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평화연구소/함석헌, 교육

[권태선 제3강] 패자를 만들지 않는 핀란드 교육

anarchopists 2020. 1. 28. 02:22
* 함석헌평화포럼 블로그에서 [2009/05/02 09:13]에 발행한 글입니다.



패자를 만들지 않는 핀란드 교육

교사-학생-학부모의 3자 대화

위 경우처럼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양자는 긴밀하게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초·중등학교가 대부분 무학년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학년제란 우리처럼 같은 해에 입학한 학생들은 같은 학년에 배속돼 6년 또는 3년을 함께 공부하다 같은 해에 함께 졸업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처럼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을 줌으로써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수업 연한을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아주 우수한 학생은 3년 과정인 고등학교를 2년 만에 마칠 수도 있고, 좀 늦는 학생은 4년 만에 마쳐도 무방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과 희망에 따라 학습 속도와 학습 수준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이렇게 자신에 맞는 학습 속도와 학습 수준을 결정할 때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와 함께 3자 대화를 갖는다. 이런 대화를 바탕으로 학생들은 자신의 개인별 수업목표를 설정한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학습 계획을 세울 때는 이 3자 대화에 특수교사가 함께 참여한다. 교사와 학부모와 특수교육 담당 교사가 학생과 함께 협의해서 단기간에 학습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협력한다.

아이가 무엇인가 잘못하는 일이 생길 경우도 일차적으로 교사가 학생 본인과 상의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3자 대화를 가동한다. 문제가 심각할 경우엔 마찬가지로 특수교사가 개입해서 개선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집중장애가 있는 아이를 일시적으로 특수학급에 배치하는 것과 같은 문제는 이 3자 대화에서 결정된다.

이렇게 3자 대화를 상시적으로 가동하니 학부모는 자기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소상히 알게 되고 교사는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비롯한 여러 특징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아이들 교육을 담당하는 두 축인 학교와 가정의 협력하니 더 나은 교육이 이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패자를 만들어내지 않는 유연한 시스템
핀란드 교육제도에서 가장 눈에 띄고 부러운 부분은 경쟁은 있지만, 그렇다고 승자와 패자로 나뉘지 않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반면 모든 아이들이 바료 옆에 앉은 친구를 언제나 자신의 경쟁상대로 의식해야 하는 우리나라 시스템은 단 한명의 승자를 위해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아니 얼마 전 서울대학교의 한 교수가 전한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단 한명의 승자도 낳지 못하고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그 교수는 서울대학교에 들어온 신입생들을 면담하면서 “여기 들어오느라고 참 고생 많았다”라고 말을 던지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고 했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과정이 그들에게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입시 경쟁의 승자로 인식되는 서울대학교 입학생들이 이럴진대, 다른 학생들의 고통이 어떠할지는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핀란드에선 이런 류의 경쟁은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무학년제가 대세이기 때문에 함께 입학한 학생이라고 해서 반드시 자신의 경쟁상대는 아니다. 학교가 다양한 수준의 강의를 개설하고 아이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강의를 선택해 들으면 되니까 잘 하는 아이는 잘 하는 아이대로 뒤처지는 아이들은 뒤처지는 대로 각각 자신의 수준에 맞춰 공부할 수 있다. 우리처럼 특수목적고나 자율형 사립고를 만들어 이른 바 우수학생들을 모아 놓지 않아도, 또 한 학교 내에서 우열반을 편성해 아이들을 상처주지 않고도 수월성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핀란드 학생들은 굳이 동료들을 경쟁상대로 삼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핀란드 학생들의 경쟁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정한 학습속도와 학습수준을 달성하느냐 못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대학입학 자격시험도 학생들은 능력에 따라 선택해 볼 수 있다. 실력이 되는 학생은 한번에 모든 과목을 다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은 몇 차례 나눠 시험을 봐도 된다. 한번 본 시험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다시 시험을 보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시험이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데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수학능력이 있는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가는 대신 다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취업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실업고교 출신들도 인문계 학교에서 필요한 수업을 들으면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제도는 어떻게 해서든 교육과정에서 탈락하는 학생들을 줄이고 학생들에게 가능한한 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핀란드 교육당국의 배려가 아닐 수 없다. 핀란드 최대의 직업학교군인 옴니아직업학교의 한 교사에 따르면 실제로 보건이나 미용분야처럼 특히 인기 있는 분야의 실업학교 과정에는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몰려 그 수를 50%에 이하로 제한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렇듯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필요하면 언제라도 새로운 진로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핀란드 교육은 마리아 타우라 핀란드 미래위원장의 말처럼 모든 아이들을 소중한 인재로 아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이런 인식에 따라 핀란드 교육당국은 “가능한 한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 학교와 지자체에 대한 예산 지원에서 적극적인 차별정책을 편다. 외따로 떨어진 작은 학교에 도시 학교들보다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하고 산타마을이 있는 랲랜드처럼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택시로 학생들을 통학시키기까지 하는 게 바로 그러한 예”라고 요우니 발리예르비 이베스뀔라 대학 교수는 설명한다.

이런 적극적 역차별 정책 덕분에 핀란드는 유럽연합 내에서 학교간 격차가 가장 적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우수한 나라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유럽연합 내 나라들의 학교간 평균 격차가 34%에 이르지만 핀란드는 5%밖에 안 된다. 지난번에 공개돼 말썽을 일으켰던 일제고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학교 간 격차는 거의 50%대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처럼 정부는 엄청난 교육격차를 나몰라라 하면서 뒷짐을 진채 모든 아이들을 피눈물 나는 경쟁체제로 내몰고, 학부모들은 실제로 그것이 경쟁에서 이기는데 도움이 된다는 확신도 없으면서 수십조 원을 사교육에 퍼붓는 악순환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해, 모두가 이 사회의 든든한 한 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교육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인가? 아이들이 ‘미친 교육’ 중단을 구호로 들고 시위에 나서는 상황에 이른 지금,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에 미래는 없다. 핀란드 교육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권태선 끝)


* 권태선 님은 현재 한겨레신문 논성위원으로 있습니다.

* 다음 월요일부터는 다시 "함석헌을 말한다'와 관계되는
글들이 나갑니다. 많은 애독 바랍니다.
그 동안 글이 뜸해 미안합니다.

-운영자 드림-