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평화연구소/일요 시론, 시평

[일요시론-황보윤식] 도독놈이 판 치는 세상, 큰일 나긴 큰일 났다

anarchopists 2020. 1. 27. 11:37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5/31 08:00]에 발행한 글입니다.

도둑놈이 판치는 세상, 큰일 나긴 큰일 났다.

도둑이라 함은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가 권력과 재산을 가진 자의 소유물을 조금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먹고살기 위해 부자로부터 도둑질하는 것은 생명보존의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나쁜 짓이 아니라는 말이다. 옛날의 도둑은 ‘도둑의 기본양식’, ‘도둑의 기본윤리’, ‘도둑의 기본소양’, ‘도둑의 기본도리’는 가지고 있었다.


‘괜찮은 도둑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도둑의 목적도 변질되었다. 도둑질의 수단이 생계가 아니고 생명보존의 정당방위에도 있지 않다. 권력을 잡고 남 위에 군림하기 위해, 더 부자가 되기 위해, 남보다 잘 살기 위해, 진탕만탕 쓰기 위해, 흥청망청 놀기 위해서다. 다시 말하면, 권력유지ㆍ자본축적ㆍ출세와 과소비를 위해서 도둑질을 한다. 더러운 도둑놈이다. 이제 괜찮은 도둑놈과 더러운 도둑놈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절도죄가 성립하게 되는 것은 기록상 공산제사회가 무너지고 사유제사회가 나타나는 청동기부터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유제사회로 이행은 생산력을 어느 특정계급이 사유하면서 시작된다. 생산력을 독점한 계급은 당연히 권력을 가진 지배층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유재산(생산물과 여자)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질서 유지’라는 명분을 빌려 보복법(慣習法)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우리나라 고조선의 <8조금법>이요, 부여의 <4조법>이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법전>이다.

고조선은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권력층들이 그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물건을 훔치려 들어간 집의 노비로 삼았다”(相盜 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부여에서도 “남의 물건을 훔칠 때는 그 물건 값의 12배로 변상시켰다.”(竊盜一責十二) 즉 도둑질 한 자는 부채노비로 전락시켰다. 이렇듯 절도죄의 성립은 부유한 지배층이 가난한 백성으로부터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낸 보복법이었다. 그리고 ‘가난한 자’의 도둑질은 생존수단이었다.

이후 생산력의 확대와 함께 사회계급도 복잡해지고 그만큼 빈부의 격차, 계층의 분화도 심화되었다. 이에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커지고 생계유지가 어려워지자 도둑발생률은 점점 커져갔고 재산을 가진 자 또한 재산단속이 강화되었다. 그리고 ‘생계수단인 절도’를 나쁜 범죄로 몰아갔다. 그리고 거꾸로 권력을 이용하여 피통치자의 재산을 갈취하는 ‘더러운 도둑질’이 늘어갔다. 이들은 갈취한 재산을 지키고자, 적반하장으로 ‘도둑질은 나쁘다’라는 윤리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도둑을 나쁜 개념으로 만들어 낸 것은 재산을 소유한 지배층이었지, 가난한 민중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난한 자의 도둑질에는 ‘도둑의 기본윤리’가 늘 존재해 왔다.

