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사악한 자본주의는 인간을 타락시킨다.

anarchopists 2020. 4. 7. 06:55

사악한 자본주의가 인간을 파괴하고 있다.

요즘, 한심한 모 정당이 총선을 맞이하여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고 다닌다. 집권 여당이든, 반대만을 일삼아 이 사회를 거의 파괴수준으로 몰고 가고 있는 야당,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질서 수호자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자기네만 마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정당으로 말을 왜곡/호도하고 있다. 파렴치하고 가소롭다.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기본질서, 기본가치로 받들고 있다.(자유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뜻하고, 민주주의는 엘리트 중심의 정치권력을 뜻한다.) 그러면 자본주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석유자원과 식량자원의 독점, 그리고 명품산업과 유행상품을 기본으로 한다. 곧 인간의 가치, 인간의 영성/도덕성을 본질로 여기는 게 아니고, 자본의 가치와 자본의 축적을 본질로 하는 상품경제이다.

때문에,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인격/인품, 곧 인간성, 인간사회를 파괴하고 극단적인 상품 이기주의를 만연시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위험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위험이 이번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역병의 세계적 만연이다. 우리는 인간의 확실성 있는 미래의 행복한 삶에 대하여 자본주의 경제질서(=자유민주주의)에 대하여 반성할 때가 왔다.

이미 서방의 학자들은 경제전문가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부패/타락한 자본주의의 맹신주의에 몰입하여 전혀 자유민주주의만 외치고 있을 뿐, 자유민주주의가 필연적으로 가져다주는 부정적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자유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로 인하여 파괴되어 가는 인간, 인간성, 인간사회에 대하여 몇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기성세대의 과오(過誤) 탓이긴 하지만, 요즈음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제침략으로 시작된 식민지 자본주의를 거쳐 1945년 미군의 한국 점령과 함께 위로부터 강제된 주변부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 속절없이 살아간다. 파쇼미국이 세계경제와 군사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 우리 젊은이들은 자본주의에 대하여 비판의 여지도 갖지 못한 채 자본축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 갈 것이 분명하다.

이는 산업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정보매체를 장악하고 있는 방송, 신문, 통신, 인터넷 등 각종 언론매체가 미제국주의(米帝)를 대신하여 자본주의를 선전해주는 첨병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적 문화’보다 ‘비교육적 문화’가 팽배해간다. 올림픽도 인간의 행복추구가 아니고 자본축적의 도구로 전락되었다. 심지어 각종 노동조합/농민조합까지도. 이렇게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가치 즉 말초신경적 쾌락, 즉흥적 기분, 일회성 만족을 충족시켜는 3S(전통적 시대에는 정치권력이 즐겨 쓰던 정책이었는데, 산업혁명 이후에는 자본권력이 즐겨 쓰고 있다. 연예계와 스포츠, 백화점 쇼핑, 그리고 사랑게임) 등에 몰두한다.

이 때문에 인간의 정서적 가치, 미학적 추구, 윤리적 가치, 탐구적 태도, 예술적 감각, 모험적/탐험적 가치 등 교육적 문화를 멀리한다. 이 탓에 자본주의 상술에 놀아나 명품 즐기기, 유행 쫒기, 연예인 추종하기, 스포츠 광적 응원, ‘묻지 마’ 애정행각 등에 상대적으로 침몰한다.

또한 인간 파괴적 자본주의 풍조는 ‘교육적 직업’보다 ‘비교육적 직업’을 인기직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요즈음 젊은이들은 노동의 가치보다는 힘들이지 않고 연봉이 많은 직업만을 추구한다. 교육적 가치를 갖는 직업보다는 비교육적 가치가 큰 직업을 원한다. 이 탓에 한국의 매판 자본주의는 타락한 미국 자본주의에 예속되면서 천박한/비천한 자본주의로 전락했다. 천박한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정치적ㆍ자본적ㆍ 사회적ㆍ문화적 타락은 도를 더해간다.

결국 자본축적과 관련된 비교육적 직업만 추구하다 보면 한국의 미적 분야, 창조적 학문 분야는 쇠퇴되고 끝내는 인간의 삶의 질 - 윤리, 도덕, 양심 등 인간다움 - 마저 땅에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국가주의가 부활하고, 자본을 위한 지구촌이 형성되고, 자본적 가치관에 의한 물질적 가치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하여 생명의 주체인 작은 개인보다는 인류 전체가 더 소중한 것처럼 도배되고, 작은 지역보다는 전 지구적인 것이 더 가치를 지닌 것처럼 포장된다. 그래서 자본권력이 지배하는 세계화/신자유주의가 맹목적으로 추종되어 진정으로 인간이 갖는 작은 생명의 존귀함은 상실되고 지역의 정신적 가치, 문화적 가치, 전통적 가치도 묵살되어 버린다.

