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역사교과서는 재판의 대상이 아니다

anarchopists 2019. 12. 15. 01:0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8/19 07:16]에 발행한 글입니다.


역사교과서는 재판의 대상이 아니다.

17일 서울고등법원(재판장 김창석 부장판사)에서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이하, 역사교과서) 공동저자 3명(대표 김한종)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장관을 상대로 낸 수정명령 취소소송에서 1심 판결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그리고 언론권력에서는 앞의 출판사가 펴낸 역사교과서를 ‘왜곡’으로 표현하였다. 과연 ‘역사적 사실(史實)’을 두고 ‘좌편향’이라니, ‘왜곡’이라는 표현을 해도 괜찮은 것인지,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재판의 대상으로 삼아도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이명박 정부의 교과부가 중고등학교 역사교사서가 ‘왜곡’(?) 되었다, 좌편향으로 ‘서술’되었다고 딴지(역사적 사실에 대한 수정지시)를 걸었다. 이에 교과서의 저자들은 2009년 2월 24일, 서울행정법원에 수정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리하여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시비(是非)문제가 재판정까지 가게 되었다. 결국 1심에서는 원고(저자들)에게, 2심에서는 피고(교과부)에게 이유가 있다고 손을 들어주었다. 이 결과로 역사적 사실의 시비문제는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재판부가 실수를 하였다. 1심과 2심 모두 문제의 핵심을 간과한 탓이다. 역사교과서 문제의 핵심은 좌편향과 우편향의 문제가 아니다. 곧 수정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사는 객관적 사실(史實)이 어렵다. 왜냐하면 역사가의 사관(史觀)에 따라 주관적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왜곡되었다”. “좌편향 되었다”고 우기는 것은 역사를 모르는 자의 부끄러운 소치이다. 역사는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듯이, 과거의 역사를 현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왜곡’이니 ‘좌편향’이니 하는 말은 웃음꺼리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교과서 근현대사부분에 대한 딴지걸기는 이명박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이 권력을 잡으면서부터이다. 이명박은 권력을 잡자마자 10년간의 시대는 “죽은 시대”라고 평가하고 “역사를 거꾸러 돌린(좌) 시대”라고 외쳤다. 그리고 모든 정책의 구심점을 지난 10년 간 있었던 일들을 그들이 주장하는 우(右)시대로 돌리는 것으로 삼았다. 그 일환으로 우측통행을 강제하였다. 좌측통행은 “일재의 잔상”이다 “전 세계가 우측통행한다.”라는 이유를 붙였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신들의 친일적 분위기를 희석(稀釋)하고 ‘좌’라는 말조차 적게 쓰려 하였다.

이와 더불어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고 생각하는 김대중과 노무현이 자신의 정권하에서 살아있는 것이 대단한 부담으로 와 닿았다. 어떤 방법으로도 제거해야만 했다 하여 딴지를 걸었다. 그의 뜻대로 하나님이 도와주사 손도 안 댔는데 노무현과 김대중이 차례로 죽었다. 이어 그 동안 고삐가 풀렸다(?)고 생각하는 언론에 채찍을 가했다. 그리고 당근(언론권력?)을 주었다. 결국 이명박 권력이 언론권력도 장악하였다. 당근을 입에 문 이 나라 몇몇 언론을 제외한 중앙언론들은 정치권력의 충실한 추종자로서 언론권력을 마음껏 누리며 행동하고 있다.

이명박의 잘못된 정책과 국책사업에 대하여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지금은 자유민주주의에서 복지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시대다. 그런데 이명박은 시대조류를 역행하면서 부자 감세정책을 단행하였다. 언론권력들은 이명박의 앵무새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다. 그리고 역사교과서를 앞 정권의 역사왜곡으로 몰아세웠다. 역사를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 불 때, 치사하고 매스꺼운 일이다. 시대조류를 역행하는 사고에서 본 역사의 왜곡인가.

이번에 역사교과서를 왜곡으로 몬다면, 그 동안 역사교과서를 쓴 필자들은 엉터리 학자들이었던가. 그리고 이들 엉터리 학자를 초빙한 국립 한국교원대학교(국가가 교사를 양성하는) 등은 반역집단인가. 이명박이 준 당근을 물고 있는 언론들은 이 나라 학자들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모두 껍죽이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대들이 정권의 시녀가 되어 세상일을 그릇되게(?) 보도할 때, 이 나라 학자(적어도 역사학자)는 밤샘을 하여 책을 보고 사료를 뒤적이며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그리고 진실 되게 파헤쳐나가려 노력했다. 적어도 역사교과서는 이렇게 해서 써졌다. 이 나라 많은 학자들이 공부하고 연구한 연구물들을 모두 섭렵해가면서 역사교과서의 사실(史實)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김종한 등 학자들이 참고한 이 나라 역사학자들의 연구물들이 모두 왜곡되었단 말인가. 언로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많은 역사학자들의 연구실적(역사적 사실)을 왜곡으로 몰아서는 쓰겠는가.

역사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역사적 사실을 두고, ‘좌편향’ 또는 ‘왜곡’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역사교과서의 역사적 사실은 다만 주관적 연구실적일뿐이다. 따라서 그대들이 저자의 주관적 연구결과에 만족하지 않으면, 그 연구물을(근현대사 교과서) 멀리하면 된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무지를 드러내면서까지 역사적 진실을 ‘왜곡’으로 몰 필요는 없다. 저자들의 주관적 역사를 몰이해했다면 그것은 그대들의 무지다.

재판부도 마찬가지다. 역사적 사실을 재판(수정해라, 수정하지 마라 등)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것은 학자의 양심을 재판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인간의 정신과 양심까지 재판하라고 하지 않았다. 이번 역사교과서 판결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잘못이다. 역사교과서는 재판의 대상이 아니다. 이번 교과부의 처사도 옳지 않았지만 재판부의 판결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기록은 학자의 연구물로서 존중되어야 하지, 왜곡, 좌편향 등 비난을 받을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재판의 대상도 될 수 없다. 이는 학문의 자유를 속박하는 독재권력을 가진 나라에서나 할 짓이다.(2011. 8.19 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