남의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려고 할 때 주인이 도둑의 인기척을 느끼고 “흐흠” 하며 가볍게 소리를 내어도 도둑은 주인이 안 자는가보다 하고는 조용히 그 집을 나왔다. 최소한 도둑질은 주인이 눈치를 채면 안 훔쳐간다는 기본양식이 있었다. 1970년대 쌀값이 비쌀 때는 끼니가 어려운 이웃들이 남의 집의 쌀을 훔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다. 쌀을 훔치는 자들은 남의 쌀독에 쌀이 조금밖에 없으면 그만 그 집에서 나오고 만다. 그리고 설령 쌀이 있어서 쌀을 가져가더라도 그 쌀을 몽땅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이튼 날 아침에 그 집 식구들이 아침밥을 해먹을 수 있는 분량은 남겨두고 훔쳐갔다. 도둑질의 기본 상식이다. 또 돈을 훔쳐갈 때도 최소한도 그 집의 바깥주인이 이튼 날 아침, 교통비나 콩나물 살 돈은 남겨두고 가져가는 게 도둑의 양심이었다. 1970년대 연탄이 귀할 때 헛간에 쌓아둔 연탄을 도둑맞는 일이 허다하였다. 헛간을 뜯고 밤을 새며 연탄을 훔쳐가더라도 당장 그 집에서 다음날 아침에 땔 연탄 1~2장은 남겨두고 가져갔다. 도둑의 기본양심이었다.


이렇게 옛날에는 도둑이 쌀이나 연탄ㆍ돈ㆍ옷 등을 가져갈 때 최소한 훔치려 들어간 그 집에서 당장 쓸 것은 남겨두고 가져가는 게 도둑의 도리였다. 또 도둑이 물건을 훔치려 들어간 그 집에 아이들만 있을 때는 아이들이 놀래지 않게 마음도 썼다. 이게 도둑의 최소한의 소양이었다. 이렇게 옛날의 도둑은 ‘도둑의 기본양식’, ‘도둑의 기본윤리’, ‘도둑의 기본소양’, ‘도둑의 기본도리’은 가지고 있었다. ‘괜찮은 도둑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도둑의 기본윤리’조차 없다. 그리고 도둑이라 함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가 권력과 재산을 가진 자의 소유물을 생존에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먹고살기 위해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도둑질하는 것은 ‘살기 위한 정당방위’에 해당된다. 그러나 지금은 어찌된 세상인지 권력과 재산을 가진 자들이 더 많이 도둑질한다. 그리고도 나쁜 놈이라는 소리를 듣지도 않는다. 도덕불감증에 걸린 탓이다. 그리고 도둑질의 목적도 변질되었다. 도둑질의 수단이 생계가 아니고 생명보존의 정당방위에도 있지 않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오염시키고 권력을 쥔 자는 그 권력을 유지ㆍ연장하기 위하여, 부패자본주의의 상층 부르주아들은 더 잘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쓰레기자본주의’에 오염된 쓰레기 같은 젊은이들은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다. 그러면 이들 부패한 상층 부르주아와 쓰레기 같은 젊은이들이 벌이는 도둑질의 종류를 들어보자.

2002년 대선 때 일이다. ‘이회창 대권론’에 귀가 닫히고 눈이 어두워 마치 대권을 쥔 양, 가상의 권력을 무기삼아, 그리고 이에 빌붙어서 콩고물 좀 얻어먹으려고 대기업을 욱대겨서 차떼기로 수백 억 원씩을 도둑질해 처먹은 ‘한나라당 정치인’이 있었다. 그러고도 제 도둑질한 것은 덮어두고 뻔뻔하게 남의 티만 나무라는 한나라당이었다.

그들은 연일 대변인을 앞세워 자기들 잘못은 없다는 듯 노대통령의 흠집만 잡으려고 했다.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않았다. 창피함도 없었다. 양심불감증에 걸린 놈들이다. 지금도 노대통령일가를 욱대기는 꼴이 꼭 그 모양이다. 가장 ‘더러운 도둑놈’의 전형이다.

당시 대권을 잡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이회창은 대기업을 윽박질러 불법으로 대선자금을 축적했다. 즉 범법을 했다. 그러면 의당 죄의 값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생각해 줘서’ 감옥을 가주는 것처럼 독립군 행사를 했다. 이를 ‘교활한 도둑놈’이라 한다.

또 대통령선거 자금에 쓸 돈이라고 속여서 대기업으로부터 갈취한 돈을 선거자금으로 쓰지 않고 어차피 노무현은 떨어질 사람이니까 나나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고 자기 호주머니로 슬쩍 해쳐먹은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비열한 도둑놈’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깬 것은 또한 ‘졸렬한 도둑놈’이나 할 짓이다.

