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평화연구소/취래원 농사 칼럼
도로확장, 이제 그만 두라
anarchopists
2019. 12. 24. 12:28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11/04/11 06:29]에 발행한 글입니다.
4월 9일, 부천의 소사3동 성당에서 중고등학생들이 토요답사를 온다. 소백산 일대 단양지역 역사유적지이다. 하여 답사코스를 알아보기 위해 사전답사를 떠났다.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영주에서 소백산을 넘어 단양으로 가기로 하였다. 최 여사(글쓴이의 부인)와 함께 모처럼 만의 나들이 겸 해서이다. 경북 영주에서 충북 단양으로 가는 자동차 길은 옛날 죽령고개가 있다. 그러나 많이 힘이 든다. 그리고 영주 쪽에 사는 소백산 오지의 산골주민들이 단양 쪽으로 가는 산길로 남대령길과 고치령길이 있다. 남대령길은 전날 비포장 된 산길을 따라 승용차로 넘어본 적이 있다. 그때 정말 혼이 났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추억을 더듬어 남대령길을 가다가 실망을 하였다. 도로가 넓어지고 죄다 포장이 되었다. 석유냄새가 물씬거린다.
하여 이번에는 새로운 길을 택해 보았다. 고치령길이다. 단산에서 좌석, 미락 그리고 고치령고개를 넘어 단양으로 접어드는 길이다. 산길은 비포장된 길이 곳곳에 있었지만 대체로 포장이 되어 있는 단성도로이다. 길이 호접하다. 좁은 산길과 함께 주변의 산세, 그리고 경관들이 어울려 매우 아름답다. 이런 곳에서는 인간의 악함이 나올 수 없다. 자연의 선한 정서들이 온몸을 휘감는다. 막 봄기운을 느끼게 하는 숲속의 봄내음들이 산뜻하다. 향기로웠다. 산숲의 에너지가 인간에게 주는 선물은 이렇게 기분 좋게 만든다. 이러한 산숲의 에너지가 인간의 정서를 맑고 아름답게 해준다. 그리고 인간에게 행복한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준다. 삶의 기쁨과 생명의 소중함이다.
그런데 영춘을 자나 단양으로 접어드니 새길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몇 년 전 보았던 길들이 많이 변해 있었다. 새로운 것들이다. 길도 많이 뚫리고 확장되었다. 좁은 길들이 어디론가 가고 없다. 모두가 대로길이다. 아름답게 구불거리던 소로길(小路가 표준어임)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모두가 직선의 대로길이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 대한민국의 자연이 자꾸 망가지는 소리가 들린다.
도로가 많이 생기고 넓어질수록 자동차생활은 편리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 인간의 행복한 삶은 작아진다. 인간의 선한 의지도 사라진다. 인간의 행복한 삶도,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도 사라진다. 길이 넓어지고 굽이길이 직선화되는 것은 자본주의 병폐의 또 하나다. 국가의 이상한 통치자가 굽이도는 4대강과 고향의 강들을 직선화하고 시멘트로 멱살잡이 시키는 것과 같다. 도로는 직선화보다 굽이도는 길이 더 안전하고 아름답다. 좁은 길과 굽이 길에서 사람들은 산천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안전운전의 심리도 생겨난다. 대로길과 직선화된 대로에서는 결코 안전심리가 나오질 않는다. 조국산천의 아름다움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길 따라 가는 행복함도 사라진다. 인간의 정서를 급하게 만든다.
굽이도는 강을 직선화하고 굽이 길을 직선화하는 행위는 모두 사람의 안전과 삶의 행복을 위해 그리 하는 게 아니다.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자기이익(자본축적)을 위한 토목공사일 뿐이다. 국가의 발전 운운하지만 그것은 명분을 만들기 위한 거짓말이다. 권력자와 자본가에게는 국가구성원과 사회구성원, 그리고 자동차 소비자를 그들의 밥으로 여길 뿐이다. 먹잇감에 불과하다. 그들은 인간의 삶의 질, 행복, 정서 따위는 모른다. 자기 몫(자본축적)만 챙기면 된다.
저들은 도로가 넓어지고 확장될수록 인간의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는 도로에서 교통사망률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비싼 돈을 들여 과속감시용 기계(속도계)를 설치한다. 속도계 또한 권력자와 자본가가 짜고 노는 돈 버는 수단이 아니던가. 강폭이 넓어지고 도로 폭이 넓어질수록 자연은 그만큼 파괴된다. 도로의 대로화와 직선화는 많은 자동차를 불러들인다. 자동차가 많아질수록 매연이 심해지고 환경은 오염된다. 그리고 사망자가 늘어난다. 게다가 인간의 정서도 파괴된다. 사람의 성질이 급해진다. 급한 심리가 조장된다. 인내심이 부족해진다. 오래 생각하고 사고하는 정서가 없어진다. 모든 게 즉흥적이 된다. 참을성이 적어지면 자살률이 높아진다. 자살의 도미노현상도 도로확장과 관련이 있다. 급하게 내닫는 심리 때문이다.
