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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시위군중은 '내부고발자'를 목마르게 기다린다.

by anarchopists 2019. 11. 2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12/23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이제 내부고발자가 나설 때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1년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를 선정했다고 우리 언론도 보도했다. 아닌 게 아니라 민주화를 요구하는 튀니지를 시작으로 99퍼센트를 대표하는 시위자들이 유럽과 미국의 거리를 메우더니 부정선거를 규탄하려는 시위자들이 러시아로 이어졌다. 그렇듯 2011년 지구촌은 민중의 시위로 번졌다. 시위자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타임》은 “권위주의와 부패, 무능으로 얼룩진 기존 체제에 저항해 세계의 정치 질서를 다시 짜고 ‘민중의 힘’에 대한 정의도 재정립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김진숙을 지원하려 모여든 ‘희망버스’를 비롯해, 제주도 천혜의 강정마을에 목적이 의심스럽게 거대 규모의 해군기지를 강제하려고 바위 ‘구렁비’를 파괴하는 정부에 맞서 민중이 모였다. 그뿐인가. ‘4대강 사업’을 무모하게 밀어붙이는 정권에 분노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333대 버스로 낙동강 내성천으로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한미FTA 밀실 통과는 차가운 거리에 인파를 모이게 했고, ‘나꼼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현장에서 의기투합하는 우리의 시위자들이다. 한결같이 지금과 ‘다른 세상!’을 외친다. 변혁을 바란다.

전국의 대학교수 304명이 2011년을 사자성어 ‘掩耳盜鐘(엄이도종)’으로 선정했다고
<교수신문>이 연말에 보도했다. “가릴 엄(掩), 귀 이(耳), 훔칠 도(盜), 쇠북 종(鐘) 4자를 합친 ‘엄이도종’은 ‘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이면서. 내놓으라하는 언론의 필진이자 원로 또는 보직교수인 그들은 2011년 우리 권력층은 자신의 그릇된 판단을 밀어붙이며 소통을 거부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우리 시위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부산 영도, 제주 강정마을, 낙동강 내성천, 그리고 서울 광화문에 모인 민중들은 어려운 사자성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이미 현 정권의 부당함을 준엄하게 꾸짖어왔다.

한데, 시위를 하던, 성명서를 쓰든, 벌어지는 상황을 근본에서 알아야 희생을 최소화하며 소기의 목적에 얼른 다다를 수 있다. 벌어지는 일을 추론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대중에게 알리고 해결하려 행동에 나서고 있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내부 핵심의 속사정을 파악하지 못하는 만큼, 행동은 때때로 엉거주춤하게 된다. 가속력은 물론, 지속성마저 잃는 경우가 발생하곤 한다. 광우병에 얽힌 미국산 쇠고기 관련 논쟁에 이은 시위가 그랬고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며 백지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그랬다. 초기 문제를 제기했던 담당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자의 양심선언이 나와 ‘4대강 사업’에 대한 시위에 잠시 힘이 붙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조치는 이어질 수 있던 내부인의 양심선언을 질식시키고 말았다.

현장을 보라. 시위자들 편에 선 전문가들이 진작 제기했던 문제가 곳곳의 대형 보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진다. 겨울철 혹한에 타설한 까닭에 콘크리트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다. 내부 고발자의 활약이 계속 이어졌다면, 합리성은 물론이고 도덕적 자부심이 얹힌 시위자는 불어났을 테니 4대강 사업은 돌이켰을지 모른다. 물이 줄줄 새는 대형 보들은 머지않아 1억 톤 가까운 강물을 담을 텐데, 그 상태에서 기상관측 이래 최대의 국지성호우가 밀려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상류의 보를 허물어뜨린 막대한 흙탕물은 노도와 같이 그 아래 보들을 연실 넘어뜨리며 둑마저 뜯어낼 가능성이 높다. 4대강은 개발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겠지만, 그 와중에 부당한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다. 안타깝게 정부 홍보자료에 현혹돼 시위자를 외면했던 4대강 주변의 민중이 먼저 당할 게다.

