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평화연구소/김대식 박사 칼럼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철학과 타자문제(계속)

anarchopists 2020. 1. 8. 12:26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0/10/12 06:30]에 발행한 글입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철학과 타자문제 2

그런 맥락에서 인간의 삶, 인간의 여유, 인간의 가족, 인간의 도덕을 뒷전으로 하고 노동의 대가와 생계수단으로 받게 되는 물질이 인간의 비참함의 결과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블로흐는 “비참한 현실을 느끼는 자가 이에 대한 원인을 간파하게 된다면, 비참함은 그 자체가 어떤 혁명을 위한 축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로 인하여 극단화된 비인간화 현상에 대항하여, 이 현상이 사라질 때까지 싸우는 투쟁”이라고 말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가 오히려 인간의 비참함과 비인간화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대항담론의 철학으로 기능해야 할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노박(G. Novack)이 말한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는 무엇보다도 우선 계급투쟁, 정치혁명, 사회변혁의 이론이자 강령... 그것은 노동자가 그 중심이 되는 생산력의 발전이 역사의 중요한 추진력이며, 모든 사회변화의 궁극적인 근원이며, 진보의 불가피한 물질적 기초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자의 생산력이 아무리 사회변화의 궁극적인 근원이라 할지라도 현대 사회에서 노동 그 자체가 낯선 힘이 되었고, 또한 자본에 완전히 예속되었다는 점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스스로가 타자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상품 그 자체도 타자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상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그 사용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에 상품 그 자체가 타자가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른바 상품이 ‘폐기처분의 대상’으로서 타자가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자본가는 그 상품이 팔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화폐로의 도약을 위해서 “목숨을 건 도약”(salto motale)을 단행합니다(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송태욱 옮김, 트랜스크리틱, 한길사, 2005, 179).

“자본가는 노동력을 그것의 하루분 가치로 구매하였다. 그래서 1노동일 동안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자본가의 소유가 되었다. 즉 자본가는 하룻동안 자기를 위하여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권리를 얻은 것이다...... 자본가로서 그는 오로지 인격화된 자본일 뿐이다. 그의 영혼은 자본의 영혼이다...... 자본은 죽은 노동이며, 이 노동은 오직 흡혈귀처럼 살아 있는 노동을 흡수함으로써만 활기를 띠며...... 노동자가 노동하는 시간은 자본가가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시간이다. 만일 노동자가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소비한다면 그것은 자본가의 것을 훔치는 셈이 된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더 들어보자. “너에게 자본의 가치증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나에게는 노동력의 초과지출이다...... 내 노동력의 하룻동안의 사용은 네 것이다. 그러나 내 노동력의 매일의 판매가격에 따라 나는 매일 노동력을 재생산하여 새롭게 팔 수 있어야만 된다. 나이로 말미암아 자연적인 소모는 별도로 치더라도, 나는 내일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상태의 힘, 건강, 원기를 갖고 노동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분별력 있는 절약가처럼 내 유일한 재산인 노동력을 절약하고, 그것을 어리석게 낭비하는 일을 일절 그만두겠다. 나는 매일 내 노동력을 오로지 그것이 정상적으로 지속되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 만큼만 사용[즉 움직여서 노동으로 전환]하겠다”(K. Marx, 강신준 옮김, 자본 1-1, 길, 2008, 331-333)

그렇다면 노동과 물질(생산품)로부터 소외된 인간이 스스로 타자가 되어 버린 현실의 근원성은 무엇일까요? 앙리 르페
브르(H. Lefebvere)는 오랫동안 그 점에 대해서 연구를 한 학자로서 인간의 욕망과 욕구의 상호작용이 불행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욕망은 욕구를 변형시키고, 욕망은 욕구에서 파생한다”는 그의 논리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부추기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꼬집고 있는 말입니다. 또한 타자화된 인간은 자연 마저도 타자화 시키고 부재로서의 자연(인간의 시원으로서의 자연) 앞에서 비인간화 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자연이라는 시공간으로부터 왔음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루카치(G. Lukacs)도 마찬가지입니다. 루카치에 의하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면서 자연적 존재입니다. 그에 따르면 자연적 존재에서 사회적 존재에로의 도약 가능성은 인간의 노동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 존재는 노동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기 때문에, 인간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자연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따라서 자연의 한계는 곧 인간 자신의 한계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사유재산, 자본가의 착취와 압박, 이윤 욕망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감성을 무너뜨리고 급기야 정신적 삶을 곤궁하게 만듭니다.(2010.10.12./ 김대식)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인간과 영성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생태영성의 이해》,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 《영성가와 함께 느리게 살기》, 《함석헌의 생철학적 징후들》 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