻은, 사람들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수필집, 74쪽) 곧 친절함(philanthropia), 성질의 선량은 신의 속성임을 강조하였다.


  “종교의 교의는 윤리에 관한 것이든 비의(秘儀)에 관한 것이든, 하나님으로부터의 영감과 계시가 없으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종교에서 인간 이성의 용도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는 신비들을 개념화하여 이해하는 일이요, 둘째는 이러한 개념 및 이해에 근거하여 교의체계와 지도원리를 추론하고 정립하는 일이다.”(F. Bacon, 이종흡 옮김, 학문의 진보, 아카넷, 2002, 472-474쪽) 이러한 베이컨의 종교관을 보더라도 그가 이성과 종교의 관계를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초보적이고 피상적인 철학지식은 인간 정신을 무신론으로 향하게 할지 몰라도, 보다 심원한 탐구는 인간 정신을 다시금 종교로 되돌려 놓게 마련이다.”(학문의 진보, 16쪽) 계시를 제거하지 않고 이성을 통해서 종교의 내용을 추론하고 이해하는 과학적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계몽사회의 도래를 위한 초석을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확실히 자기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은 공공 사회를 황폐시킨다. 이성을 사용하여 자기애와 사회를 나누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진실하면서, 남에 대해서는 거짓이 아니도록 해야 한다.”(수필집, 119쪽) 이것은 학문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베이컨은 “부를 덕성(德性)의 방해물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나는 모른다”(수필집, 162쪽)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을 바라고 싸우는 용병처럼 이익을 위해 일을 사랑한다... 오직 학자만이 천성적 활동으로서 일을 사랑한다. 운동이 육체의 건강에 좋듯이, 학자는 정신의 건강에 좋은 활동으로서 일을 사랑하며, 어떤 대가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같은 활동 자체에서 기쁨을 얻는다.”(학문의 진보, 25-26쪽) 학자는 이성적인 활동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이다. 어떤 이익을 위해서 자신만을 위해서 사랑하는 일이라면 의미가 없다. 그것은 학자가 사회를 퇴보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학문은 인간 정신으로부터 거칠고 야만적이고 난폭한 성질을 제거한다.”(학문의 진보, 125쪽)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사회의 야만성을 순화시키고 폭력적인 사회를 건강하고 건전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학문은 국가나 정부에 좋은 역할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반드시 그리 해야만 한다. 베이컨은 “국가도 풍부한 정치가들, 학자들과 교류하지 않는 정치가들에 의해 관리된다면, 그 결과는 처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반면에 정부가 깊은 학식을 가진 통치자의 수중에 있을 경우에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학문의 진보, 20-21쪽)고 말한다. 공부하는 정치가, 연구하는 정부가 국가 운영을 잘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베이컨은 “죽을 때까지 자선을 연기하지 말라”(수필집, 165쪽)고 했는데, 학자들에게 있어서 자선이란 학문적인 자선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자선이란 일반적인 자선이지만 학자들에게는 정부나 국가를 위해서 학문적으로 해야 할 역할을 태만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나는 의심한다”(acatalepsia)고 하는 자기 이성의 확실성과 자신에 대한 철저함, 학문하는 자의 자세와 역할에 대한 베이컨의 철학적 면모를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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