지금 전국은 도로확장에 환장이 된 듯하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장들은 산업의 발달과 물자의 원활한 유통을 빙자하여 강과 길을 자꾸 직선화하고 넓힌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권력자와 자본가의 개인적 이익과 무관하지 않다. 개인이익의 극대화다. 그래놓고 저들은 국가와 인민을 위한다고 한다. 교통소통을 위한다고 그럴싸하게 지껄인다. 그 진실은 사회전체 이익의 파괴인데도 말이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로가 생기는 주민들과 4대강 주변 사람들도 당장 자기네에게 콩고물이 떨어지니까 좋아한다. 못난이들의 바보짓이다. 큰 도둑과 작은 도둑의 합작인가. 도로가 생기면 도로보상비가 나오고, 도로변 땅값이 오르고, 서울이 가까워져서 좋다고 한다. 그리고 길이 빨라져서 좋다고 한다. 한심하다. 자연이 파괴되어 훗날 그 화근이 자신과 자기 자손들에게 미친다는 걸 모른다. 길과 강의 확장, 새 길의 뚫림은 그만큼 인간 삶을 파괴한다는 이치를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한다.(2011. 4.11 아침, 취래원농부)
황보윤식(皇甫允植, 醉來苑農士)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
도로확장, 이제 그만 두라
4월 9일, 부천의 소사3동 성당에서 중고등학생들이 토요답사를 온다. 소백산 일대 단양지역 역사유적지이다. 하여 답사코스를 알아보기 위해 사전답사를 떠났다.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영주에서 소백산을 넘어 단양으로 가기로 하였다. 최 여사(글쓴이의 부인)와 함께 모처럼 만의 나들이 겸 해서이다. 경북 영주에서 충북 단양으로 가는 자동차 길은 옛날 죽령고개가 있다. 그러나 많이 힘이 든다. 그리고 영주 쪽에 사는 소백산 오지의 산골주민들이 단양 쪽으로 가는 산길로 남대령길과 고치령길이 있다. 남대령길은 전날 비포장 된 산길을 따라 승용차로 넘어본 적이 있다. 그때 정말 혼이 났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추억을 더듬어 남대령길을 가다가 실망을 하였다. 도로가 넓어지고 죄다 포장이 되었다. 석유냄새가 물씬거린다.
그런데 영춘을 자나 단양으로 접어드니 새길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몇 년 전 보았던 길들이 많이 변해 있었다. 새로운 것들이다. 길도 많이 뚫리고 확장되었다. 좁은 길들이 어디론가 가고 없다. 모두가 대로길이다. 아름답게 구불거리던 소로길(小路가 표준어임)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모두가 직선의 대로길이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 대한민국의 자연이 자꾸 망가지는 소리가 들린다.
도로가 많이 생기고 넓어질수록 자동차생활은 편리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 인간의 행복한 삶은 작아진다. 인간의 선한 의지도 사라진다. 인간의 행복한 삶도,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도 사라진다. 길이 넓어지고 굽이길이 직선화되는 것은 자본주의 병폐의 또 하나다. 국가의 이상한 통치자가 굽이도는 4대강과 고향의 강들을 직선화하고 시멘트로 멱살잡이 시키는 것과 같다. 도로는 직선화보다 굽이도는 길이 더 안전하고 아름답다. 좁은 길과 굽이 길에서 사람들은 산천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안전운전의 심리도 생겨난다. 대로길과 직선화된 대로에서는 결코 안전심리가 나오질 않는다. 조국산천의 아름다움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리고 길 따라 가는 행복함도 사라진다. 인간의 정서를 급하게 만든다.
굽이도는 강을 직선화하고 굽이 길을 직선화하는 행위는 모두 사람의 안전과 삶의 행복을 위해 그리 하는 게 아니다.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자기이익(자본축적)을 위한 토목공사일 뿐이다. 국가의 발전 운운하지만 그것은 명분을 만들기 위한 거짓말이다. 권력자와 자본가에게는 국가구성원과 사회구성원, 그리고 자동차 소비자를 그들의 밥으로 여길 뿐이다. 먹잇감에 불과하다. 그들은 인간의 삶의 질, 행복, 정서 따위는 모른다. 자기 몫(자본축적)만 챙기면 된다.
지금 전국은 도로확장에 환장이 된 듯하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장들은 산업의 발달과 물자의 원활한 유통을 빙자하여 강과 길을 자꾸 직선화하고 넓힌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권력자와 자본가의 개인적 이익과 무관하지 않다. 개인이익의 극대화다. 그래놓고 저들은 국가와 인민을 위한다고 한다. 교통소통을 위한다고 그럴싸하게 지껄인다. 그 진실은 사회전체 이익의 파괴인데도 말이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로가 생기는 주민들과 4대강 주변 사람들도 당장 자기네에게 콩고물이 떨어지니까 좋아한다. 못난이들의 바보짓이다. 큰 도둑과 작은 도둑의 합작인가. 도로가 생기면 도로보상비가 나오고, 도로변 땅값이 오르고, 서울이 가까워져서 좋다고 한다. 그리고 길이 빨라져서 좋다고 한다. 한심하다. 자연이 파괴되어 훗날 그 화근이 자신과 자기 자손들에게 미친다는 걸 모른다. 길과 강의 확장, 새 길의 뚫림은 그만큼 인간 삶을 파괴한다는 이치를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한다.(2011. 4.11 아침, 취래원농부)
취래원농사는
학생시절부터 민족/통일운동을 하였다. 동시에 사회개혁에도 관심을 갖고 생명운동을 하였다. 나이 60을 넘기자 바람으로, 도시생활을 과감히 접고 소백산(영주) 산간에 들어와(2010) 농업에 종사하면서 글방(書堂, 반딧불이서당)을 열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를위한시민모임”, "함석헌학회" “함석헌평화포럼”, “함석헌평화연구소”에도 관여를 하고 있다. 글로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2017) 등 다수의 글이 있다.(수정 2018. 10.3) /함석헌평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