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강좌
존 힉의 종교철학
anarchopists
2019. 11. 14. 23:14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2/06/27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한 종교가 다른 종교와 관계없이, 혹은 다른 이웃종교와의 관계에서 유일한 진리, 절대적 진리, 즉 참이라고 주장한다면 다른 종교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진리의 독점력이라는 것은 거기에 있다. 존 힉(John H. Hick)은 이것을 정확하게 짚어 냈다. “어떤 한 종교가 참임을 믿는 데 사용되는 근거는, 다른 모든 종교가 거짓이라고 믿는 근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어느 종교이든지 항상 그것이 참된 것임을 믿게 해주는 긍정적인 증거보다는 거짓된 것임을 주장하는 부정적 증거가 더 많게 된다.”(John H. Hick,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 동문선, 2000, 207쪽) 그럼으로써 자신의 진리가 참이라고 증명하는 근거들이 다른 종교에서는 거짓으로 된다는 역설이 생겨난다. 자신의 종교가 참이라고 말하는 근거들을 체계화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들 속에는 오히려 참이 아닌 것들, 즉 참이라고 억지를 쓰는 논리와 개념들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진리 자체를 드러내는 순수성보다 고도로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포장되는 이설(異說)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참된 종교는 그렇게 자신의 진리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편협된 사유를 벗어나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종교를 상호배타적인 체계로서 생각하는 대신에, 인간의 종교생활을 그 안에서 중요한 소용돌이들이 때로는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배척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간에 병합․저항․재강화하는 등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새로운 분야의 힘을, 그것이 강하든지 약하든지 간에, 만들어 주는 역동적인 운동의 연속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John H. Hick,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 동문선, 2000, 209쪽) 존 힉의 논리대로라면 종교의 자연스러운 현상은 어느 정도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이 건강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종교가 갖고 있는 새로운 힘이 움트기 위한 힘겨루기가 아닐까. 물론 여기서 긴장 관계를 넘어서 갈등과 폭력으로 치닫는 종교 현상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긴장 관계란 종교간의 배타적 성격에서 나온 역학 관계가 아니라, 종교의 새로운 힘으로서 인간 삶의 활력을 불어 넣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정신적 에너지의 발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불교, 유대교, 그리스도교처럼 “병합, 저항, 재강화”되는 새로운 정신적, 종교적 문화가 탄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는 느닷없이 출현한 것이 아니라 각 지역과 역사적 맥락에서 그 문화적 환경을 가지고 태동하였다. 따라서 각 문명에는 참과 거짓이 없듯이, 종교도 참과 거짓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세계의 다른 종교들도 그들 나름대로 그 종교가 속한 지역 사람들의 삶의 여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내용들은 어느 한 문명을 참된 것이라거나 거짓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처럼, 한 종교를 참된 것이라거나 거짓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치 못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인류 역사 내에서의 독특한 종교문화적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종교들이 인간의 유형․성격․사상 유형의 다양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John H. Hick,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 동문선, 2000, 209-210쪽)
존 힉의 주장과 같이, 종교를 문화사적 흐름 속에서 판단해 보면, 종교는 각 지역과 민족의 특수하고 독특한 “유형, 성격, 사상”을 간직한 고유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 참과 거짓이라는 종교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면 안 된다. 마치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흥행하고,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통치이념이자 종교가 된 것처럼 역사적 상황에 따라서 종교의 흥망이 있었을 뿐이지 참과 거짓에 따라 종교의 선택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 지역, 혹은 그 민족에서 발흥한 종교이든 아니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종교이든 인류 전체의 종교문화적 흐름에서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존속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존 힉은 미래에 종교가 하나로 되는 때가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는다. 세계가 하나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때에, 종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융합되거나 일치되는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변화가 초래될 것이다. “하나가 되어 버린 오늘날의 세계에 있어서는 종교들이 상호간의 관찰과 대화를 통하여 의식적으로 교류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종교들이 서로 합쳐지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갈 가능성도 있다. 다음 세기 동안에 각 그룹은 서로가 더욱 근접하게 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그리스도교․불교․이슬람교․힌두교 같은 명칭이 더 이상 그때의 종교적 경험이나 믿음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없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John H. Hick,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 동문선, 2000, 214쪽) 이로 인해서 종교는 자신의 명칭, 호명의 독특성을 상실하고 인간의 다양한 문화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변화들을 이미 다른 여러 종교들에서 볼 수 있는데, 힌두교, 불교, 서양의 신비주의는 무한 존재라는 초월적 존재에 의해서 매개된 종교들이 아니다. “힌두교의 목샤(moksha), 불교 사토리(satori), 그리고 서양의 통합적인 신비주의에 있어서처럼 실재자에 대해 매개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직접적인 깨달음조차도 여전히 그것이 인식력을 가진 인간 정신의 해석 체계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인간의 의식에 의한 체험임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 그들이 물려받았으며 속해 있는 문화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John H. Hick,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 동문선, 2000, 222-223쪽) 그들은 자신의 문화적 체험 속에서 깨달은 인간의 정신 혹은 인간의 의식이 무엇인가를 해석하였다. 그 해석학적 경험과 인식이 자신들이 처해있는 민족이나 지역, 나아가 역사 안에서 새로운 종교문화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란 세계의 다양한 민족, 국가, 지역, 역사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럴 때 자신의 종교만이 절대적 진리이며 참되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인류의 보편적 문화의 흐름 속에서 각 종교의 위치를 파악하는 눈이 열릴 것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교가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아 왔던 전통 속에서 배태된 인간 의식의 가치로서 받아들일 뿐, 그리고 그것이 인류 전체에게 어떠한 정신적 교류와 성숙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존 힉의 종교철학
