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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평화연구소/박병상 박사 환경칼럼

고로쇠나무 수액은 나무의 피다.

by anarchopists 2019. 11. 2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4/05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고로쇠나무 수액은 나무의 피


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은 지리산 어느 계곡의 너럭바위에 가부좌로 앉아 그날도 참선을 하고 있었나 보다. 때는 봄날. 참선을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여느 때와 달리 무릎이 잘 펴지지 않았고,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서려니 부러지고 말았다. 크게 다칠 수 있었던 상황을 모면하고 부러진 나무를 보니 물방울이 솟아나고 있었고, 그 물로 목을 축이자, 그것 참! 신통하게도 무릎이 펴지는 게 아닌가. 도선은 “뼈를 이롭게 하는 물”이므로 골리수(骨利水)라 했고, 이후 그 수액을 내놓는 나무를 고로쇠나무라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 아직도 유효한 모양이다.


우수에서 곡우까지, 요사이 지리산은 계곡마다 고로쇠나무 수액을 마시러 찾는 관광객이 최대로 붐빈다고 언론은 전한다. 도선의 전설에 더해 화살을 맞은 반달곰이 고로쇠나무 수액을 먹고 나았다거나 전쟁에서 밀리며 지친 신라 병사가 화살이 박힌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마신 뒤 기운을 차리고 백제군을 격퇴했다는 전설이 보태지며, 이맘때 고로쇠나무 수액은 인기를 더한다. 계곡으로 찾아드는 관광객들은 건강을 기원하며 한 컵 받아 마시고, 플라스틱 물통에 담긴 고로쇠나무 수액을 흔쾌히 구입할 것이다. 그를 위해 피아골과 뱀사골을 비롯해 지리산 계곡은 고로쇠나무에 박힌 가느다란 플라스틱 관들이 뒤엉키며 플라스틱 물통들이 사방에 흩어질 것이다.

칼슘이나 마그네슘과 같은 미네랄이 풍부한 고로쇠나무 수액은 단맛이 조금 도는데, 전설처럼, 마시면 뼈를 이롭게 할까. 고로쇠나무 수액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곳에서 주로 유포하는 민간요법은 골다공증과 관절염에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당뇨나 신경통이나 고혈압에도 좋고, 여성의 피부미용이나 산후조리에 도움을 준다고 광고한다. 면역을 높여 감기와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위나 폐를 튼튼하게 하며 숙취 해소에 그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정녕 그 광고를 믿을 수 있을까. 뒷받침하는 연구가 없는 건 아니라지만, 만병통치 묘약처럼 떠받들어지는 고로쇠나무 수액의 효능은 과학적 검증을 받은 건 분명히 아니다.

뿌리에서 흡수된 계곡의 수분이 줄기를 지나면서 봄철 고로쇠나무의 성장에 꼭 필요한 성분이 함유되는 거야 당연하다. 엄밀히 조사한다면 미네랄 뿐 아니라 각종 영양소도 미량 함유하겠지. 물보다 마시는 이에게 이롭겠지만, 사람의 만병을 치료할 정도의 효능을 가졌을 리 만무하다. 양을 늘리려고 물을 섞지 않았다면 약간 달짝지근한 고로쇠나무 수액을 몇 잔이든, 심지어 한말을 다 마신다고 덕분에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 차가운 수액을 한두 잔 마시면 과음으로 생긴 숙취가 씻긴 듯 사라지는 느낌이야 들 수 있겠지만, 고로쇠나무 수액은 약도 강장제도 아니다. 차라리 나무의 피다.

눈이 쌓여 길이 끊어진 산간마을에 저장 식품마저 다 떨어져 갈 때, 동면하던 계곡의 개구리는 영양이 부족한 주민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했다. 마찬가지로 고로쇠나무 수액은 산을 오르며 땀 흘린 마을 사람에게 갈증을 해결해줄 뿐 아니라 미네랄 보충을 돕고, 지친 등산객에게 원기를 어느 정도 회복시킬지 모르지만, 당뇨와 골다공증과 관절염과 같은 퇴행성 질환에 눈에 띄는 효능이 있을 리 없다, 만일 있다면, 약삭빠른 제약회사에서 성분을 진작 파악해 약으로 정제해냈을 텐데, 과문해서 그런가, 아직 그런 소식을 들은 바 없다
.

봄소식을 전하려는 언론의 호들갑으로 부풀려진 효능은 고로쇠나무가 자생하는 계곡으로 관광객을 지나치게 불러들인다. 그저 재미로 한두 잔 마시는 정도라면 고로쇠나무와 주변 생태계에 부담이 적겠지만 몸이 약한 어린이나 환자, 그리고 노인과 수험생에게 두고두고 마시라는 장삿속 권유는 자칫 고로쇠나무의 생장 장애와 계곡의 생태계 훼손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다. 돈벌이를 위한 경쟁적 수액 채취는 계곡의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당국은 기준을 만들어 수액 채취를 제한한다지만, 감시는 멀기만 하니 지리산을 찾는 관광객 스스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 건강은 고로쇠나무 수액이 보장하지 않는다. 건강의 답은 적당한 운동과 자연스런 섭생에 있다.(2012. 4.1, 박병상)

박병상 선생님은
박병상 선생님은
생물학박사. 근본생태주의 입장에서 도시와 생태계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을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생태주의 시각을 지닌 환경활동가를 키우고 싶어 한다.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대표로 활동했고 ‘전태일을 기리는 사이버 노동대학’ 부설 문화교육원 원장과 <인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굴뚝새 한 마리가 GNP에 미치는 영향》(1999, 다인아트), 《파우스트의 선택》(2000, 녹색출판사),《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2008, 책세상),《생태학자 박병상의 우리 동물 이야기》(2002, 복갤럽),《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2003, 아르케),《녹색의 상상력》(2006, 달팽이),《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2007, 알마)등이 있다. 또한,《녹색평론》과 《환경과 생명》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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