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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의 시비평론

“맘” 자락 어딘가에 영혼이 멈춰서면

by anarchopists 2019. 10.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4/11/07 06: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맘” 자락 어딘가에 영혼이 멈춰서면



마음은 자연을 닮은 순수 형상일까? 함석헌의 시어가 가리키는 마음은 자연 본성이다. 반복적인 운율을 따라 자연의 시어들을 구사하는 작가의 무의식은 강박적으로 자연을 지향한다. 마지막 연의 “차라리”라는 어투가 갖는 함의는 이 본성을 아예 탄생의 본능적 욕구인 순수성으로 가져간다. 때 묻지 않음에서 보여주는 인간 본래성은 처녀와도 같다. 그런데 왜 그는 “마음”을 “맘”이라 했을까? 그것은 단순 축약어가 아닌 말의 아낌,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으려는 작가의 감성적 과잉의 절제나 다름이 없다.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자연을 닮은 순수함이 달아나기라도 할 듯이 꼭꼭 감추어둔 맘은 살포시 그 언저리만 내보인다.

<맘>

맘은 꽃
골짜기 피는 난
썩어진 흙을 먹고 자라
맑은 향을 토해

맘은 시내
흐느적이는 바람에 부서지는 냇물
환란이 흔들면 흔들수록
웃음으로 노래해

맘은 구름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한 때 한 곳 못 쉬건만
늘 평온한 자유를 얻어

맘은 봉
구름으로 눈물 닦는 빼어난 바위
늘 이기건만 늘 부족한 듯
언제나 애타는 얼굴을 해

맘은 호수
고요한 산 속에 잠자는 가슴
새벽 안개 보드라운 속에
헤아릴 수 없는 환상을 건너

맘은 별
은하 건너 반짝이는 빛
한없이 먼 얼굴을 하면서
또 한없이 은근한 속삭임을 주어

맘은 바람
오고감 볼 수 없는 하늘 숨
닿는 대로 만물을 붙잡아
억만 가락 청의 소리를 내

맘은 씨알
꽃이 떨어져 여무는 씨의 여무진 알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또 온갖 병상의 어머니

맘은 차라리 처녀
수줍으면서 당돌하면서
죽도록 지키면서 아낌없이 바치자면서
누구를 기다려 행복 속에 눈물을 지어


마음은 내뿜는 향기와도 같아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방으로 퍼지며, 또한 소리처럼 온갖 울림으로 타인에게 말을 건넨다. 마음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얼굴이 되기를 원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은 고요한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하지만, 한 줄기 빛으로 자신의 자리를 드러내준다. 마음은 하늘의 숨을 머금은 듯 그 청아함과 숭고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될 때 마음은 하나의 잉태 가능성을 내포한 씨-알이 되어 모든 것들을 살려내는 힘이 될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희생을 간직한 내적 깊이요, 타자에게 마음의 행복을 주려는 자기 수줍음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마음은 환상이라기보다 “차라리” 진실이자 사실이고 싶은 게다. 그래야 마음은 숨은 듯 숨지 않은 듯 자기의 본래성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들여다보지 않고도 어딘가에 마음이 있을 것이라는 신념은 그것을 신앙처럼 받아들인다. 순수에 대한 열정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마음은 적어도 오염되거나 탁해져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 인간학이 작가의 시선과 더불어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을 이상화한다. 자연이 마음의 외면이라면, 마음은 자연을 닮은 순수한 내면이다. 마음을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징과 은유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을 읽지 않는다면, 인간의 마음의 실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마음자리는 어디에도 없지만, 자연과 더불어 있는 인간은 이미 자연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리라.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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