한국사회는 이렇게 생명 파괴적이며 윤리 타락적인 매판/관변자본주의에 대하여 이제껏 한 번의 반성도 거치지 않았다. 이 탓에 한국사회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은 신자유주의가 이끄는 자본주의 조폭(組暴)의 하수인이 되어 정신이 혼미해진 채 자본두목이 이끄는대로 개 끌려가듯 끌려가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 상술의 극치를 보이는 인기 연예인, 인기 운동선수가 스타로 포장되고 최고의 직업으로 추앙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도 인간성을 배우는 인문과목은 비인기학과가 되고, 문화컨텐츠 등 듣지도 못한 비인문주의적 취업관련 학과가 인기학과가 되었다. 대학당국조차 신자유주의 경쟁시대라는 미망 아래 인문과학을 헌신짝처럼 취급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직업선택에서 블루칼라보다는 하이트칼라에 몰두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갖는 기본모순이 만들어낸 직업의 순환논리이다. 직업의 순환논리란 자본주의가 포장한 직업윤리이다. 자본주의 발달 초기에는 블루칼라가 대접받다가 자본주의 완숙기에는 하이트칼라가 최고 가치로 부각된다. 그래서 자본제구주의 나라에서는 블루칼라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면 그 자리를 개발도상국 내지는 후진국에서 밀입국한 노동자들이 대신해 주는 직업구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직업순환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직업순환구조는 국가 간/계층 간/계급 간 빈부의 양극화 현상을 극대화한다. 이것을 자본주의는 글로벌시대라고 합리화한다.

자본주의는 제조와 생산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상품생산의 과정보다는 결과 즉, 완성된 상품의 가치를 더 중요시한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갖는 모순 때문에 기성세대를 포함하여 커나가는 젊은이들은 삶의 과정(過程)보다 결과(結果)를 더 중요시하는 풍조가 최고선(最高善)으로 미화되고 있다. 삶의 과정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자본의 크기를 인생의 결과/인생의 성공기준으로 본다. 이러한 풍토에서 형성된 사회현상은 범죄뿐이다.

이 탓에 정치하는 사람은 나라와 사회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보다는 개인의 자본축재에 더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놈들도 수천억 원을 도둑질하여 부정축재 해놓고도, 파렴치한처럼 한 푼도 없다고 오리발이다. 또 학문의 상아탑에서 최고의 명예를 가지고 있는 대학교수들도 연구 성과보다는 물질적 가치인 자본축재에 더 혈안이 되어 있다. 학문을 연구해야 할 교수들이 연봉만을 따진다. 그리고 연구비도 생활비로 돌리고 골프장 가는데 쓴다. 이 결과로 강의는 엉망이고 연구 성과 또한 미미하다. 그래서 그런지 국세청에서는 연구비에까지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는 한심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피해를 입는 자는 박봉에 시달리는 대학 연구소의 연구원들이다.

이러한 윗물의 흐림 때문에 한국의 젊은이들도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직업은 삶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참다운 직종이 못 된다. 인기직업의 기준을 돈의 가치에 둔다. 힘들이지 않고 연봉이 많으면 그게 인기직종이다. 이 중, 초/중/고교 교사가 대표적 경우다. 초/중등학교 교사들도 교육공무원(교직)이라는 것이 만년 ‘철밥통’이니까, 인기직업이 되어버렸다. 교직 부임 초의 초봉은 비록 낮지만, 호봉이 높아질수록 다른 직종에 비해 연봉이 점점 많아진다. 그리고 정년까지는 ‘철밥통’이다. 이 때문에 선생이 되려고 하는 것이지, 2세의 교육과 교육을 통한 인류문명의 창조, 민족문화의 창달, 참다운 인간훈육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참교육이라는 피치 못할 교육용어까지 생겨나고 이를 강조하는 전국교사노동조합까지(전교조) 생겨났다. 엄밀하게 말하면 교육행위는 노동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육체의 수고로움이 가해지는 행위는 노동이지만 예외로 취급되는 것이 교육,/정치,/성직이다. 이들의 행위는 먹고살기 위한 노동행위라기보다는 인간의 교화와 계몽을 사명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젯밥에만 눈이 먼 교수와 교사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결과 공교육의 파멸과 입시열풍, 고시열풍이 한국사회의 사회적 풍습을 만들어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일류대 출신이 사회전반을 좌우지하는 사회구조는 학원산업이라는 비사회적 교육구조와 기러기 아빠라는 비정상적 가정구조를 양산해냈다. 인간이 갖는 인격보다 자본의 능력에 최고의 가치를 두다 보니 이런 사회구조의 모순이 사방에서 준동한다. 그래서 작년 후반기에 실시하였던 마사회 입사시험이 3000대의 1의 경쟁률을 기록하였다.(2004년 기준) 그러면 마사회 입사시험에서 떨어진 젊은이들이 찾아갈 곳은 어디인가. 일확천금이다. 여기서 사회의 악순환은 꼬리를 물게 된다.

이와 같이, 타락/부패한 자본주의는 인간, 인간성, 인간사회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나아가 선한 사회구조 전체가 파괴되고 있다. 지금 닥쳐오고 있는 석유위기, 식량위기,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장기적 불황에 자본주의가 게워낸 기후이변까지 생각한다면 자본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생산양식을 찾아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생산양식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통한 세계독점과 자본주의 재생산구조에 필요한 자원 확보를 위해 세계를 계속 침략해 들어가는 미제국주의를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인간, 인간성, 인간사회는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인류는 파멸로 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2005.12.12. 처음 씀, 2020. 4.7 아침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