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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영일 교수 칼럼

박 대통령의 친미적 발언, 그리고 1600만 노동자의 눈물

by anarchopists 2019. 11. 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5/29 04:56]에 발행한 글입니다.


1600만 노동자를 울린
대통령의 미국 방문

희대의 성추행 사건으로 묻혀버렸던 방미 중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최근 최대의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윤창중이 미국에서 도주하던 바로 그 시각에 대통령은 워싱톤의 한 호텔에서 미국 기업인들을 만났다. 외자유치를 위해 마련됐다는 자리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애커슨 회장이 한국에 8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하겠으니 한국정부가 나서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주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즉석에서 박대통령이 통상임금은 “한국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확실하게 풀어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통상임금이란 야간·휴일근무와 같은 초과근무, 연차, 유급휴가 등 각종수당이나 퇴직금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직접 노동자의 소득과 생계에 영향을 미친다. 상여금 등이 포함되면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기본노동외 수당이 높아져 수입이 오르고, 포함되지 않으면 그만큼 줄어든다. 즉, 재계와 노동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이다.

일찍이 재벌 편에 서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던 군부독재는 통상임금에 기본급만을 포함시켰다. 그 결과, 재계는 노동계의 임금인상 요구에 가급적 기본급을 억제하고 상여금과 수당을 올리는 편법을 써, 심한 경우에는 기본급이 전체 급여의 40% 정도에 불과한 기형적인 임금구조를 낳았다. 독재정권의 재벌 편향이 노사 간 극한 대립의 불씨가 된 것이다.
그런데 노동민주화 과정에서 통상임금의 범위가 꾸준히, 그러나 대단히 어렵고 더디게 확대돼왔다. 1995년 대법원이 전원합의제에서 임금은 모두 근로의 대가라고 선언했다. 그 후 매월이 아니더라도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를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시켰으며, 2012년 3월에는 “분기별로 일정 금액이 지급되는 상여금과 근속수당도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다.

이렇게 20여년에 걸쳐 어렵사리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통상임금 쟁점이 무지한 탓인지 경솔한 실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다시 사회적 갈등으로 점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재판의 공정성과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을 유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노동탄압의 유신시대를 연상케 하는 역사적 퇴행이다.

동시에 1600만 노동자의 생계를 볼모로 외국기업의 민원을 해결하겠다는 점에서 주권국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 더구나 GM은 현재 통상임금관련 소송을 진행하여 1, 2심에서 패소하고 대법원 상고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소송당사자다. 패소가 확정되면 약 1조원에 이르는 수당을 체불임금으로 지급해야 할 형편에 처해 있다. 대통령이 진행 중인 소송 당사자의 한편에 서서 공정한 재판을 불가능하게 할 소지가 크다.

대통령의 무분별한 발언을 계기로 재계에서는 통상임금문제가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법원의 해석이 그대로 인정된다면 38조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뒤집어 해석하면, 노동자들이 38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부당하게 빼앗기고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자신의 국정비전은 물론,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연구들이 외국인투자가 경제성장이나 일자리 창출에 별 효과가 없음을 실증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직접투자의 결정요인으로 임금보다 경제성장 자체, 더 나아가서 부정부패의 해소나 법질서 확립 등 제도적 정비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입증되고 있다.

현재 한국기업의 투자부진은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지금 재벌기업은 엄청난 이익을 올려 천문학적인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보도에 의하면 10대 그룹의 사내유보율이 사상 최대인 1400%를 넘어 쌓아둔 현금이 원금의 14배를 넘는다고 한다. 전반적인 소비지출이 줄어들면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팔리지 않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생산시설을 확충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기업의 투자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많이 팔리고 이윤만 낼 수 있다면 아무리 비용이 높아도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다. 따라서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기업들의 인건비 지출을 늘려야 한다.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 내수가 진작되면 투자기회가 늘고 일자리도 많아 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번 대통령 방미의 참상을 접하면서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당당하게 우리 이익을 대변하고 지키는 모습을 소망해본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우리를 배신하고 미국에 봉사하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참으로 서글프고 씁쓸하다.
(2013. 5.27, 박영일)

박영일 선생님은
박영일 선생님은, 국제통상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작하고 있다. 국제통상물류대학원장을 지낸 바 있다(2010) 그리고 일본 도쿄대학 교환교수(2005)를 지내기도 하였다. 사회변혁과 개혁에도 관심을 보여 인천겨레하나 공동대표를 지낸 바 있다. 이외 노동문제, 환경문제에도 관여하였으며 현재 함석헌 학회 부학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인천평화도시 만들기 운동을 제안한 바 있다. 박영일 선생님은 지연, 학연, 혈연, 종연의 꼬리를 싫어하고 사진조차 나돌아 다니는 것을 싫어하여 사진 게재를 안 합니다. 옆의 사진은 지난 제3회 함석헌학술발표(2011.2.17.) 때 모습임. /함석헌평화포럼

* 이 글은 「시사인천」(2013년 5월 27일자)에 실린 ‘GM 노동자를 울린 대통령 미국 방문’을 약간 수정한 것임.
* 본문 내용 중 사진은 노컷뉴스와 다움이미지에서 퍼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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