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교육

[석경징 제2강]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 있나

anarchopists 2020. 1. 28. 02: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4/23 15:44]에 발행한 글입니다.

둘째, 위장짜 붙는 모든 일이나, 학력, 경력에 관하여 시비가 일어나면, 우선 몰랐다고 말한다. 그래놓고 왜 몰랐느냐고 하면, 열이면 열, 제 “부인” 되시는 이가 하신 것이라거나, 비서가 하셨다거나, 조수가 하셨다거나, 학생이 하셨다거나 이도저도 없는 사람은 지나가던 개가 하셨다고 라도 하겠지만, 하여튼 남이 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제 일은 모두 남들이 한다니, 세상에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있는 건지 의심이 난다. 이런 사람이 나서서 해보겠다는 공직은 빌 공짜 공직인가? 숫제, 본인도 인정하는 이 사람의 부인 되시는 분께서 이 일을 하게 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부인이 아니면 글쎄 그 비서나 조수나, 학생이나, 그도 저도 없으면 차라리 개가 나서서 앞으로 하겠다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안심될 것도 같다. 어느 개라도 이렇게 딴청 부리고 둘러대지는 않을 것이며, 짖는 일 정도는 잘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더 이상하고도 이상한 것은, 이런 먼지가 나오고, 몰랐던 그 먼지를 보고 브끄럽다고 그러는 건지,어떤 이들은 눈물까지 보이고, 이런 일로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스럽다고 까지 말하는데도 청문회가 지나가기 바쁘게 임명자가 시키려던 일을 결국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청문회란 먼지 터는 것이고, 별 상스런 먼지가 다 털렸으니 청문회를 넘기면 이제 더 이상 깨끗할 수가 없게 정화되었으니까 일 맡기기에는 더 이상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없단 말인가?

어떤 이가 그 자리에서 흘린 눈물은 먼지가 다 털려 깨끗해진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었나,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다지만 자기는 알도 못한 일인데 무슨 심려를 끼쳤나? 심려를 혹 끼쳤다면, 이 사람의 부인, 비서, 조수, 학생, 아니면 그 집개일 텐데, 실은 그 자리에 그 사람들이 나왔어야 할 것 아닌가? 또 그 국민은 어느 국민인가? 본인 자신도 모르게 일이 저질러졌는데, 어느 국민이 알아차리고 심려가 일어났겠나? 당사자들의 말대로라면 그런 일을 알았던 이들은, 그 사람의 부인되는 이나, 자식들이나, 비서, 학생들일 텐데, 이들을 두고 국민이란 말을 쓴다면 과장이 좀 지나친 것 아닌가? 그들이 자기보다 능력이 더 좋으니까 어렵게 생각되어 그러는가?

또 임명자(자라고 하면 싫어한다니, 인)은 정말 “과거의 일에 관련된 도덕성보다 현재의 일의 전문성에 관련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일의 전문성이란 뭔가? 이런 사람이 청문회에 나와서 실제로 하는 것을 보면, 아니라고 잡아떼거나, 다른 데로 둘러대거나,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거나 하는 말장난이 대부분인데, 나라에서 하는 일자리 중에는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일자리라도 있단 말인가? 그런 일이나 있다면 몰라도, 다른 일은 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이지 않는가? 실은 그런 사람이 했다고 하는 투긴지 투잔지, 위장 무엇인지 아닌지에 심려를 일으켰을 사람들이 어느 국민인지 알 수도 없다. 그러니 끼치지 않은 심려에 송구스러워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국민 쪽에 그들이 가장 큰 심려를 끼치고 있는 일은, 그리고 당사자가 혹 송구스러워 할 수도 있는 일은, 그 자리에 나와서 된 소리 안 된 소리 해대는 짓거리 그것이지, 자기도 모르게 했다는 투긴지 뭔지, 위장인지 뭔지는 우선 아니다.

그런데서 말 주고받는 것을 보노라면 때로는 굉장한 비장감이 든다. 방송극이 따로 없다. 그들의 표정이나 목소리가 어찌나 진지하고 높은지, 무슨 굉장한 비극의 무대를 보는 듯 하다. 눈들은 한결 같이 무섭고, 입술과 뺨이 일그러지기도 하며, 가만히 있을 때도 등에 칼 맞은 일본 사무라이 표정들이다. 뜻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자결할 이들이 수북하게 나올 것도 같다.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기로 되어 있는 이들의 표정은 더욱 짓기 어려운 것일 텐데, 이는, 국민을 존경하고 나라를 위한다는 것을 표정으로 들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고, 거기다가 왠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에게 송구스러우며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섞어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에 오른 비극배운들 이런 일을 쉬이 할 수 있겠는가 십지만, 이들은 참 잘도 한다. 연속 환기되는 비장감으로 말하자면, 이건 무슨 비극이겠으나, 쉴 새 없이 꿰져 나오는 “코믹 리리프”는 전체적 인상을 희극에 가깝게 한다. 결국 비극인지 희극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고, 연극으로라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서, 돈을 물어내라고 하고 싶은 지경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것이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순 진짜 연극 아닐까 해서 고개를 갸우뚱 하게도 된다.

석경징 선생님은
석경징(石璟澄) 선생님은 영문학을 전공한 언어학자전공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신다. 재직 중이실 때는 서울대 입시출제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현재 함석헌학회 자문위원이시다.

저서로는 <서술이론과 문학비평>(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역서로는 <현대 서술이론의 흐름)(솔, 1997)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한국에서의 인문학과 포스트모더니즘>(숭실대학교논문, 1997)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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