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교육
[이치석 제3강] 공교육 혁명가 , 함석헌
anarchopists
2020. 1. 31. 11:10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3/12 09:00]에 발행한 글입니다.
사실 20세기 자체가 엄청난 혁명의 세기였습니다. 한국사회도 거슬러 올라가면 혁명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혁명에 대한 개념을 혁명하자는 방법이 함석헌의 어머니를 깨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명한 서구지성 에드가 모렝의 말대로 변해야 하는 것은 변화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공교육 혁명도 기존의 혁명방법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결과를 얻었다기보다 혁명하려고 한 그 일, 혁명운동 그 자체가 곧 혁명이다. 그 의미에서 모든 혁명은 다 성공이다. 그러나 보다 깊은 의미에서 모든 혁명은 다 실패다. 이날까지 무수한 혁명을 했어도 혁명이 끊이지 않고 앞으로도 혁명이 계속될 것만은 사실이니 그 일 자체가 모든 혁명은 실패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질상 그럴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혁명은 악과 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 혁명은 죄악의 형태를 변하게 할 뿐이지 그것을 없앨 힘은 없다.……” (“인간혁명”,『전집』2권)
그가 국가주의의 청산을 강조하고, 『씨알의 소리』를 내는 방식 자체가 공교육 혁명가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육자의 자세를 평생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생에 대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 다녔다고 말합니다만, 그러나 “교육이야말로 하나님의 발길질”이라고 단정할 때는 자신의 운명이 교육자였다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그의 최후는 참교육자의 영원한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몸을 학생들 실험용으로 기증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영원한 스승 남강 이승훈의 유언을 일본경찰들의 방해로 실현시키지 못하자, 끝내 책임을 자신의 몸으로라도 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종교 차원의 사제동행을 아름다운 참교육자의 모습으로 실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미 있게 봐야 할 상징적인 흔적이 있습니다. 처음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부임할 때 “있는 정성을 다 붓고 싶은 심정”으로 읽었다는 『성경』의 요한복음 중 “선한 목자” 부분입니다. 한 서양중세사가에 따르면, 그것은 변경을 배려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선한 목자는 한 마리도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변경에서 양떼의 목자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함석헌의 수많은 별칭들도 교육자의 변경에서 나타난 선한 목자의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함석헌은 스스로 “교육자가 되려다가 교육자가 못되고” 말았다는 고백을 합니다. 정말 그가 되려고 했던 교육자의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교육혁명가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시 교육자가 못되고 만 이유도 궁금합니다. 그것은 ‘교육을 직업으로 아는 가련한 인생’들이 설치는 교육풍토 때문에 마음의 발길을 돌려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아는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는 그가 교육자가 되려다가 그만 두려던 시절에 탄생합니다. 그 ‘고난의 역사’에는 ‘역사 없는 인생 없고, 인생 내논 역사 없다’는 청년교사의 고뇌에 찬 인생관이 투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관은 어머니의 목걸이를 찾는 공교육 혁명가의 모습으로 거듭 태어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이치석 끝)
공교육혁명가, 함석헌
-변화 그 자체의 변화 -
-변화 그 자체의 변화 -
사실 20세기 자체가 엄청난 혁명의 세기였습니다. 한국사회도 거슬러 올라가면 혁명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혁명에 대한 개념을 혁명하자는 방법이 함석헌의 어머니를 깨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명한 서구지성 에드가 모렝의 말대로 변해야 하는 것은 변화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공교육 혁명도 기존의 혁명방법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국가주의의 청산을 강조하고, 『씨알의 소리』를 내는 방식 자체가 공교육 혁명가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육자의 자세를 평생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생에 대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 다녔다고 말합니다만, 그러나 “교육이야말로 하나님의 발길질”이라고 단정할 때는 자신의 운명이 교육자였다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그의 최후는 참교육자의 영원한 본보기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몸을 학생들 실험용으로 기증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영원한 스승 남강 이승훈의 유언을 일본경찰들의 방해로 실현시키지 못하자, 끝내 책임을 자신의 몸으로라도 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종교 차원의 사제동행을 아름다운 참교육자의 모습으로 실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미 있게 봐야 할 상징적인 흔적이 있습니다. 처음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부임할 때 “있는 정성을 다 붓고 싶은 심정”으로 읽었다는 『성경』의 요한복음 중 “선한 목자” 부분입니다. 한 서양중세사가에 따르면, 그것은 변경을 배려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선한 목자는 한 마리도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변경에서 양떼의 목자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함석헌의 수많은 별칭들도 교육자의 변경에서 나타난 선한 목자의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함석헌은 스스로 “교육자가 되려다가 교육자가 못되고” 말았다는 고백을 합니다. 정말 그가 되려고 했던 교육자의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교육혁명가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시 교육자가 못되고 만 이유도 궁금합니다. 그것은 ‘교육을 직업으로 아는 가련한 인생’들이 설치는 교육풍토 때문에 마음의 발길을 돌려버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치석 선생님은
함석헌의 역사관
함석헌의 역사관
* 이치석 선생님은, 프랑스 아미앙대학교 역사학 박사과정(D.E.A)수료하였으며, 함석헌의 "씨알교육"을 우리나라에 보급하려 애써오셨다. 현재"씨알의 소리"편집위원으로 계신다
* 저서로는『씨알 함석헌평전』『전쟁과 학교』가 있고, 공저로는『황국신민화교육과 초등학교제』외 다수가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 저서로는『씨알 함석헌평전』『전쟁과 학교』가 있고, 공저로는『황국신민화교육과 초등학교제』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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