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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영일 교수 칼럼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은 공약이행 때만 성립된다.

by anarchopists 2019. 11. 5.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03/20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경제민주화·복지 공약, 반드시 지켜야 한다.

박근혜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행복시대’를 국정비전으로 제시하고 나서 곧바로 우리 삶의 곳곳에 ‘행복’이란 두 글자가 나붙기 시작했다.
본시 주관적이고 심리적이어서 모든 사람이 절실하게 소망하면서도 좀처럼 얻지 못하는 행복을 국민 모두에게 보장하겠다니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성공하기를 염원한다.

사람들이 대체로 꼽는 행복을 생각해본다. 평화와 경제적 안정 속에서 충만감을 느낄 때가 행복하지 않을까? 어떠한 질환과 사고위험으로부터도 해방돼 건강과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아 배움을 즐기고, 일과 여가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기여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 축복 속에 아이를 낳아 기르고 노후 불안 없이 장수를 누리며, 이웃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때 대다수 국민은 행복할 것이다.

국민행복을 위한 시대적 과제는 경제민주화·복지정책
메마른 경쟁사회에서 로봇처럼 차가운 머리로 계산하고 이익만을 쫓는 이기적인 인간형을 전제로 하는 경제학에서도 요즈음 행복경제학이 유행이다. 그 요지는 소득(생활)수준이 오름에 따라 행복감이 빠르게 커지지만 일정 수준(약 2만 달러)에 달하면 경제력(돈)보다는 비경제적 문화 활동, 사회경제적 기회, 공동체의 건강성과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일상적인 행복의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이 평균 2만 달러에 달하는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해보자. 먼저 행복을 위해 더 이상의 경제성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소득 격차다. 고소득층의 행복에 미치는 추가소득의 중요성을 그렇게 크지 않겠지만, 저소득층에게는 여전히 중요하다. 따라서 국가의 총소득에서 저소득층에 귀속되는 몫이 클수록 우리사회 전체가 느끼는 행복감은 커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지를 통한 소득재분배가 절실한 이유다. 또한 모든 국민에게 고르게 사회적, 경제적 기회가 주어지면 우리사회 전체의 행복감이 커질 것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장질서와 공평한 경쟁을 보장하는 경제민주화가 절실한 이유다.

이런 연유에서 일찍이 진보개혁 진영이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을 절박한 시대적 과제로 주장해왔던 것이다. 수구세력이 반박하는 것처럼 사돈이 땅 사는 것이 배 아파서가 아니며, 부유층 몫을 뜯어 놀고먹기 위한 것도 결코 아니다. 더욱이 수구세력이 원하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경제민주화는 불가피하다. 국민 대다수가 소비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상황에서 팔리지 않은 제품 생산을 늘릴 기업가는 없겠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가 지난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됐고 한국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정착됐던 것이다. 물론 그 일등공신은 박근혜대통령이었다. 원래 경제민주화·복지 확충에 박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은 적대적이거나 비우호적이었다. 그들은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망국적인 포퓰리즘으로 매도했으며, ‘줄푸세’가 상징하는 바와 같이 자유경쟁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왔다.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은 공약 이행
그런데 갑자기 박근혜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공약한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고 야권 후보에 밀리기 시작하자 자신의 사회경제적 속성이나 정체성, 이전의 신념과는 너무나 동떨어지고 엉뚱한, 그러기에 도저히 믿기지 않은 공약을 내건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였다’고 주장하며 아버지를 불러들였고, 자신의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애원했었다. 기이했던 것은 자신들의 존립기반을 허무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도 불구하고 수구기득권층 내부로부터 이렇다 할 반발이 없었다는 점이다.

여하튼, 그 덕택으로 박근혜후보가 승리했다. 특히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 4대 중증질환에 대한 100% (간병비 포함) 국가 보장이란 공약이 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노인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음에도 간신히(51.6%) 승리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정부의 존립근거와 정당성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의 성실한 실천에서 찾아야 한다. 신뢰와 원칙주의자로 자처하면서 공약 이행을 그토록 맹세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까지 들먹거리면서 제시한 공약이 실종된다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공약의 폐기 혹은 후퇴는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것을 자인하는 것으로 종국에는 박근혜정부의 처참한 실패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선거가 끝나자마자 일반 국민은 물론 많은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인수위나 취임 후 발표된 박근혜정부의 기본적인 국정방향이나 정책의 우선순위, 공약을 실천할 핵심세력인 장관 및 청와대 비서진 내정자의 인품이나 이력에서 공약 실천의 의지를 읽기가 어렵다. 더욱이 박근혜정부의 국정을 책임질 최측근들이 공약 폐기를 암시하는 언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의혹의 절정은 대선 당시 공약을 총괄했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이었고, 복지공약을 실행할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서 실세 중의 실세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복지공약이 ‘선거 캠페인용 문구’였다고 당돌하게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박대통령은 입을 굳게 다물고 믿어달라고만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갑갑하다.


부도덕한 수구세력과 단절해야 성공한다.
거듭 말하지만,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는 대선 공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 한국의 명운을 좌우할 시대적 과제다. 시장경쟁에서 강자의 횡포를 막고 공정하고 공평한 시장경제를 확립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중진국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민주적 통제 없는 자유방임시장은 연대와 상생보다는 양극화와 부익부빈익빈을 낳고, 불평등한 경제력이 정경유착을 통해 정치적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사회전반을 오염시킬 것이다. 이미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재벌공화국’의 추악상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우선 시장규제를 강화하고, 경제적 약자들이 단결하여 집단적으로 권익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복지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공약으로 제시한 비과세감면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세출구조조정을 당장 실천하라. 그리고 세제를 획기적으로 개혁하여 부유세를 신설하고, 재산소득(불로소득)과 이권추구행위에 철저하게 대처하라. 이는 단순히 재원 확보차원만이 아니라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의 성실한 실천은 필연적으로 부패한 수구기득권층과의 결별을 요청한다. 그들과 함께하는 개혁은 눈가림에 불과하고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 동안 국회인사청문회를 통하여 언필칭 보수라 자칭하는 이 나라의 주류세력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탐욕적인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양보와 헌신의 미덕은커녕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불가피한 병역·납세 의무마저 회피한 채 사익추구는 범죄수준이었다. 그들이 온갖 편법과 비리, 패거리주의와 반칙을 이용하여 우리사회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거머쥐고 있다.

그들의 집단적 반발과 저항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박근혜대통령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크다. 수구기득권층의 대다수가 바로 ‘박정희 키즈’ 혹은 그 자손들이기 때문에 조직적인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 그가 공약을 이행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2013. 3.15, 박영일)

박영일 선생님은
박영일 선생님은, 국제통상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작하고 있다. 국제통상물류대학원장을 지낸 바 있다(2010) 그리고 일본 도쿄대학 교환교수(2005)를 지내기도 하였다. 사회변혁과 개혁에도 관심을 보여 인천겨레하나 공동대표를 지낸 바 있다. 이외 노동문제, 환경문제에도 관여하였으며 현재 함석헌 학회 부학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인천평화도시 만들기 운동을 제안한 바 있다. 박영일 선생님은 지연, 학연, 혈연, 종연의 꼬리를 싫어하고 사진조차 나돌아 다니는 것을 싫어하여 사진 게재를 안 합니다. 옆의 사진은 지난 제3회 함석헌학술발표(2011.2.17.) 때 모습임.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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