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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특별기고

박근혜식 행정쿠데타

by anarchopists 2019. 11. 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3/12/12 05:15]에 발행한 글입니다.


박근혜식(式)‘행정부 쿠데타’ 보여준 전교조 사태
- 법률 근거 없는‘법외노조 통보’..법치주의는 어디 갔나-


‘무식한 놈 목소리만 크다’더니...폭주기관차 같은 朴정권의 행태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것인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전교조에 대하여 법외노조 통보를 하였으니 막 가자는 것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지난 10월 24일 정부는 전교조를 ‘교원노조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9명의 해직자를 노동조합에서 배제하라는 시정요구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써 설립된 지 14년, 6만 여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전교조는 법률의 보호를 받는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사실상 전교조를 해산시킨 것이다. 법외노조 통보가 노동조합 해산은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법률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외노조 통보와 해산은 동일하다.

정부는 거침없이 결정하고 행동했다. 당연히 많은 이들은 정부가 충분히 법률을 검토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법외노조 통보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무나 당당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정부는 아무런 법률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식한 놈이 목소리만 크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은 법률의 위임 없이 만들어진 것으로서 위헌인 조항이다. 즉, 법률은 노동조합의 해산이나 법외노조 통보에 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데 비해 시행령만 법외노조 통보 규정을 두고 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정한 법률은 노동조합을 해산시키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국무회의에서 정한 대통령령은 노동조합을 해산시킬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명백한 모순이고 하극상이다. 행정부에 의한 쿠데타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노조 해산 명령제도’는 87년 6월 항쟁으로 이미 사라진 것
노동조합 해산제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행령이 위헌, 무효임은 더 쉽게 알 수 있다. 원래 우리나라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 해산명령제도를 규정하고 있었다. 행정관청이 노동조합에 대하여 규약의 취소? 변경 명령을 내린 후 노동조합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해산을 명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으로서 국내외의 비판이 끊이지를 않았다. 사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없애고 하는 것은 순전히 노동자들이 결정할 몫이지 나라가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사회가 민주화되자 이 조항은 곧바로 삭제된다. 1987년 11월, 국회의 결정이었다.

그런데 국회가 폐지한 이 제도를 행정부가 슬며시 부활시켰다. 1988년 4월 15일 노태우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으로 부활시켰다. 아예 국민을 속이려고 작정했는지, 노동조합 해산명령을 ‘법외노조 통보’라고 말만 바꾸었다.

이미 설립된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행정관청이 시정명령의 불이행을 이유로 노동조합의 자격을 박탈하는 본질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애초에 법률로 규정되어 있던 제도를 국회가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부가 다시 살렸으니 법외노조 통보 제도가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태생이 이러하므로 법외노조 통보는 제대로 시행될 수 없었다. 시행하는 순간 법률적 근거가 없는 제도임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의사를 무시한 제도임을, 나아가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쿠데타로 만들어진 제도임을 스스로 알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인권위, MB정부 당시에도 법외노조 통보 시행령 ‘삭제’ 권고
삭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삭제 주장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9월 30일, 조합원 자격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법외노조 통보제도를 담은 시행령을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민주주의와 ‘친하지 않았던’ 이명박 정부시절, 인권과 그리 ‘친하지 않은’ 현병철 위원장 시절의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다.

나아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신속히 성명을 발표하여 다시 한번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규정한 시행령 규정을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친(親)인권적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현재의 국가인권위원회가 열심히 성명까지 낼 정도이니, 이 제도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해산시키겠다고 동원한 제도가 바로 이것이다. 빈약해도 너무 빈약한 근거이고 무리수도 이만 저만의 무리수가 아니다. 어렵게 달성한 민주주의의 성과를 한꺼번에 되돌리려고 하니 무리수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격적인 재판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1라운드는 정부가 패배했다. 법원이 11월 13일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법관이라면 내릴 수 있고 또 내려야 하는 당연한 결론이다.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인정은 당연..노동자 권리 보호하는 게 국가역할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해직자이다. 노동조합에 해직자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가 문제인 것이다. 해직자가 있다고 해서 어제까지 멀쩡했던 노동조합이 갑자기 다른 조직이 될 리가 없다.

세계적으로도 해직자의 노동조합 결성권은 인정되고 있다. 한국의 일부 노동조합도 그렇다. 노동조합의 구성원을 결정하는 것은 조합의 조합원들이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조직을 꾸려나갈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충실하게 보호해 주면 충분하다.

한편, 해직자 문제에 대하여 전교조는 법률싸움 이전에 멋지게 해결해 버렸다. 전교조는 해직자를 노동조합에서 배제하라는 정부의 시정명령을 총투표로 거부했다. 59,828명의 투표 중 68.59%의 선생님들이 9명의 해직자와 함께 하기를 결정한 것이다. 정부의 탄압이 예상되지만 위축되지 않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결정, 의리가 무엇인지 보여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전교조 사태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참된 의리가 있는 한 전교조는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김인회 교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회 교수 참여정부 시민사회비서관을 역임하고 현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한국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으로 <문재인·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낸 바 있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 http://www.futurekorea.org/단비칼럼에서 퍼옴-함석헌평화포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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