참된 종교는 그렇게 자신의 진리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편협된 사유를 벗어나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종교를 상호배타적인 체계로서 생각하는 대신에, 인간의 종교생활을 그 안에서 중요한 소용돌이들이 때로는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배척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간에 병합․저항․재강화하는 등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새로운 분야의 힘을, 그것이 강하든지 약하든지 간에, 만들어 주는 역동적인 운동의 연속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John H. Hick,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 동문선, 2000, 209쪽) 존 힉의 논리대로라면 종교의 자연스러운 현상은 어느 정도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이 건강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종교가 갖고 있는 새로운 힘이 움트기 위한 힘겨루기가 아닐까. 물론 여기서 긴장 관계를 넘어서 갈등과 폭력으로 치닫는 종교 현상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긴장 관계란 종교간의 배타적 성격에서 나온 역학 관계가 아니라, 종교의 새로운 힘으로서 인간 삶의 활력을 불어 넣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정신적 에너지의 발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불교, 유대교, 그리스도교처럼 “병합, 저항, 재강화”되는 새로운 정신적, 종교적 문화가 탄생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는 느닷없이 출현한 것이 아니라 각 지역과 역사적 맥락에서 그 문화적 환경을 가지고 태동하였다. 따라서 각 문명에는 참과 거짓이 없듯이, 종교도 참과 거짓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세계의 다른 종교들도 그들 나름대로 그 종교가 속한 지역 사람들의 삶의 여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내용들은 어느 한 문명을 참된 것이라거나 거짓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처럼, 한 종교를 참된 것이라거나 거짓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치 못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인류 역사 내에서의 독특한 종교문화적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종교들이 인간의 유형․성격․사상 유형의 다양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John H. Hick,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 동문선, 2000, 209-210쪽)
존 힉의 주장과 같이, 종교를 문화사적 흐름 속에서 판단해 보면, 종교는 각 지역과 민족의 특수하고 독특한 “유형, 성격, 사상”을 간직한 고유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 참과 거짓이라는 종교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면 안 된다. 마치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흥행하고,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통치이념이자 종교가 된 것처럼 역사적 상황에 따라서 종교의 흥망이 있었을 뿐이지 참과 거짓에 따라 종교의 선택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 지역, 혹은 그 민족에서 발흥한 종교이든 아니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종교이든 인류 전체의 종교문화적 흐름에서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존속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존 힉은 미래에 종교가 하나로 되는 때가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는다. 세계가 하나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때에, 종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융합되거나 일치되는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변화가 초래될 것이다. “하나가 되어 버린 오늘날의 세계에 있어서는 종교들이 상호간의 관찰과 대화를 통하여 의식적으로 교류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종교들이 서로 합쳐지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갈 가능성도 있다. 다음 세기 동안에 각 그룹은 서로가 더욱 근접하게 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그리스도교․불교․이슬람교․힌두교 같은 명칭이 더 이상 그때의 종교적 경험이나 믿음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없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John H. Hick,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 동문선, 2000, 214쪽) 이로 인해서 종교는 자신의 명칭, 호명의 독특성을 상실하고 인간의 다양한 문화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변화들을 이미 다른 여러 종교들에서 볼 수 있는데, 힌두교, 불교, 서양의 신비주의는 무한 존재라는 초월적 존재에 의해서 매개된 종교들이 아니다. “힌두교의 목샤(moksha), 불교 사토리(satori), 그리고 서양의 통합적인 신비주의에 있어서처럼 실재자에 대해 매개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직접적인 깨달음조차도 여전히 그것이 인식력을 가진 인간 정신의 해석 체계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인간의 의식에 의한 체험임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 그들이 물려받았으며 속해 있는 문화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John H. Hick, 김희수 옮김, 종교철학, 동문선, 2000, 222-223쪽) 그들은 자신의 문화적 체험 속에서 깨달은 인간의 정신 혹은 인간의 의식이 무엇인가를 해석하였다. 그 해석학적 경험과 인식이 자신들이 처해있는 민족이나 지역, 나아가 역사 안에서 새로운 종교문화를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란 세계의 다양한 민족, 국가, 지역, 역사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럴 때 자신의 종교만이 절대적 진리이며 참되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인류의 보편적 문화의 흐름 속에서 각 종교의 위치를 파악하는 눈이 열릴 것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교가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아 왔던 전통 속에서 배태된 인간 의식의 가치로서 받아들일 뿐, 그리고 그것이 인류 전체에게 어떠한 정신적 교류와 성숙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위 이미지는 인터넷 daum에서 퍼온 것임.
김대식 선생님은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