정경유착으로 ‘쓰레기자본주의’ 수장이 된 어떤 재벌은 노동자에게 갈 돈을 정치인과 판검사에게 건네주고 세무감찰도 피하고 비리포착도 못하게 막았다. ‘흡혈귀 도둑놈’이다. 이렇게 민주주의를 위장한 권력과 재벌자본들이 더럽고ㆍ교활하고ㆍ비열하고ㆍ졸렬한 도둑놈이다 보니 인민대중들도 이를 본받아서 2007년 대선을 통해 아예 ‘도둑놈공화국’을 만들고자 한다. 인민대중들은 12명의 대선후보자 중 가장 ‘더러운 도둑놈’을 유력한 대통령후보로 지목했다. 그리고는 신나게 도둑질을 해댄다.

한 밤중에 술 취한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기절시킨 뒤 그 사람의 호주머리에서 지갑을 털어가는 ‘치사한 도둑놈’, 엘리베이터에서 연약한 부녀자를 때려 뉘이고 돈을 강탈해가는 ‘흉칙한 도둑놈’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현장 도둑놈 말고 '음흉한 도둑놈'들도 있다.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도덕이고 양심이고 다 팽개치고 달려들어 이익을 갈취해가는 도둑놈들이다. 2003년 온갖 고생 끝에 연구원이 되어 멀리 남극의 해양연구소에 가서 고생하다가 일이 잘못되어 주검으로 돌아오는 그 날, 슬픔에 잠겨있는 그 연구원의 가족 집을 턴 도둑놈도 있다. ‘양아치 도둑놈’이다.

사람이 먹는 음식물을 가지고 온갖 기만적 방법으로 속여 팔아 이득을 챙기는 도둑놈이 있다. ‘야비한 도둑놈’이다. 용돈이 필요한 데 용돈을 안 준다고 부모를 죽이고 부모 재산을 갈취하는 도둑놈이 있다. ‘금수 같은 도둑놈’이다. 학교 가는 어린 학생들을 툭툭 치고 윽박질러 돈을 갈취하는 도둑놈도 있다. ‘똘마니 도둑놈’이다.

이렇게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가 도둑질로 날을 샌다. 그런 도둑놈 중에서도 가장 나쁜 도둑놈이 또 있다. 그 자리에 가서는 안 될 사람이 그 자리를 탐내는 도둑놈들이다. 자신의 역량이나 자질은 생각지 않고 자리를 탐내는 나쁜 도독놈들이 있다. 역량도 안 되면서 정치하고자 하는 놈들이 그들이다. 자질이 안 되면서 성직자 자리에 있는 중놈들ㆍ목사놈들ㆍ신부놈들이 그들이다. 사회정의와 인간양심을 지키고자하는 의지도 없이 검판사직을 또는 변호사직을 권력장악의 짐검다리로 이용하고 있는 검사ㆍ판사ㆍ변호사놈들이 바로 그들이다. 역량이 안 되면서 교장ㆍ교감이 되고자 교사의 양심을 버린 놈들이 바로 그들이다. 직장에서 윗자리에만 눈독을 들이고 밑의 직원을 닦달하는 놈들이 그들이다. 이러한 나쁜 도독놈들은 ‘시궁창 도독놈’이다.

도둑질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중시한다. 남을 해치지 않는다. 적어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 내가 배부르면 남을 도와준다. 그리고 가서는 안 될 자리에 가지 않는다는 양심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 최소한 ‘도둑놈의 기본양심’마저 잊어가고 있다. ‘더러운 도둑놈’들이 대통령에 출마하고 또 그런 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유력한 후보자로 만들고 있는 우리 세상이고 보면, 우리 사회가 큰일 나긴 큰일 났다.(황보윤식, 2009 5.16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