정부 편에서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왜곡하는데 기여했던 어떤 토목 관련학회는 요즘 바쁘단다. 정권이 바뀐 뒤 내세울 핑계를 서둘러 개발하고 있단다. 애초 될성부르지 않았던 사업이라는 거, 진작 파악했다는 징표기도 하지만, 정권 교체 시기가 다가오면서 그들도 제 양심을 더는 속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문제의 근원인 내부, 그 내부에 소속돼 먹고 살기위해 양심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여길 이들은 시방 불안할 것이다. 그들도 불의에 분노하는 보통 사람이다. 우린 보통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 보통 사람의 약점을 우월적 지위로 억압하는 세력에 화살을 돌려야 한다. 그러기에 시위자들은 내부 고발자에 더욱 목마르다.

4대강 사업만일 수 없다. 시위자들이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모순들은 현재 우리 천지사방에서 진행 중이지 않은가. 군홧발에도 펜을 꺾지 않았던 시절을 자랑하는 언론계이건만, 지금은 압도적으로 길들어졌다. 언론인 가운데 시위자로 모인 이들은 오늘도 목이 쉬지만, 시위하는 언론인의 속 뒤집는 보도는 여전하다. 먼저 피해 입을 수밖에 없는 민중이 편향된 보도에 현혹돼 있는 모습을 보는 시위자들도 속이 뒤집힌다. 하지만 양심을 버리지 않은 언론사와 언론인이 제 현장에 남아 있는 한, 내부인의 양심선언이 감춰지지 않을 것이다. 요즘 각광받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있다. 한미FTA는 물론이고, 핵발전을 끊임없이 추진하려는 세력이 저지르는 경주 핵폐기장, 그리고 새만금 사업도 문제투성이다. 앞으로 벌어질 문제도 많다. 내부 고발자의 양심선언에 목마른 시위로 이어질 성격의 목록이다.


1퍼센트만의 잔치를 위해 99퍼센트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시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1년 지구촌의 시위자들은 거리에 나섰다. 많은 시위자가 희생되었고 어떤 시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도덕적 정당성이 있는 한, 시위는 결코 멈추지 않을 터. 만일 내부 고발자가 힘을 실어준다면, 대열의 희생도 줄이고 실패도 줄이면서 시위는 빠르게 ‘다른 세상’을 안내할 것이다. 그리 된다면, 2012년 《타임》은 2011년의 ‘시위자’에 이어 ‘내부 고발자’를 2012년의 인물로 선정할지 모른다. 기득권의 비호 속에 누리던 이익과 권력을 과감히 걷어찬다는 거, 쉽지 않겠지만, 내부 고발자들 덕분에 세상은 밝아졌다. 우리나라는 더욱 그랬다.

내부 고발자를 한층 목마르게 만든 우리 현 정권은 한동안 안락했다. 정권이 법적, 또는 탈법적 권력을 휘두르는 기간에 유권자들의 의지를 묻는 국회의원 선거가 없었다. 언론마저 길들어졌기에 시위자들을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정부는 여겨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저문다. 악취를 진동하면서. 바로 이럴 때 내부 고발자는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 가슴 한 끝에 칼끝처럼 괴롭히는 양심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광화문, 서울광장과 대한문, 전국 곳곳의 현장마다 시위자들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내부인이여! 2012년 용띠를 맞습니다. 양심을 억누르며 표정을 감춘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그대들이 나설 차례올시다.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거친 양심선언이 시위자에게 확고한 합리성과 도덕성으로 이어질 때, 잠시 받을 불이익은 충분히 보상될 게 틀림없을 거요.(2011. 12.23,박병상)

박병상 선생님은
박병상 선생님은
생물학박사. 근본생태주의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생태주의 시각을 지닌 환경활동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했고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과 <인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굴뚝새 한 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1999, 다인아트), 《파우스트의 선택》(2000, 녹색출판사),《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2008, 책세상),《생태학자 박병상의 우리 동물 이야기》(2002, 복갤럽),《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2003, 아르케),《녹색의 상상력》(2006, 달팽이),《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2007, 알마)등이 있다. 또한,《녹색평론》과 《환경과 생명》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위 사진중, 위는  뉴시스(2011. 12.21일자)에서 아래는 네이버에서 따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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